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매니저 says #1.

Learning Fund를 소개합니다

Lisa Han
9 min readMar 2, 2018

‘Learning Fund를 담당하고 있습니다’라고 제 자신을 소개합니다만, Learning Fund를 소개하는 일은 참 쉽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누구와 어떻게 하는지 간략하게 설명해달라는 요청을 심심치 않게 받는데 말이지요. 상대방을 한 번에 이해시키는 일이 어려운 이유로 조직의 방향성을 탓한 적도, 나 스스로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탓한 적도 있습니다. (이제 와서 자신 있게 말하건대 이 때문은 아닙니다.) 포트폴리오를 쌓는 일이 자연스레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글쎄요, 참 쉽지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든 고개를 끄덕일만한 투자만을 골라 하지는 않습니다. 교육이라는 방대한 개념에 단 하나의 정답을 만들 생각도 없습니다. 우리가 응원하는 일에 모두가 발 벗고 나서기를 의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교육을 얼만큼, 어떻게 받았든 간에 혹은 받지 못했든 간에 누구나 교육이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지 않던가요. 그렇다면 지금 꼭 이루어져야 할 시도가 무엇인지, 언제까지 어떻게 완성되어야 하는지 누군가는 고민해야합니다. 현 교육에서의 마침표를 물음표로 만들고, 물음표를 다시 느낌표로 만드는 일. 그런 어렵고, 귀찮고, 험난한 일을 누군가는. 말하자면 Learning Fund는 이런 ‘누군가’를 찾고 돕는 일을 합니다.

마침표를 물음표로 만들고, 물음표를 다시 느낌표로 만드는 일 (© Lisa Han)

C Program은 ‘누군가’를 파트너라고 부릅니다. 영어식 표현으로도 Investee(피투자자)라는 단어는 거의 쓰지 않습니다. 내부적으로 언어를 규정한 적은 없지만, 잘 될 것 같은 일에 베팅하는 것이 아니라 잘 되어야 한다 싶은 일을 같이 한다고 모두가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기존의 조직 체계나 여타의 투자회사 안에서 파트너라는 호칭은 내부 고위급 간부를 가리킵니다. 그렇다 보니 맥락을 공유하지 않고 파트너, 파트너 하다가 오해를 산 적도 제법 있습니다. “아, 그런 파트너를 말씀하셨던 건가요?”라고.

실제로 투자 결정에 따라 계약이 체결되고 나면 돈 얘기는 전체 대화의 1할 정도가 됩니다. (물론 아주 큰 1할이죠. 숫자는 중요합니다.) 사업이나 프로젝트의 목적,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 최종 아웃풋의 의미와 형태, 이 일이 잘 되고 나면 무엇이 되는가, 이 일이 잘 되었다는 것은 무엇으로 판단하는가에 대해 계속해서 논의합니다. ‘논의’라는 단어에 이미 내포되어 있지만 명확히 하자면, 한 쪽이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다른 쪽이 무조건 수용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투자 ‘하는’ 입장에서든 투자 ‘받는’ 입장에서든 그런 관계에서는 협업은 불가능합니다. 용역은 가능하겠지만요. 이쯤 되면 파트너라는 호칭만큼 적절한 것이 없습니다.

물론 1) 약속한 목적과 목표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2) 1에 부합하는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투자 ‘하는’ 사람의 역할입니다. 투자는 투자니까요. 하지만 투자 ‘하는’ 입장에서도 재정적 지원을 약속하고, 파트너십에 부합하는 투자를 위해 그 외의 필요한 모든 자원을 공급(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합니다. 네트워크를 동원하고 전문가를 섭외합니다. 참고할 만한 사례를 연구하고 영감이 될만한 콘텐츠를 제작합니다. 어떤 자리에서든, 정말 어떤 자리에서든 파트너의 지지자(advocate)로서 존재하고 또 다른 투자유치 기회를 마련합니다. 네, 잘 되어야 하는 일을 잘 되게 하는 일을 합니다.

교육과 관련된 어젠다는 무궁무진합니다. ‘죽을 때까지 배운다’는 말이 있듯이 누구든 교육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교육자를 위한 좋은 환경을 갖추는 것도, 교육자를 길러내는 일도 중요합니다. 교육은 불평등합니다.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효율만을 따집니다. 과하거나 부족합니다. 좋다는 것은 비싸고, 비싸다고 돈을 벌어다 주지도 않습니다. 모두에게 필요하지만 모두가 받을 수는 없습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줄 수도 없고, 주어서도 안됩니다. ‘교육에 정답이 없다’는 말은 어떤 의미로든 정답인 말입니다. 그래서 늘 듣습니다. “Learning Fund는 무엇에 투자하나요?” 그리고, “왜요?”

