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급 호칭제에 대한 정리

스타트업이라는 기업에 대한 정의는 분분하지만, 통상적으로 태생부터 기존의 기업과 차별화된 신식 기업문화로 무장하여 빠른 성장 속도를 내는 기업을 일컫는다. 이는 어떤 차원에서는 사회혁명운동과 유사한 부분이 있고, 실험적이기도 하지만 미래를 대비하여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어가는 세력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다.
이러한 섹시한 이미지 덕분에 많은 청년들이 스타트업에 뛰어들고 있고, 많은 분들이 기존 기업들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비즈니스의 아이디어와 조직의 대내외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대한 고민들을 즐기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에는 소통의 기반이 되는 호칭제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를 다뤄 본다.
개혁의 배경
우리의 경우, 사실 호칭 부분에서는 처음에는 크게 고민할 거리가 없었던 것이, 친구사이였던 네명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내부에서의 호칭은 ‘형’ 내지는 늘 부르던대로 이름을 불렀고, 외부에서는 ‘이사님’ 라고 불렀다. 이후 직원분들이 입사하고는 내외부에서도 이사님들은 ‘이사님’이라고 부르고 직원분들은 친근하게 이름을 불렀다. 나를 비롯한 코파운더들은 공군장교 출신들이었고, 우연히도 직원분들도 공군출신이 많아서 그렇게 부르는게 친숙하고 익숙해보였다. ( 공군에서는 하계급자에게는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

당시 단 하나의 목표는 서비스 개발을 고도화시켜 런칭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개개인의 의견보다는 정해진 개발스케쥴을 하루하루 맞춰 가는 것이 더 중요해서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대한 고민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런칭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유저들의 피드백 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게 되었는데, 호칭상에서 멀어져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말하기엔 분명 한계가 있었다. 우리가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를 때와 ‘어머니’라고 부를때 와는 심적으로 느끼는 관계는 분명 멀기 때문에 고민을 털어 놓기에 한계가 있지 않는가? 직원들과의 회의시간이나 업무적인 대화를 나눌때, 분명 그분들 속에 다른 생각이 있는 것 같았지만 쉽게 얘기를 꺼내지 않는 모습을 느꼈다. 그리고 직원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효율적이고 신속한 소통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최근에 모 대기업이 ‘스타트업에서 배운다’ 라는 프로젝트 아래, 노타이에 반바지 출근도 하게 하고, 직급 호칭제도 모두 없애고 상하간에도 이름에 님을 붙여 부른다고한 적이 있었는데, 내부자에게 물어보니 상무이사 이상의 임원들에게는 기존 직급 호칭을 그대로 쓰고, 그 미만의 직원들끼리만 적용한다는 것에 실소를 터트린 적이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우리도 그러고 있었던 것임을 알았을 때, 당장 고쳐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우리는 뭐가 어울릴까?
- 직급을 만들어 부여하는 방법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회장-사장-이사-부장-과장-대리-주임 직급체계의 개념은 일본의 제조산업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군대계급 역시 근대식 일본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 군대의 편제는 육군은 일본, 공군해군은 미국의 영향 )

일본의 잔재라 무조건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관료제에 어울리는 호칭제는 분명 관료주의가 필요한 산업군에서는 최적의 제도라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비즈니스는 관료주의적 사상으로는 발전할 수 없기 때문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게다 이것은 신분제나 다름 없기 때문에 본인의 취향도 아니었고.
- 매니저님
우리 코파운더 중에 이 호칭제를 쓰는 회사에 근무한 적이 있는 분의 전언에 따르면 (여기도 인어처럼 부장 이하만 다 매니저로 통일) 크리에이티브하게 일하고 회의하기에 정말 좋은 제도라고 했지만, 우리 직원들은 상당수가 개발직군이거나 디자이너라서 매니징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 별명을 부르는 방법
의외로 별명이 없는 사람이 많을 뿐더러, 나중에는 상대방의 본명을 까먹게 되는 경우가 많고, 장난스러움에 격이 좀 떨어지는거 같아서 오래 고민할만한 방법은 아니었다.

