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과 블럭체인이 바꿀 인터넷의 미래

최근 모바일 결제 시장을 두고 벌어지는 변화상을 보고 있노라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불과 올 초 만해도 공인인증서를 대체하냐 마느냐를 두고 지리멸렬한 공방이 몇 해 째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이른바 ‘천송이 코트’와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고, 알리페이 등을 필두로 해외 결제 서비스들이 대거 한국 진출을 예고 하면서 상황은 급변하게 되었다. 여기에 국내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을 장악하고 있는 카카오가 송금서비스(뱅크월렛), 결제서비스(카카오페이) 등을 내놓으며 모바일 결제 시장에 대한 관심이 그야말로 폭증하는 양상이다. 얼마 전 애플이 발표한 애플페이는 이런 흐름에 화룡점정인 셈이었다. 바야흐로 모바일결제 혁명이 시작되기라도 하는걸까.

문제는 이런 변화가 과연 근본적인 것인지, 제대로 방향성을 잡은 것인지 등일 것이다. 필자가 올 초 만났던 카카오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카카오의 전면적인 결제시장 진출은 지난해 말 카카오를 방문했던 알리바바 잭마 회장의 권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치밀한 전략에 따른 것이라기 보다는 그 시작은 다분히 시류에 맞추려는 의도였다는 얘기다. 애플페이 역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한국에서 이 서비스를 언제 이용할 수 있을 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쯤되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바일 결제 열풍이 외부적인 충격에 의해 발생한 돌발상황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근본적인 층위에서 볼 때도 현재의 흐름이 과연 진정한 변화를 담보하는 비전을 내포하고 있는 것인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근본적이라 함은, 단지 디바이스의 변화에만 국한되지 않는 결제 인프라 전반의 변화를 지시한다. 더 쉽게 말하면 ‘모바일 결제’라는 특정 형태만이 아니라 기술금융(Fin-tech) 전반을 말한다. 즉 더 편리하고 효율적인 소비자 금융환경을 만드는 기술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의 문제 말이다. 모바일 결제는 이 포괄적인 주제 아래에 속하는 하나의 영역, 기술을 통한 금융혁신이라는 숲 속에 자리한 하나의 수목 군락지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모바일 결제를 둘러싼 경쟁에서 현재 쟁점이 되는 것은 모두 디바이스 중심적이고 이용자 측면의 경험에 집중돼 있다. 즉, 이용자를 어떻게 인증할 것인가와 (인증된) 이용자에게 어떻게 과금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는 걸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동안 본인 인증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불편을 겪었는 지를 생각하면 이 정도의 발전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일이다. 실제로 새롭게 등장한 여러 서비스들은 이용자의 카드 정보를 비교적 안전하게 보관하면서 모바일 친화적인 인증방법으로 결제에 따르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그게 전부다. 해외에서는 이미 디바이스를 가리지 않고 통용돼 왔던 것을 뒤늦게나마 따라잡게 되었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까. 그 또한 의미가 있지만, 그 동안 비효율적인 금융 환경이 초래해 온 근본적인 불편과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면, 혁신이라는 이름아래 기술이 금융의 영역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이 그게 전부일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시 남들 뒤꽁무니나 쫓게 될 게 뻔하니 말이다.