Learning Fund는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배움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일에 투자합니다. 이경미 감독의 말을 빌자면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속도와 우리가 통과해야 하는 인간으로서의 최고 속도가 있는데 세상은 그보다 빨리 흘러간다”라고 합니다. 교육이 미래를 준비하는 수단이라면 빠르게 흘러가는, 심지어 빠르게 변화하며 흘러가는 세상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는 다음 세대에게 꼭 필요한 질문이 될 테니까요. 현 상황에서의 불안과 불편을 정확하게 꼬집는 것보다는 그렇다면 무얼 해야 좋을까에 대한 아이디어를, 누구든 기본적인 교육의 기회를 갖는 것보다는 누구든 그만의 선택지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옳고 그른 것,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의 구분이 아닙니다. 여느 조직과 마찬가지로 해야 하는 것 중에 하고 싶은 것, 그중에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랄까요. 그래서 C Program의 Learning Fund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다양한 선택지가 생기는 것에 집중합니다.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다양한 선택지가 생기는 것 (© Davide Bonazzi)

시도는 학교 안팎에서

시도는 학교 안팎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기존 학교 시스템 안에서는 단번에 가능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학생과 교사에게 수동적으로 우수하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과 교사가 만나는 교실 안에서 수업이라는 시간의 주권은 교사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학생에게 주권을 넘겨줄 수 있는 이도 교사입니다. 그렇다면 학생을 위한 새로운 수업을 고민하는 교사는 변화의 시작이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미래교실네트워크와 펀쿨을 만났습니다. 거꾸로 교실을 시도하는 선생님들의 모임이 지속될 수 있도록, 반짝거리는 수업 아이디어가 10만 원의 학급 운영비 때문에 사라지지 않도록 투자했습니다. 더불어 이런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배움의 공간>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배움의 방식이 변화하면 함께 바뀌고,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이 직접 만드는, 가르치기 편한 곳이 아니라 배우기 좋은 곳으로써의 학교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요약하자면 학생을 중심에 두고 교사, 수업, 교실이라는 3개의 키워드로 시스템적인 변화에 투자합니다.

학교 밖 시도가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는 기존 교과만으로는 다양한 시도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미술 시간에 예술을 배울 수 있는가, 디자인은 대학에 가야만 배울 수 있는 ‘스킬’인가, 메이커는 3D 프린터만 있으면 될까, 시민사회에서의 시민성은 도덕과 어떻게 다를까, 수학 문제보다 내 주변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나, 문제를 찾고 해결해보는 것만큼 궁금한 것을 탐구해보는 경험도 필요하지 않을까. 소프트 유니버스, 달꽃창작소, 메이커스, 정세청세, 아쇼카, 진저티 프로젝트를 만나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질문들입니다. 다음 세대에게 꼭 필요한 배움이라는 확신이 들면 학교 밖 실험은 울타리를 넘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방과 후 프로그램은 교과 수업으로 진화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합니다.

시도는 학교 안팎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Andrea De Santis)

선택지가 생기는 루트는 두 가지

다음 세대에게 선택지가 생기는 루트는 두 가지로 간주합니다. 그가 생각하지 못했던 선택지를 보여주는 것과 새로운 선택지를 만드는 것. 선택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에게 영감이나 자극을 줄 수 있는, ‘저런 일을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싶게 할만한 사람들(Living Proof)에게 투자합니다. 대표적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아시안 탐험가들을 지원하는 그랜트(grant)가 이 영역에 해당합니다. 그들이 대표하는 선택지가 지속될 수 있도록, 다음 세대가 그들과 만날 수 있도록 투자하는 것은 지구를 위한 과학 강연 시리즈, 젊은 작업자들과 만나는 Camp C를 진행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선택지를 만드는 일은 가장 어려운, 그렇지만 앞으로 Learning Fund에서 가장 매진하고자 하는 일입니다. 다음 세대에게는 더 많은 선택지가 필요합니다. 졸업장이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지만, 기존 시스템 안에서의 성적은 여전히 성공을 가늠합니다. 기존의 대안적 선택지는 메인스트림(main stream)과 ‘다른’ 니치(niche)가 아니라 표준(standard)보다 ‘못한’ 이하(below standard)로 치부됩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만큼, 입시를 거쳐 대학교를 선택하는 것만큼, 그만큼 당연하고 동등한 선택지가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요. Learning Fund는 PaTI가 대학생에게, 거꾸로 캠퍼스가 고등학생에게 이와 같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믿고 투자합니다. 교육은 미래를 보장합니다. 학교가 학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내가 배우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면, 배움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면, 역사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탐구하는 일이라면, 교육은 반드시 미래를 보장합니다.

교육은 반드시 미래를 보장합니다 (© Davide Bonazzi)

C Program이 하는 일은 이 시대의 블록체인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직은 소수만이 잘 알고 대부분이 모르는, 한 마디로 설명하기에 복잡하고 선례가 없어 언어를 창제해야만 하는 일. 누구든 당장 필요하다고 여기기 어렵지만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 모두가 알아야 더 잘 할 수 있는 일. 그래서 어렵지만 응당 그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되려 자신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간략하게 설명하는 데에 번번이 실패하고 하는 변명이라기에는 거창합니다만, 이번 생에 투자 회사는 처음이라. 아, 벤처 기부 펀드(Venture Philanthropy)는 처음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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