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매니저 says,
요즘 시대에 리더십은 인류가 갖추어야 하는 덕목으로 자리매김한 것 같습니다. 베스트셀러부터 ‘00가지’로 제목을 맺음 하는 각종 자기계발서, 국정을 책임지는 정당이나 무대에 서는 아이돌 그룹, 급훈부터 조직의 인재상까지 빠지는 곳이 없습니다. 리더란 모든 사람이 꿈꾸어야 하는 상(想)이기도,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단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리더십에 대한 정의나 여러 가지 방법(how to)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훌륭한 리더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면 그만큼 ‘리더가 되는 법’에 대해서 조금 더 다양한 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더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보다 리더의 자리에 서기까지 어떤 역할을 거치게 되는지, 그 역할에서는 어떤 -십이 필요한지. 누구든 리더가 될 수 있겠지만, 누구든 리더가 첫걸음이 되는 경우는 드문 일이니까요. 더불어 리더가 이야기하는 조직을 운영하는 법, ‘이런’ 팀원을 이렇게 대하는 법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팀원이 조직 안에서 ‘어떻게’ 혹은 ‘이런’ 리더와 일하는 법에 대해서 들어본 적은 별로 없습니다.
저는 씨프로그램에서 ‘매니저’라는 직함을 갖고 있습니다. 회사의 구조로 보면 러닝 펀드를 담당하는 펀드 매니저, 각각의 프로젝트에서는 프로젝트 매니저 (PM), 그리고 러닝랩을 담당하는 러닝 팀의 헤드 매니저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제가 가장 잘 아는, 매일의 연습과 실전을 통해 습득 중인, 한 매니저가 생각하는 매니저십(manager-ship)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매니저가 말하는 매니저
매니저로서 일을 지속하다보면 자연스레 리더십에 대한 외적 요구와 내적 욕구가 함께 늘어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연차가 늘고 직급이 오르면서 자연스레 기대받고, 스스로 다음 단계를 준비하면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역량이 바로 리더십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리더십은 수련의 시간이 필요하고, 좋은 리더가 되는 수련은 리더의 자리에 선 다음에야 가능합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리더는 연습과 동시에 실전에 뛰어들어야 하는 역할인 셈이지요.
그렇다면 매니저의 단계에서 리더십을 갖출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저는 실제로 리더가 되기 전까지는 리더십을 길러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리더가 되는 기회를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의 숙련도가 높아진다고 해서 리더십이 축적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의 경험과 퀄리티가 쌓여서 리더의 역할을 수행할 기회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더 다양한 일의 경험과 더 나은 기회를 확보하는 매니저의 세 가지 특성은 책임감(responsibility), 신속함(speediness), 대응력(responsiveness)입니다.
매니저십 원, 투, 쓰리
책임감은 주인의식이 아니다
책임감은 맡은 일을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자세를 말합니다. 보통 주인의식(ownership)으로 통용되는 ‘내 것이라 여긴다,’ ‘내 회사인 것처럼 일한다’는 관념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조직에 기여하는가보다는 지금 하는 일이 조직이 그리는 그림에서 어떤 퍼즐 조각인가, 이 일을 통해서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은 무엇인가, 나의 커리어 계획에 어떤 포트폴리오를 쌓을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몰입하는 태도입니다.
예전에 이런 조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네 이름이 쓰여있지 않은 보고서에도 네 이름 석 자가 박혀있다.” 조직의 지도부를 대상으로 발표할 일은 없지만 모든 사업부에 배포될 수(도) 있는 보고서를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는(self-standing) 수준으로 만들고 나면, 다른 기회가 알아서 찾아올 거라고요. 결국 어떤 기회가 주어졌느냐 이전에 눈앞의 일에 몰입하는 것이 기회를 담는 그릇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회’는 기회의 이름표를 달지 않고 일의 형상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니까요.
신속함이란 기한(Deadline)보다 3일* 빠르게
기한이란 일이 완성되어야 하는 시점을 의미하지요. 일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리뷰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리뷰는 시행착오를 통해 오류를 바로잡거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서 완성을 완성다운 수준으로 만드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의 완성도를 100%로 만드는 여유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외부 혹은 내부의 클라이언트와 약속한 시점보다 조금은 더 일찍 일을 마무리 짓는 신속함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은 방식은 같은 프로세스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무언가의 퀄리티를 높여 나가는 디자인 싱킹, 스프린트, 패스트 프로토타이핑, 애자일 방법론 등의 적용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피드백을 나누고 적용하는 물리적인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자, 어떤 수준의 퀄리티를 목표로 하느냐에 대한 지침이 되는 태도와 같습니다.
(*물론 일이나 조직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 3주 혹은 3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대응력은 비전을 실현하는 힘
리더가 조직의 앞날을 내다보는 눈의 역할을 한다면, 매니저는 시선이 머무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팔다리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몇 가지 스포츠에 비유해볼까요. 보드를 처음 접할 때 ‘방향을 바꾸고 싶다면 원하는 방향으로 시선부터 돌려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몸을 아무리 틀어도 시선이 다른 곳에 고정되어 있으면 절대로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요. 스쿼시를 배울 때도 ‘공이 라켓을 떠나서 나아가는 순간까지 시선을 떼지 말아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에너지를 어느 곳으로 흘려보내는가에 따라 공이 손끝을 떠난 직후는 비슷할 수 있지만, 마지막에 머문 시선 끝에 공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실제로 그렇더군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면, 제시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힘은 매니저에게 있어야 합니다. 막다른 길도 끝까지 가보고 얼른 돌아온 후에야 올바른 이정표를 그릴 수 있습니다. 더불어 핸들보다 어떤 엔진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목적지와 목적지까지 가기 위한 길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수영장에 가기 위해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을 20분 달리는 것과 오아시스를 찾아 사막을 4시간 동안 가로지르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니까요. 일이 곧 일상의 경험이라면, 어떤 경험이 될 것인가는 비전과 비전에 대응하는 능력에 달려있습니다.
리더십과 매니저십
이 세 가지 특성은 리더에게 요구되는 세 가지 특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흔히들 리더가 갖추어야 하는 덕목으로 위임하고 마이크로 매니징하지 않기, 충분한 시간을 주고 제때 피드백하기, 올바른 비전을 제시하기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리더도, 매니저도 나 홀로 조직을 혁신으로 이끌거나 일터를 동기가 샘솟는 환경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리더십을 뒷받침하는 매니저십, 매니저십을 가능케 하는 리더십이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모두 제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평등한 조직문화에서도 일의 흐름은 존재하고, 중요하지 않은 역할이 없는 일터에서도 조직을 대표하는 역할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모두에게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위계와 서열을 자유와 존중으로 대체하는 사회에서는 서로의 역할에 대한 이해와 협업이 더욱 중요합니다. 리더는 매니저(팀원)에게 실패할 기회를, 매니저(팀원)는 리더에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함께 자라고, 함께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