디지털 화폐/장부 기술에 대한 세계적 관심과 인식변화

지난 6월 초 필자는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유럽 최대 ICT 행사 중 하나인 ICT Spring 2014에 참석했다.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반영하듯 올해 주제는 핀테크(Fin-tech) 였다. 주요 글로벌 금융기업과 은행 등 금융기관 그리고 새롭게 도약하는 기술금융 업체들이 대거 참여한 이틀 간의 행사에서 주최 측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화폐 분야에 전체 시간의 ⅓ 정도를 할애했다. Fin-tech를 논하는 자리에서 비트코인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영역으로 시민권을 획득한 모습이었다. 논의에 참여한 금융당국의 행정가, 은행가들도 비트코인을 필두로 한 디지털 화폐 기술이 가까운 미래에 펼쳐질 금융혁신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가설을 전제로 삼고 논의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이 관심사는 다만 이 유력한 기술을 어떻게 기존 법제도에 잘 융화시킬 것인지, 그것이 가져올 변화속에서 최소한의 사회안정성을 위해 금융당국의 통제력을 어떻게 유지할 지 등이었다. 필자와 따로 논의를 가졌던 룩셈부르크 금융감독원의 국제담당 부국장은 비트코인을 공부하기 위해 얼마 전 실리콘밸리에 직접 다녀왔다고 털어놓았다. Fin-tech 에 관한 논의에서 비트코인이 촉발시킨 디지털 화폐 기술이 점점 중심을 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과 작년에만 해도 거품일지도 모르는 자율 화폐 정도에 불과했던 존재가 말이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비트코인을 대하는 관점과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작년까지는 소모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킬 뿐인 화폐로서의 정체성에 주목했던 반면, 올해 들어서는 새롭고 혁신적인 기술로서의 정체성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 그것의 핵심 정체성이 화폐냐 기술이냐는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화폐나 새로운 개념의 디지털 자산에 그친다면 현실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지만, 기술로서 존재한다면 그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동력 내지는 내재적인 가치를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혁신적인 기술로서 비트코인은 어떤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가.

비트코인이 가져 온 거대한 변화

마크 앤드리슨은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인터넷 시대를 열었던 인물 중 하나다. 그는 모자이크라는 최초의 웹브라우저를 발명했고, 이후 넷스케이프사를 설립해 본격적인 인터넷의 대중화 시대를 가져왔다. 그가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 초기 투자한 거물 투자자가 되어 대중 앞에 돌아왔을 때, 그의 다음 행보가 비트코인 같은 금융시스템이 될 줄 짐작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4조원이 넘는 펀드를 운영하는 벤처캐피탈을 설립한 마크 앤드리슨이 요즘 가장 적극적인 분야는 핀테크, 그 중에서도 비트코인이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가 왜 비트코인 같은 금융기술에 주목하는 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시스템을 재구축할 기회가 오고 있습니다. 금융거래는 고작 숫자에 불과하죠. 그 본질은 정보라는 얘깁니다. (그런 숫자와 정보를 다루어) 온라인 금융거래를 하기 위해 10만명의 사람들이 맨해튼의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면서, 70년대에나 사용하던 메인프레임 장비로 가득찬 데이터센터를 운용할 필요가 있을까요.

대부분의 소비 거래에는 3퍼센트 가량의 수수료가 부과됩니다. 해외송금에는 10%까지도 부과되죠. 전 이건 거의 도덕적으로 범죄 수준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부당한) 수수료들을 없앨 수 있는 커다란 기회가 다가오고 있어요.”

마크 앤드리슨을 비롯해 팀 드레이퍼, 프레드 윌슨 같은 기술 투자업계의 거물들이 비트코인에 기대하는 것은 명확하다. 금융의 비효율성을 제거하는데 있어 비트코인에 적용된 기술이 매우 유효하고 유망할 것이라는 전망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같은 전망은 비트코인의 확산과 함께 벌써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 5월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상 ‘Bitcoin in Uganda — Empowering People’ 에는, 미국에 사는 누나와 매형으로부터 학자금을 지원받는 우간다 대학생의 이야기가 잘 그려져 있다. 웨스턴유니언 등 기존 송금시스템을 통해 돈을 받으며 많은 비용과 시간을 소모해야 했던 동생은, 매형의 권유로 비트코인으로 송금을 받고나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미국에서 돈을 보내자마자 확인하고 수령할 수 있으며, 수수료를 거의 들이지 않고 그것을 현금화 할 수 있단 얘기다.

