우리는 더 단단해질 수 있을까.

학교를 다닐 때의 일이다. 치닫는 열차를 멈추기위해 누군가를 죽여야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친구가 물었다. 흔한 사고 실험인 ‘트롤리 딜레마’ 였다. 친구의 부탁으로 교지에 어설픈 글을 썼다.

친구는 이 비참한 상상 끝에 나에게 정의를 물었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누군가가 뜻하지 않게 목숨을 잃어야 하는 상황에서 정의란 없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목마름이 목청을 졸라도, 목숨 값을 사다리로 삼아 정의로움이라는 이상에 닿을 수는 없는 일이다.

더 이상 이런 상상조차 유효하지 않은 세상을 바랐다. 누군가의 목숨이 그렇게도 쉽게 사그라들 수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신문의 머릿말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길 바랐다.

그리고 얼마 전 부고를 접했다. 그 속내를 알게 된 것은 오늘이었다.

…중략… 진정으로 정의로운 사회는, 열차의 브레이크가 고장나지 않는 사회이다. 주기적으로 안전 점검을 받고, 이윤과 자본보다 사람과 생명과 안전이 더 중요하게 평가받는 사회, 그럼에도 브레이크가 고장 날 수 있기에, 열차가 운행되는 도중에는 선로를 점검하지 않도록 노동자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따뜻한 사회. 그것이 진정한 정의이자, 우리가 찾아야 하는 정의로운 사회이다. (2015.02.04)

비참한 현실 앞에서 나의 글이 가진 나약함을 생각한다. 그 나약함이 부끄러워지더라도, 슬픔 앞에서 누군가가 그토록 지겹다고 우겨대던 인간다움을 말하고 싶었다. 이 슬픔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더 단단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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