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

Cattvshow
Cattvshow
Sep 7, 2018 · 6 min read

우리 대부분은 사춘기 무렵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자기 몸의 특수성과 한계, 기능성을 확인하고, 또래들을 모방하면서 사회의 신체 운영 규범(‘품격’도 포함될 것이다)에 맞게 이를 조율한다. 자신만의 ‘몸 운용’ 스타일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나는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이 발전시킨 방법에 도움을 받았다. 농학교에 다니는 청각장애 아동들은 수업 시간에 수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같은 반 친구들에게서 수어를 배운다. 나 역시 휠체어로 이동하고, 뽐내고, 그 장비를 내 몸의 일부처럼 사용하며 자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삼는 일을 또래들과 함께 익혔다. 이는 휠체어 작동법이나 휠체어를 탄 나의 모습에 어떤 스타일을 만들었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수어를 배운 청각장애인이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며 해방감을 느끼듯이, 나를 표현하고 다른 이들과 일체감을 느끼는 몸의 재현 방식을 배우며 나는 스스로가 ‘별종’이 아니라 공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경험했다. p.122–123

장애인에게 갖는 편견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편견은 대게 무지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나는 장애인을 만날 기회를 자주 가지면 편견을 없앨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학교에서, 길에서 그들을 자주 접하면 그 편견이 사라질 거라고 기대한 것이다. 그에 일환으로, 내가 정책을 만든다면 장애인 시설을 오히려 곳곳에 만들고, 모든 학교에 특수교사를 배치해서 비장애인 학생과 장애인 학생이 매일 만나는 환경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저자의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저자는 특수학교에 들어가 휠체어를 패션으로 자기 몸처럼 다루는 선배와 친구들을 보면서 자신도 휠체어를 자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삼는 법을 배우고, 또래에 소속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 글을 읽기 전까지 나는 장애인들에게 또래 장애인의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비장애인인 나는 철저히 비장애인 입장에서만 장애인을 생각했기에, 장애인을 위한다고 한 생각도 장애인이 지워진 생각이 된 것이다. 정치인들의 탁상공론을 비판하면서, 나 또한 장애인의 삶을 알지 못한 채 그들을 위한 정치를 생각해 본 거다.

장애인이나 병에 걸린 사람들이 우리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며 성금을 보내고, 구세군에 거금을 쾌척하면서도 막상 그 신체와 5분도 같이 앉아 밥을 먹지 못하고, 그 신체가 버스에 올라타는 잠깐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그 신체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를 짓는 일에 바내한다면 그 자체로 혐오이며 다른 해명이 필요하지 않다. p.267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함께 학교에 다닐 때, 소수일 수밖에 없기에, 소속감을 느끼기 힘들 수 있다. 또한 비교 대상이 비장애인에 한정되면 정체성 형성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소수 장애인:다수 비장애인 구도가 아닌, 다수 장애인:다수 비장애인의 구도는 어떨까? 특수학교 학생들과 일반학교(?) 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듣는 날을 정하는 것이다. 다수:다수로 만나 서로의 존재를 보여주고 교제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 거다. 이 아이디어 또한 불완전할 수 있지만, 학우로 만나 함께 수학하는 경험을 통해 장애인을 시혜적 대상으로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친구로 동등하게 보는 관점을 제공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떤 사람을 존엄한 존재로 대우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자기 인생의 자율적인 형성 주체, 말하자면 작가/저자author로서 존중함을 의미한다는 견해가 있다. p.185

즉 장애아를 키운 부모의 이야기, 형제자매의 경험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회에서 소외된 채 돌봄 노동을 전담한 가족들의 이야기가 공유되지 않는 이상 장애인은 그저 사회와 가족의 짐으로만 여겨지고, 그 가족들은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사람들로만 인식될 것이다. p.204

장애인에게 편의를 제공할 의무를 진다는 것은 그저 장애인을 배려하라는 말이 아니라, 장애인이 그 신체적, 정신적 특성을 가지고 오랜 기간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존중하라는 요구와도 같다. p. 241

내가 장애인을 철저한 타인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 건 ‘이야기’ 덕분이었다. 네이버에 연재된『나는 귀머거리다』라는 웹툰을 통해 장애인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659934 이 웹툰을 보기 전, 청각 장애인 강의 대필 도우미를 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와 매주 만나면서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알지 못했으며 배려해줘야 할 대상으로만 여겼다. 나만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은 아니다. 조별 과제에서 조원들이 그에게 과제를 맡기지 않으려 했었던 이유는 그와 만나서 상의하는 게 더 불편하리라 짐작한 것과 그러한 배려가 그에게 더 좋으리라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나와 그들이 그를 동등한 친우가 아닌 도와줘야 할 시혜의 대상으로 생각한 것은, 그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장애인’이라는 살면서 좀처럼 만나보지 못한 타이틀을 가진 그였기에 그를 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기보단 ‘장애인’이라는 타이틀 안에 가둬둔 것이다. 이는 비단 장애에 국한되지 않는다. 영어권에서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한국인이 바보 취급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는가? 우리는 영어를 못하는 한국인을 한 개인으로 존중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는 외국인은 그를 동등한 사람으로 존중해주지 않는다. 물론 그건 존중해주지 않는 사람의 잘못이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이 존중하지 않았던 큰 이유일 것이다.

『나는 귀머거리다』의 라일라 작가는 나와 직접 만난 적도 없고 대화를 나눈 적도 없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와 다른 장애인들을 ‘장애인’ 타이틀 밖으로 꺼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녀가 모든 장애인을 대표할 순 없지만, 그녀를 장애인으로 굳이 분류해서 대표를 시켜야 할 필요도 없다. 그녀는 그저 귀머거리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생기는 경험이 있는 한 사람이었다. 눈이 작아서 겪는 이야기가 있는 사람, 키가 커서 겪는 이야기가 있는 사람, 성격이 급해서 겪는 이야기가 있는 사람, 귀머거리라서 겪는 이야기가 있는 사람, 다리를 움직일 수 없어서 겪는 이야기가 있는 사람. 이렇게 서로가 다르기에 다른 경험을 만들고 다른 삶의 이야기가 생기는 것처럼, 라일라라는 사람은 그저 라일라 개인의 성격과 신체 특성 모두를 포함해서 생긴 이야기를 가진 사람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의 저자 김원영 씨와 같이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들의 이야기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 그 이야기를 통해 장애인으로 분류된 벽을 허물어 각자의 이야기가 있는 개인으로 존중하고, 그 이야기들로 이뤄진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방법을 알게 되길 바란다. 그래서 그 존중에 바탕한 법과 정치와 문화가 정착하길 바라본다.

Cattvshow

Written by

Cattvshow

Welcome to a place where words matter. On Medium, smart voices and original ideas take center stage - with no ads in sight. Watch
Follow all the topics you care about, and we’ll deliver the best stories for you to your homepage and inbox. Explore
Get unlimited access to the best stories on Medium — and support writers while you’re at it. Just $5/month. Upgra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