비트코인 개요

비트코인은 2009년에 태어난 글로벌 전자지불네트워크이자 그것을 기반으로 통용되는 디지털 화폐단위의 명칭이다. 화폐이면서도 중앙 통제적인 금융기관의 개입이 전혀 없다는 점 그리고 글로벌 단일 단위를 사용한다는 것이 가장 차별화된 특징이다. 비트코인은 수학적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참여자 모두에 의해 관리와 운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중앙 관리기관 없이 사람들의 컴퓨터와 컴퓨터를 이어 직접 거래하도록 하는 ‘P2P’(peer-to-peer) 방식의 수평적 네트워크에서 거래를 포함한 모든 활동이 이루어진다. 전자적 방식으로만 거래되지만 현금을 쓸 때처럼 익명성이 보장된다. 이 시스템을 만든 이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일본식 이름을 사용했고 2008년 당시 37세 남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그가 정말 일본인 남성인지 혹은 서양인인지(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를 동시에 아주 능숙하게 구사) 그도 아니면 여러 사람으로 구성된 작업그룹인지 확인된 바는 없다.

비트코인은 발행부터 네트워크의 관리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미리 정해진 알고리즘을 통해 이뤄진다. 사람의 손길 또는 정치 따위가 이 규칙에 개입할 여지는 없다. 우선 발행을 보자. 비트코인은 발행될 총량이 정해져 있고 130여년 뒤면 발행이 끝난다. 발행은 알고리즘상에서 ‘채굴’(mining)에 따라 이뤄진다. 자신의 컴퓨팅 자원을 동원해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보안과 거래기록 관리 작업에 참여하는 사용자들이, 마치 금을 캐는 것처럼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채굴’한다. 2013년 하반기 현재 약 1200만 비트코인(BTC)이 전세계에 유통 중이고, 2145년까지 총 2100만 단위(BTC)까지만 발행된다. 비트코인 거래는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과 비슷하다.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개인 사이에 돈이 오가는 P2P 방식이다.

비트코인 현상 제대로 보기

탄생한 지 5년째 되는 해인 2013년 들어 비트코인은 지구적 현상이 되었다.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옥스포드 사전은 올해의 단어 중 하나로 비트코인을 선정했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을 비롯한 많은 인사들은 비트코인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만 했다. 한국 역시 이 열풍의 영향권에서 비껴서 있지는 못했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금융당국은 서둘러 입장과 전망을 내놓아야 했다. 연초 10달러 선에 머물러 있던 비트코인 가격은 4월에 266달러까지 치솟았고 급기야 11월 말엔 1200달러까지 도달했다. 2014년 들어 다소 소강상태를 보이고는 있지만 여전히 400달러 안팍으로 안정된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가파른 가치상승도 놀랍지만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전 세계적으로 참여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과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인프라를 이루고 있는 채굴자(miner)들의 집합적 컴퓨팅 파워가 천문학적 규모로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비트코인의 거래규모는 2013년 인터넷 시대의 가장 성공한 전자지불네트워크인 페이팰의 거래규모를 넘어섰다.

비트코인을 처음 접하게 된 사람들의 반응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단연 당혹감일 것이다.

사이버 머니 같은데 발행기관도 관리기관도 소유주도 없다. 그런데도 다른 나라와의 금융 거래까지도 오류와 혼선 없이 할 수 있다. 앞선 사례에서도 확인했듯이, 어디에 있든 자유롭게 주고 받을 수 있고 해외로 돈을 보내는 경우에도 수수료가 거의 들지 않는다. 발행량이 정해져 있어서 희소성을 지니는데다가 현찰을 사용할 때처럼 익명성까지 보장된다. 이런 이유로 이 보이지 않는 화폐, 국가의 보증도 없는 디지털 신호가 금값으로 치솟고 있다. ‘이게 도대체 뭐야?’ 라는 반응을 보이며 혼란에 빠져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디지털 신호에 불과한 숫자가 금값이 된 상황이 넌센스처럼 느껴지거나 일종의 사기극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이런 혼란은 비트코인이 화폐이면서 동시에 글로벌 전자지불네트워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데서 나온다. 더 나아가 실리콘밸리의 기술산업전문가들과 유력 벤처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을 새로운 금융혁신의 플랫폼이자 프로토콜(기본이 되는 규약)로 간주한다. 이메일의 프로토콜인 SMTP, 웹의 프로토콜인 HTTP 처럼, 미래 금융의 프로토콜이 될 것이라 예상한다. 이 전자 금융네트워크와 금융플랫폼이라는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비트코인은 비로소 화폐로서의 가치와 기능성을 획득하게 된다.

