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매니저 says #4.

교육이 상품인가요?

Lisa Han
7 min readMay 14, 2018

‘상품화’라는 표현은 무엇을 대상으로 쓰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본래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아니라면 부정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몇 가지 예로 ‘노동의 상품화’, ‘가난의 상품화’, ‘성의 상품화’가 있겠네요. 이들의 상품화가 불편한 이유는 재물이나 자본을 수단으로 거래되어서는 안되는 고결한 가치가 담긴 정체를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맥락에서든 각각의 말에 담긴 누군가의 행위, 상태, 본성, 그리고 그 중심의 ‘누군가’를 가리키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육의 상품화’라 함은 모두를 향해야 하는 교육이 공공성을 잃고 자본에 귀속되는 꼴을 일컫습니다. 교육의 값어치가 가격으로 귀결되고, 비싼 교육은 구매력을 가진 고객에게 제한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겠죠.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이 있다면 판매자가 있듯이 자동적으로 고객은 학생, 판매자는 교육자를 가리키게 됩니다. 이 패러다임 안에서는 당연하게도 소비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마케팅,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시장경쟁, 일정 수준의 판매량이나 마진을 확보하기 위한 갖은 행위들이 연상되는 거지요. 학생과 교육자를 대척점에 세우고 교육을 사고팔게 만드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히 교육자라면 더욱, 이와 같은 개념에는 반기를 들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상품화가 뭐길래: 소비자, 판매자, 그리고 생산자

실제로 ‘상품화’라 함은 판매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상품으로서 생산, 판매, 소비되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포함합니다. 개념을 쪼개어 보니 생산 단계에서 새로운 주체인 생산자가 등장합니다. 판매자나 소비자라면 사고파는 1:1의 관계, 그리고 생산-판매-소비의 순서가 자연스러울 겁니다. 하지만 생산자라면 조금은 다른, 꽤 복잡한 연쇄 과정을 필요로 하지요.

하나의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 무엇이 왜 필요한가부터 따져야 합니다. 누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좋아하는지, 트렌드는 무엇인지 꼼꼼히 살펴야 하죠. 가끔은 소비자가 상상하지 못한 영역에서 필요를 만들어내는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기도 합니다. (보통 혁신은 이럴 때 나오지 않던가요.) 충분한 데이터를 얻었다면 그 쓸모를 확인하는 콘셉트 테스트, 시제품을 만드는 프로토타이핑, 실사용에 따른 수정 및 보완을 위한 사용성 테스트 등의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함께 논의하기도 합니다. 지금의 기술로 실현이 가능한지, 폭발적인 수요가 일어난들 공급은 가능할지, 올바른 판매 채널은 어디인지도 알아야 하니까요. 이후에는 필요한 물량을 생산하기 위해서 얼마큼의 품이 드는가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생산자에게는 소비-생산-판매-소비-생산.. 정도의 과정이 더 익숙하겠지요.

교육의 상품화? 상품화가 뭐길래 © Hayden Aube

교육은 상품일까, 교육자는 판매자일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교육을 상품으로 보는 데에는 많은 개념적, 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이 개념이 아닌 실체라는 점. 사상이나 철학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주체와 수단, 행위와 증거가 수반된다는 점. 소비 상황, 즉 ‘누가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가’를 고려해야만 나올 수 있는 UX(사용자 경험)라는 점에서 교육은 상품과 아주 유사한 ‘생산’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때, 교육자는 교육의 판매자가 아닌 생산자가 됩니다. 배우는 사람을 대상으로(주체), 학교나 온갖 교육 시설 및 환경에서(수단), 가르치고 도우며(행위), 배우게 하는(증거) 사람. ‘학생이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를 바탕으로 제품(수업)을 설계하고 소비자(학생)의 반응을 매일같이 확인하는 전문가. 매일, 매 학기, 매년 트렌드(제도 및 정책)를 살피고 소비자의 니즈(배움)와 접목시켜야 하는 이. 제가 만나온 교육자들은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테니까요.

교실은 실험실이다

상품은 판매 후에도 소비자의 의견을 필요로 합니다. 어딘가 불편하지는 않은지, 불량품은 없는지, 자주 발생하는 고장은 무엇인지에 대한 피드백을 기반으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합니다. 휴대폰의 소프트웨어의 업데이트 주기는 한 달이 채 되지 않고, 새로운 모델이 나오는 시기는 2년을 넘기는 법이 없습니다. 매번 아쉬운 부분은 말끔해지고 생각지 못한 기능을 탑재한 채로요. 오늘의 소비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만들고, 소비자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계속해서 실험하고 고쳐내는 것. 이 과정 또한 생산의 일부입니다.

교육자에게 교실은 매장이 아닌 실험실입니다. 무수한 샘플들 중 유해한 것과 무해한 것, 또는 유효한 것과 무효한 것을 가려내기 위한 무작위의 실험이 아닙니다. 현재를 사는 학생에게는 미래의 삶을 위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미래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갑니다. 오늘의 학생을 위한 최신의(up-to-date) 수업도 끊임없는 실험과 수정의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오늘의 학생은 내일의 교육을 위한 최고의 피드백입니다. 집중도가 떨어지지는 않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없는지, 실제 배움은 발생하고 있는지. 오늘의 수업에 대한 평가는 내일의 수업을 설계하는 첫 단계인 셈이지요. 교육자가 학생과 만나고 소통하는 교실은 미래 교육을 위한 실험실입니다.

학생들이 실험쥐라는게 아니라구요! © Davide Bonazzi

교육에 정답이 있나요?

국내 인기상품을 해외시장에 진출시키거나, 해외에서 잘 나가는 상품을 국내에 들여올 때도 성공이 보장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소비자의 성향과 니즈는 다르니까요. 각국의 상황도 판이합니다. 해당 상품을 동일하게 만들 수 있는 생산라인, 일관적인 응대가 가능한 고객 서비스, 상품 관리나 업데이트를 지속하는 비즈니스가 가능한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어디에서나, 모두에게 적합한 상품은 없습니다.

진일보한 교육으로 해외 사례가 언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1세기 배움에서 공감, 협력, 소통을 중요 가치로 꼽을 때, 사회ㆍ문화적 대화 및 교류(interaction)가 비교적 자유로운 지역의 교육이라면 분명 배울 점은 있을지도요. 하지만 “전격 도입”이라는 어휘까지 수반되면 당장 속이 답답해집니다. 맞춤형 학습(personalized learning)을 강조하면서 교육에는 만병통치약이 있다고 믿는 건 미신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교육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요.

상업으로 돌아가 이케아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한국 시장에서 이케아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이케아는 한국에 매장을 열기 전 80여 곳의 가정을 방문해 그들이 설정한 ‘이케아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한국 가정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제품을 전면에 배치하고, 예상 수요에 맞춰 수량과 가격을 책정했습니다. 현지화를 넘어선 동화(同化) 전략을 고민한 셈이죠. (월간<CEO&>, 한국 시장 연착륙 조건, 숨겨진 입맛을 찾아라)

새로운 교육도 학생과 교사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학생이 필요로 하는 배움은 학생이, 학생에게 필요할 것 같은 배움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교사가 아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새로운 교육을 찾는다면 가장 먼저 교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험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학생이 배움의 기회를 얻은 방식은 무엇인지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 획일적인 기준이 필요한 것인지, 맞춤형(personalized) 기준이 필요한지도요. 20명 대상의 실험은 오늘 실패하더라도 내일 성공할 수 있지만, 2천만 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교육이 상품인가요?

글쎄요. ‘교육자’가 교육의 생산자라면, 교육은 상품(上品)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