- 영어식 이름을 부르는 방법
이 역시도 영어식 이름이 없는 사람이 많았던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많은 분들이 영어식이름의 어원도 모르고 단지 발음이 이쁜 이름을 자신의 영어식 이름으로 정한다는 것에 늘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서양식 이름의 대부분은 크리스트교의 성경이나 로마-그리스-이집트 신화에나오는 등장인물이 각국의 발음에 따라 변모된 경우가 많다. (예: 성 요한-John, 대천사 미카엘-Michael 등) 허나, 서양에서 태어나진 않았으나, 서양식 이름은 가지게 되는 경우는 보통 어학연수 갔을 때 선생님이 지어주시거나, 개인이 인터넷에서 ‘영어이름 추천’ 을 검색해서 맘에 드는 것을 고르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한 동생이 어학연수를 다녀와서는 자신의 이쁜 이름을 두고 클로에라고 부르라고 하길레, 무슨 의미냐고 물었더니 단지 발음이 이쁘고, 명품느낌도 나서 그렇게 지었다는 대답을 듣고 망연자실한 적이 있었다.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쁜 이름을 두고 왜 뜻도 모르는…
그렇다고 아시아인이 영어식 이름을 쓰는 것 자체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서구권에서 태어나서 자랐거나, 서구권과 업무를 빈번하게 하는데 외국사람이 발음하기 힘든 이름을 가졌을 때는 어쩔 수 없지 않은가.
- 이름에 님을 붙이는 방법
우선 자연적인 현상이나 질서를 의미하는 단어를 조합해서 새로운 뜻을 조합해 만드는 동북아 문화권 및 Native Americans (인디언은 틀린 표현)식 작명법에 대해서 늘 멋지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예:용감한 그림자, 지혜로운 전사 등 )그래서 나는 면접장에서 지원자에게 늘 이름의 뜻과 스토리를 물어보는데,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께서 이런 사람이 되어라 라는 취지로 지어주신 경우가 많고, 본인의 삶의 방향도 이름의 컨셉대로 살아온 경우가 많아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재미있었다.

본인의 이름을 예로 들면 아버지께서, ‘참 진(眞)’에 ‘집 우(宇)’를 써서 집안의 대들보가 되어라는 의미로 지어 주셨는데, 건축대학에 지원할 때와 건축설계사무소에 면접을 볼 때, ‘참된 집을 짓는 사람이 되겠다.’ 라고 개조해서 PR을 하곤 했었다.
실제로는 미들네임의 진(眞)은 참 진이 아니라, 항렬에 따른 돌림자 때문에 ‘진압할 진(鎭)’을 쓰는데, 지금 하는 일을 보면 집을 제어하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으니 이름대로 살고 있는 것 같다.
아내의 이름은 ‘은 은(銀)’자에 ‘구슬 주(珠)’를 쓰는데, 현재 은행에 다니고 있고, 우리의 코파운더 중 덕중님의 경우 덕(德)이 매우 있는(中) 사람이고, 세준님은 세상(卋)에 밝은(晙)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의 이름은 자신의 인생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영혼이 담긴 뜻이 아닐까?
그래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나를 비롯한 모든 임직원들의 직급호칭은 과감히 없애고 이름에 님을 붙여 호칭, 지칭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시행한지 현재는 2주 가량 되어 속단할 수는 없지만, 더 대화가 많아지고, 더욱 친근해졌고, 회의시간에 본인의 아이디어가 아무리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해도 자유롭게 제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

어제는 사무실 테라스에서 바베큐 파티를 했는데, 많은 멤버분들이 나에게 내가 생각하지 못한 우리가 발전하기 위한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주셨고, 뭔가 예전보다 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어떤 분들은 대표 및 임원들의 권위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지만, 미래의 리더십은 그저 앉아서 군림하는 권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과의 소통과 신뢰, 그리고 개인의 실력에서 나오기 때문에 지금의 판단이 옳다고 믿는다.
우리는 스타트업이다. 스타트업은 수시로 변화하는 세계질서에 맞춰 능숙하고 신속하게 편대를 바꿀 수 있는 결정과 실행력이 가장 중요하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톤유쿠크, 유목민족인 돌궐국의 재상, 645–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