쉽게 풀어서 얘기해보자. 역사상 가장 저렴하고 효율적인 금융거래를 전 지구적으로 가능케 하는 이 혁신적 금융네트워크를 이용하려면 비트코인이라는 독자적인 화폐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화폐는 발행량이 정해져 있어 희소가치를 지닌다. 2145년까지 2100만개까지만 발행된다. 혹독한 검증을 거치며 복제, 위조 등 보안 문제에 대한 의구심도 거의 해소됐다. 설상가상 네트워크 참여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몇 달 전엔 거의 없다시피 했던 중국 시장이 새로 편입됐고, 한국만해도 불과 석달여만에 몇 만명이 새로 참여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많은 벤처기업들이 두둑한 투자금을 자양분삼아 새로운 금융서비스들을 만들어내며 생태계는 나날이 풍성해지고 있다. 여기에 기존 금융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불안까지 중첩되며 더 폭발력을 보이게 된 것이 바로 올 들어 목도했던 비트코인 현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투기적 기대감과 그로 인한 거품으로 인해 더 부풀려진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2013년 비트코인 거래소 ‘코빗’이 생겨난 이후 본격적으로 비트코인 경제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얼마 전 대기업 최초로 CJ E&M이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도입하는 등 더욱 확산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올 7월 컴퓨터 제조업체 델이 비트코인 결제를 도입한 데 이어 최근에는 온라인 결제 업체 페이팔도 비트코인을 결제 시스템에 통합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는 학생들에게 비트코인을 나눠주면서 가상화폐의 사용과 학습을 유도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비트코인이 화폐를 대체할 수 없을지 몰라도 효율적인 지급결제 수단으로서 신용카드와 계좌이체 등을 대체·보완할 가능성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블럭체인 개요

비트코인의 기술적 핵심은 블럭체인이라는 분산장부(Public Distributed Ledger) 기술에 기반하고 있다. 블럭체인은 일종의 금융장부인데, 비트코인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모든 개개인의 P2P 거래내역이 이곳에 기재된다.

블럭체인은 인류가 최초로 갖게 된 글로벌 클라우드 분산장부이다. 하버드대학교 니얼퍼거슨 교수 등 경제사학자들에 의하면, 인류는 기원전 2,000여 년 전부터 화폐에 앞서 장부를 거래에 이용해 왔다. 하지만 이는 만나서 거래할 수 있는 개인 간에서만 유효한 것이었고, 그나마 매우 불편한 것으로 많은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화폐를 고안해냈고, 장부에 기입하지 않고 거래 당시 시점에 물건과 화폐를 교환함으로써 채권-채무 관계를 청산하는 방식으로 금융거래를 발전시켜 온 것이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화폐의 역사다. 한편 은행이 등장하면서 장부의 기입은 은행의 몫이 되었고 개인은 주로 현금을 주고 받으며 거래를 해왔는데, 인터넷 시대가 열리며 다시 대부분의 금융거래가 온라인 장부로 대체되었다. 이제 예전처럼 개인간 현금을 주고 받는 것은 드문 일이 돼 버렸고, 대부분 신용카드를 쓰거나 인터넷뱅킹을 통한 금전거래, 즉, 개인간 직접거래가 아니라 은행(또는 신용카드사)을 통한 장부상의 숫자 변화가 지배적인 금융거래의 형태가 되기에 이르른다. “금융은 숫자와 정보에 불과하다”는 정보/금융 전문가들의 얘기가 현실화 된 셈이다.

