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나운 꿈을 꿨다. 누군가 나를 쫓아왔고, 나는 도망쳤다. 두려움이었다. 너무도 생생해서 꿈에서 깨고 난 뒤에도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를 고민했다.

해몽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해야할 일에 대한 스트레스. 압박. 뭐 그런 것들의 표상이라고 했다. 얼추 맞는 말인 것 같아 나는 더 두려워졌다.

#2. 노동절이었다. 조선소에서는 여섯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이 땅에서는 여전히 책임은 아래로 미루고, 이윤은 위로 밀어올리는 비겁한 이윤 생존의 구조가 지배하고 있다. 만약 그 억겁의 크레인이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안전 책임자가 조금 더 책임있게 점검했더라면, 우리가 이윤보다 인간을 더 가치있게 생각했더라면.

노동절은 누구의 유산인가. 인권은 누구에게 남겨진 자산인가. 그것 또한 돈으로 매겨져 누군가에게는 버려지는 존재가 아닌가.

#3. 굳세어라 유승민. 나는 유승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토론 방식은 현명하게 저열하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비겁한 전제로 타자를 끌어들인다. 전형적인 낮은 지지율, 팔로워의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저열한 공작.

그럼에도 나는 좌파 정권의 창출 저지라는 껍데기를 쓴 채 이합집산하는 저들을 보며 차라리 유승민을 응원하는 것이 더 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좌파 정권, 귀족 강성 노조. 소수자를 다수화시키는 저열한 프레이밍에 동조하는 이들. 소수성은 단순히 뱃지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삶이고, 누군가에게는 정체성이다. 그것을 그렇게도 무참히 짓밟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눈 뜨고 지켜볼 수 없다.

홍준표. 나는 당신의 정치적 파멸을 지켜볼 것이다. 당신이 뱉었던 온갖 저주와 멸시가 모두 당신에게 돌아가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을 지켜볼 것이다.

#4. 나는 얼마나 무감각했던 것인가. 나는 얼마나 타인의 슬픔에 둔감하고,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했던 것인가. 슬픔의 시대에서는 나의 안녕함조차 죄의식이 된다. 오늘의 나의 사나운 잠자리는 고해성사다. 나는 보속을 마쳐야 한다.

언제까지 나는 비겁하게 도망칠 것인가. 나는 메인 스트림일 것이라는 저열한 안도감을 언제까지 이어갈 것인가.

신이 있다면 나를 바른 길로 이끌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