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소비된다

인문학 열풍이다. 자기개발서가 잠시 밀려난 서점의 매대에는 스스로를 인문학이라 칭하는 책들이 드러섰다. 기업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말을 하고, 특정 기업의 화려한 성공이 인문학에서 시작했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형국이다.

이 열풍 속에서, 인문학은 철저하게 소비의 대상이 되어, 대량으로 생산되고, 대량으로 소비되고 있다. 이전 같아서는 붙히지 않았을 인문학이라는 수식어가 강연의 판매를 부추기고, 그저 그런 책들도 인문학이라는 제목을 붙여 부수를 올린다. 물론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넘치지 않는다.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던 사람들에게 인문학은 종교적 교리처럼 소비된다.

인문학이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젊은 청춘마저 노동력이 되어 팔려가는 시대에, 그깟 학문이 좀 소비된다고 개탄하기는 힘든 세상이다. 게다가 학문의 대중화라는 허울 좋은 명분이 더해진다면, 인문학의 생산과 소비는 장려되어야 할 일처럼 느껴질 뿐 지탄 받을 일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인문학인가라는 의문이 발목을 잡는다. 당장의 궁벽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 전공과 하등의 관련이 없는 일을 하는 우리들에게,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은 중요치 않다. 지성을 탐할 여유도, 선대의 지혜를 엿볼 욕심도 없는 우리에게 인문학은 그러한 여유와 욕심을 불어일으키는 삶의 양식이나 태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이든 삶의 양식으로서의 인문학이든, 사실 이전의 가치를 좇는 것이 그것의 궁극이라 이를 수 없다는 것에 있다. 역사가 증명하듯 인간의 이성과 실존은 기성의 문법을 전복하려는 시도를 통해 그 견고함을 더해왔다. 내적 모순에 지나지 않을 수 있지만, 카프카가 말하듯 책은 도끼이고, 니체가 말하듯 철학은 망치로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소비되는 인문학은 인문학일 수 없다. 그것은 우리에게 가벼운 교양을 더해주고 술자리에서 자랑할 약간의 지적허영을 꾸며줄 지언정,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점지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게 할 동력을 창출하지 못한다. 하물며 오활한 지식을 가지고 방송에 나와 있지도 않은 거짓부렁을 말하는 자들을 보면, 저것이 대동강 물을 떠 팔아넘긴 봉이의 모습인가 싶어 간담이 서늘해진다.

진리도, 규범도, 절대자도, 심지어 부모에게 마저 벗어나 어떻게 살 것인지를 물었던, 고은이 그리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