이렇게 금융기관이 모든 거래를 중앙집중적인 장부(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해 관리하다보면 비용이 올라갈 수 밖에 없다. 제3자의 개입을 필수로 하는 거래는 높은 거래 비용 수반하기 때문이다. 화폐의 단위도 국가마다 다르고 금융회사들의 네트워크(장부)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매 거래마다 이를 연동하는 비용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블럭체인은 바로 이런 비효율적인 구조를 혁신하려는 기술적 시도로서, 누구나 비트코인이라는 p2p 프로그램을 이용해 돈을 주고 받으면, 제3자 없이 글로벌 단일 장부에 그 거래내역이 불변의 기록으로 기입되는 식으로 거래가 확정됨. 따라서 거의 비용이 들지 않음. 아울러 마치 오프라인에서 현금을 주고 받듯이 개인 간 거래 가능해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블럭체인에 기반한 비트코인 거래의 본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은 코인 소유주의 디지털 서명의 연결(chain of digital signature)”이라고 정의하였다[Sathoshi Nakamoto,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2008]. 디지털 서명이란 공개키 암호화를 기반으로 문서의 송신자(그리고 문서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으로(자세한 내용은 비트코인의 주소, 거래, 그리고 지갑을 참조), 비트코인 맥락에서는 비트코인을 보낸 사람(from)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비트코인 거래란, 보내는 사람(from)이 자신의 코인에 받는 사람의 주소(to)와 발행금액을 더하고, 여기에 보내는 사람이 디지털 서명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다(단순화를 위해 해시 과정은 생략한다). 받은 사람은 디지털 서명을 확인하여 코인의 진위 여부를 판단한다.

다음 그림은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는 상황을 보여준다(이해를 돕기위해 1개의 코인으로 1개의 새로운 코인을 생성하는 경우를 나타냈다. 실제로는 2개 이상의 코인으로 2개의 새로운 코인을 생성하는 경우도 많다).

