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영어학습을 허하라!

교수법 관련 수업에서 유머나 풍자, 말장난과 비꼼 등을 가르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면 거의 예외 없이 “그런 건 고급학습자 수준(advanced level)에서 가능한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백번 양보해 “언어교육의 목표가 의사소통이기 때문에 그런 건 나중에”라는 의견을 받아들이더라도 최소한 소셜미디어상의 소통에서 말장난과 유머는 예외가 아닌 필수다. 언어유희를 빼고 10대의 메신저 대화를 상상하긴 힘들다. 궁서체로만 이야기하는 연인이라… 생각만 해도 따분하다.

물론 초중급 학습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 분명 있다. 하지만 중고생 정도의 연령대라면 교사가 조금만 도와주어도 텍스트를 훨씬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반드시 목표언어로 도움을 줄 필요도 없다. 중등학교 수준이라면 언어에 대한 인식(metalinguistic awareness)이 어느 정도 발달하였기에 한국어 설명으로 충분히 유머 등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혹자는 교과서와 수능 및 학술 텍스트를 공부하기도 바쁜데 언제 그런 ‘B급 언어’를 공부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난 오히려 반대로 생각한다. 영어에 대한 흥미는 어디에서 터질지 모른다. 동기를 급격히 끌어올리는 게 만화나 코미디일 수도 있고 유머나 풍자일 수도 있다. 적절한 가이드를 통해 유머 속에서 언어가 작동하는 핵심 메커니즘(음성학적 유사성, 배경지식, 다의어, 직설법과 비유법 등)을 익힐 수도 있다.

요약하면 ‘재미의 발견’이 언어학습의 주요한 테마가 되었으면 한다. 영어가 전부 Times New Roman일 필요는 없지 않나? 가끔 Comic Sans도 좀 출연해서 다양한 언어의 맛을 느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비슷한 취지의 몇해 전 글을 붙여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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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등영어교육의 문제가 한둘은 아닙니다만 요즘 곰곰히 생각해 보는 건 이겁니다.

“(영화, 광고, 힙합, 유머, 만화, 소설 등) 재미난 걸 가지고 수업을 하면 학생들이 싫어한다. 시험에 안나오니까. 시험에 도움이 안되니까.”

영어학습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있습니다만, 아주 단순화시켜 보면 ‘동기(재미)X노출X활용’ 의 함수로 설명됩니다. 동기와 재미를 유지하면서 오랜 시간 언어를 접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신이 원하는 의미를 표현해 봐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재미가 없으면 오랜 시간 노출되는 게 괴롭습니다. 인지적인 면에서 특정 교과내용에 지속적인 주의(attention)를 가능케 하는 동력은 재미와 관심인데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의 상당 부분은 학생들의 흥미와는 거리가 멉니다. 지속적으로 언어에 노출되지 못하면 의미를 표현하기 위한 레퍼토리를 쌓기 힘듭니다. 말하고 쓸 꺼리가 없으니 영어와 나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게 되고요. 동기와 재미는 점점 떨어집니다. 악순환이죠.

수업을 온통 영화와 팝송으로 채우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재미난 꺼리를 수업에 도입하면 ‘영어 수업이 이래서는 안된다’라는 비판을 받게 되는 구조에는 분명 문제가 있죠. 교육과정에 명시되어 있는 영어과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재미 있는 영어공부가 필요합니다.

“재미난 영어공부를 허하라!”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실현되기 힘든 요구가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선생님들도 재미 없긴 마찬가지입니다. 모두에게 재미 없는 영어공부는 왜, 누구를 위해 계속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