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지 못할 글

수능이 끝난 후의 일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이 오직 선택 당할 일만이 존재했던 그 시간동안, 내 삶은 여행을 흉내낸 도망의 연속이었다. 내가 내 삶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그 무력함과 좌절감, 열패감으로부터 잠시나마 피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내가 디디고 선 곳을 벗어나야 했다.

그 때 그 어떤 곳에도 차마 남길 수 없던 몇 편의 글을 일기를 빌려 썼다. 그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고,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읽히지 못할 글이었다. 그렇기에 글은 쓰여 있지만 쓰여 있지 않았고,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 글이 온전히 나의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나도 모르게 보여지는 나에 익숙해졌기에, 누구에게도 보여지지 않는 나는 나로 느껴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일기를 즐겨 쓰지 않는다. 글을 쓰고 싶다면 다른 이가 읽을 수 있는 공간에 쓴다. 일기를 쓰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읽히지 못하는 글을 죽어 있는 글인 것만 같이 느낀다. 일기장 속에 갇힌 활자들은, 채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짓눌려 죽어버릴 것만 같다. 내가 그 누구도 찾지 않는 공간이라도,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열린 공간에 글을 쓰는 이유 또한 바로 그것과 같다. 단지 나는 내 글이 죽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재수를 시작하며 일상의 짧은 글들을 페이스북 페이지에 남기려 했다. 아는 사람들에게는 들키기 싫어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글을 썼다. 물론 얼마 가지 못해서 나는 더 이상 그곳에 글을 남기지 않았다. 그곳은 아무도 찾지 않았고, 그래서 내 글은 그곳에서 죽어갔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가 내 글을 살릴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더 이상 누군가가 내 삶, 혹은 내 삶 속에서 태어난 활자들의 의미를 규정짓지 않기를 원했다. 내가 뱉어낸 글이 죽어간다면, 누군가가 그 글을 살리길 기다리기보다 차라리 내가 죽이고 싶었다.

선택 받아야 하는 삶이라는 것은, 그리고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고통스럽다.
 그리고 읽히지 못할 글을 쓴다는 것은, 그것만큼이나 비참한 일인지 모른다.


Originally published at lee-taegyung.tumbl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