블럭체인 기술의 미래

앞서 살펴보았듯이, 비트코인은 단순히 세계인이 함께 쓰는 새로운 단일화폐에 그 본질이 있지 않다. 오히려 중개자없이 전 세계 누구나 사용이 가능한 결제네트워크이며 그것을 가능케 하는 블럭체인이라는 분산장부 기술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블럭체인 기술을 이용하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비트코인과 같은 형태를 뛰어넘는 훨씬 많은 일들을 할 수가 있다. 물론 금융에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블럭체인에 기록되는 모든 개별 거래내역에 특정한 조건문 내지는 프로그램을 입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스마트 금융 : 조건에 따라 지불이 이뤄지거나 자동으로 유보되는 스마트 거래가 가능해진다. 예컨대 에스크로 서비스 같은 것이 별도의 시스템 없이 금융거래에 내재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확장하면 개인 간의 옵션 거래도 가능해진다. 내일 날씨, 금 시세 등에 연동한 금융거래가 중개인 없이도 가능해진다.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줄 때, 나이가 스무살 이상이 돼야 자녀의 지갑에 돈이 들어가는 등의 공증/유언을 대체할 수도 있다. 현재의 온라인 금융거래는 금융기관이 장부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게 기술적 본질이기 때문에 거기에 아무런 프로그램을 입힐 수 없지만, 비트코인의 경우 위에서 설명한 블럭체인 구조 상에서 자동으로 장부가 기록되기 때문에, 거래에 프로그램을 입힐 수가 있다.
  2. 디지털 자산관리 : 나아가 비트코인 거래에는 소유권을 담을 수도 있다. 예컨대 특정 비트코인 주소에 BMW자동차의 소유권을 담고, 프로그램으로 자동차 키의 이모빌라이저와 연동을 시킨다. 이 차를 빌려쓰는 사람은 차량 소유권을 가진 주소로 매달 얼마의 비트코인을 보내야 한다는 계약까지 입력한다. 만약 차를 빌려쓰는 이가 렌트비용을 내지 않으면 비트코인 주소에서 이모빌라이저로 신호를 보내 차량 시동이 걸리지 않게 만든다. 이런 시나리오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지금 논의 되고 있는, 기존 금융인프라를 개선하는 정도의 Fin-tech 내지는 모바일 결제 혁신에서 이런 게 가능할 지 의문이다. 껍데기가 어떻게 변하든 금융회사가 모든 걸 승인해야 하는 본질은 변하지 않을테니까. 카톡으로 돈을 보낼 수 있더라도 인터넷뱅킹을 이용해 충전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일테니까 말이다.
  3. 소프트웨어 비즈니스 모델의 진화 : 지금까지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공개하고 이용자가 늘면 유료사용을 촉진하는 식으로 비즈니스 모델이 성립돼 왔다. 하지만 비트코인 같은 화폐 기술이 등장하면서 이 역시 바뀌고 있다. 얼마 전 등장한 메이드세이프(MaidSafe)라는 스토리지 서비스는 비트코인의 운영체제와 마찬가지로 분산저장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다. 기존에 많이 사용되던 구글드라이브나 드롭박스 등에 비해 보안적으로 안전하며, 대용량 시스템을 필요로 하지 않아 훨씬 효율적인 이용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주지하다시피 웹2.0의 등장으로 공급자 중심에서 사용자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이동했으며, 그에 따라 대용량 스토리지 공간을 저비용으로 구축할 필요성은 매우 커지고 있다.
    메이드세이프는 이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이용료를 받는대신, 비트코인과 유사한 세이프코인이라는 자체 코인을 개발, 발행했다. 이용자들은 메이드세이프를 이용료로 세이프코인을 지불해야 하는데, 일부는 회사에서 나눠주기도 하고 일부는 거래를 통해 구하면서 세이프코인에 시세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현재 세이프코인의 전체 가치는 90억원에 이른다. 회사는 일부 코인을 주식처럼 보유하면서 시장에 형성된 가격에 따라 코인을 내다 팔면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아울러 나중에 서비스가 더 성공을 거두고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세이프코인의 가치는 올라갈 것이고, 그에 따라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코인의 자산가치도 상승하게 될 것이다. 기존의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모델과는 전혀 다른 구조로 사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투자 트렌드를 혁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엔젤리스트 창립자 나발 라비칸트는 비트코인 같은 금융기술의 등장으로 향후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을 통한 비즈니스가 더욱 활성화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4. 새로운 마켓플레이스의 등장 : 비트코인의 핵심인 블럭체인, 즉 분산장부 기술은 앞으로 금융을 넘어 마켓플레이스 분야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금의 마켓플레이스는 모두 중앙집중적이다. 마켓을 운영하는 회사, 즉 이베이나 아마존 같은 운영주체들은 금융기관 같은 중개자, 장부관리자 역할을 수행한다. 금융에서 중개자 없는, 또는 중개자들의 역할이 대폭 제한된 혁신이 가능하다면, 마켓플레이스에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상품에 대한 데이터베이스와 결제 등 모든 통제권을 마켓플레이스의 소유회사가 갖는 방식이 아니라, 블럭체인 같은 공공장부에 상품을 등록하고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상품을 찾고 선택하며 거래하고 결제는 비트코인 같은 블럭체인상의 지불수단으로 직접(P2P로) 이뤄진다. 이럴 경우 기존 이베이나 아마존은 상품의 빠르고 안전한 배송, 혹시 모를 분쟁 등의 중재자 정도로 역할이 제한되거나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게 될 것이다. 오픈바자는 이 같은 가설을 바탕으로 블럭체인 방식의 마켓플레이스 실험을 전개하는 회사다. 이베이와 오픈바자의 차이는 다음 도표와 같다.

5. 분산자율조직의 등장과 비즈니스의 변화 : 금융과 마켓플레이스가 변화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비즈니스의 근간이 뒤바뀔 수도 있다. 이번엔 회사라는 조직형태가 변화의 단두대에 오를 차례다. 자본주의적 근대화 속에서 상법 상의 주식회사는 가장 활성화된 조직형태였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가져갈 수 있는 조직형태 중 가장 효율적인 조직이 바로 주식회사였다. 하지만 문제점 역시 적지 않았다. 비효율성, 비대화에 따른 관료주의 등등. 이제는 기술의 발전으로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굳이 회사를 설립하지 않아도 될 세상이 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 한다. 즉, 회사를 설립하고 정관을 만들고 주식을 발행하는 대신, 알고리즘을 만들고 코인을 발행하고 거기에 동참할 참여자를 모으고 네트워킹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이 바로 그런 첫번째 사례이다. 비트코인에는 운영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알고리즘이 작동할 뿐이고 참여자가 있을 뿐이다. 비트코인의 거래를 확정하는 역할과 보안장벽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마이너(채굴자)들은 비트코인에 고용돼 있지 않은 자발적 참여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알고리즘이 요구하는 어떤 행위를 수행하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바로 네트워크상의 화폐가 주어진다. 앞서 보았던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비즈니스 역시 굳이 회사를 만들지 않아도 가능하다.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고 애용할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개인 또는 집단은 그것을 네트워크상에 올려놓고 사람들이 사용하면서 지불할 수단을 함께 제공하면 된다. 알고리즘에 따라 화폐의 발행과 소프트웨어의 사용 그리고 과금까지 이뤄지며 개발자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코인을 형성된 시장을 통해 현금화할 수 있다. 주식의 발행, 이용료, 소프트웨어 구매 등이 모두 블럭체인이라는 하나의 구조상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반면 지금의 회사체계는 제각각의 플랫폼 위에서 구동한다. 계약을 맺는 것과 실제 계약내용을 수행하는 것, 그리고 그에 따른 대금결제가 각각 이뤄지고 자동화 되어 있지 않다. 알고리즘이 구동되는 블럭체인 구조는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마저 바꿀 가능성이 있다.

6. 사물인터넷 : 최근 아이비엠이 내놓은 보고서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사람과 조직 뿐만 아니라 기계, 사물들까지 연결시켜 그야말로 중단없는 네트워크상의 워크플로우를 가능케하는 것이다. IBM 비즈니스밸류연구소(IBV)에서 제시한 어뎁트(Adept)라는 사물인터넷 플랫폼은 비트코인의 블럭체인 아키텍처를 차용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연구를 주도한 폴 브로디 부사장이 밝힌 블럭체인 구조를 차용한 이유는 경제성과 보안성 때문이다. 이들이 구상한 블럭체인 중심의 사물인터넷 구조가 더 기술적/경제적으로 뛰어난 것이 맞다면, 디바이스간 소통 뿐만 아니라 디바이스 간 금융거래에 어떤 결제수단이 이용될 지는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아도 뻔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맺음말 :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적 기술을 맞이하는 한국사회의 과제

누군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때,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봐야 하지만, 많은 이들이 손가락을 보는 것 또한 사실이다.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과 논쟁에서도 그런 모습들이 나타났다. 화폐로서의 비트코인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고, 비트코인을 이루고 있는 핵심기술이 바로 우리가 주목해야할 달일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비트코인을 가능케 한 블럭체인이라는 분산장부 기술은 핀테크 열풍 속에서 금융의 미래를 바꿀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나아가 금융을 넘어 컨텐츠 비즈니스, 온라인 커머스, 더 나아가 사물인터넷의 미래도 바꿀 것으로 전망된다. 인터넷과 같은 패러다임 전환전 기술이 될 것이라고 실리콘밸리의 저명 투자자 등 기술산업계의 리더들은 기대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인터넷이 등장하던 시기 한국은 정부의 리더십과 업계의 적극적인 대응을 바탕으로 뒤쳐진 상황을 극복하고 앞서 나갈 수 있었다. 지금 역시 민관의 새로운 협력과 리더십이 필요한 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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