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버거운 새 역할

쉬즈위안

그는 여전히 바디 랭귀지를 사용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악수할 때 열정적으로 상대의 어깨를 치며 친근함을 내비치는 법이 없다. 얼굴의 미소도 자연스럽지 않고, 격앙된 목소리로 의견을 발표하지도 않는다. 아마도 그는 여전히 회의장의 원탁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고 상하경중을 따지지 않을 것이다. 30년이 넘는 정치 생애에서 그는 다른 정치철학을 따랐다. 말과 행동을 삼가하고, 자기 내면의 진짜 생각을 최대한 숨겨왔다. 자신의 예봉을 드러내는 일은 잠깐 눈부실지 몰라도 먼 미래의 재난으로 돌아올 것이었다.

토론, 논쟁, 설득, 화해는 그가 신봉하는 정치철학에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베이징 인민대회당의 배치는 이 모든 것을 보여준다. 주석단은 높디높은 자리에서 발언하며, 단상 아래의 추종과 찬양을 받아들인다. 질문과 반론은 공개적으로 제기할 수 없으며, 기껏해야 사적으로 몰래 행해질 뿐이다. 그가 거쳐 왔던 학교, 공장, 지방정부에 있던 회의장도 인민대회장의 축소판 같다.

그러나 그는 잘 알고 있다. 자기가 말을 할 때 전세계가 귀를 기울여 경청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세계 최대 인구에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나라의 지도자이다. 런던에서 개최된 G20 회의에서 농담처럼 G2라고 칭해진 것처럼, 그는 4개월 전에 막 당선된 거의 스무 살은 어린 미국 대통령과 함께 회의의 주인공이었다. 중국의 생산과 미국의 소비가 글로벌 경제를 견인하였다. 한 역사학자가 만들어낸 Chinamerica라는 말에서 잘 드러나듯 두 나라는 상호의존적이며, 전세계가 그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이 위기가 미국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약화시켰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이며, 아주 매력적인 새 대통령도 뽑았다. 그러나 야심차게 준비한 구제계획은 처참히 좌절된 듯하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미국이 여태 의지하던 제도와 철학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수염으로 뒤덮인 칼 마르크스의 초상과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혹독한 저주는 한때 역사의 쓰레기통에 쳐박힌 듯했으나, 이제 다시 예언자의 지위로 떠받들어지고 있다. 게다가 미국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버나드 매도프(Bernard Madoff: 미국의 투자상담사, 나스닥 이사.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금융사기로 2009년 150년형을 선고받았다. 역주) 같은 악질만 길러내는 것처럼 보였다.

중국은 오히려 어떤 새로운 희망을 대표할 수도 있다. 그렇다. 대다수의 방관자들에게 중국은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길고긴 지난날의 역사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 30년만 해도 말문이 막히게 만든다. 대부분이 가진 첫인상은 중국이 혁명의 열정으로 좌지우지된 유토피아이며 사람들의 마음 속에 단순한 이상주의로 가득 차 있다는 느낌이다.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이란 명사만 들었을 때 서방에서의 생활에 답답해하던 부르주아들은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진상이 까발려지면서 이 국가에 얼마나 많은 비극과 잔인함이 감춰져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신앙과 소박함의 배후에는 비이성과 결핍만 가득했던 것이었다.

외부인이 이러한 놀라움을 채 소화하기도 전에 새로운 놀라움이 생겨났다. 중국은 입으로는 여전히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외치면서 한쪽 머리는 시장경제 생활로 들이밀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본주의의 꼬리를 자르던 중국이 이제 가슴을 활짝 열고 미국, 일본, 유럽, 홍콩, 타이완의 자본가들을 끌어안았다. 중국은 마치 자본주의 세계에 갓 입문한 성실한 신입생처럼 한마음으로 놓친 수업을 따라잡으려 했다. 세계도 중국이 변했으며 다른 사람들과 같아졌다고 여기게 되었다. 시장경제를 받아들였으니 곧 민주 정치와 언론의 자유도 수용하겠거니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톈안먼 사건이 벌어졌다. 중국은 여전히 고집 세고 잔인한 중세 국가인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다시금 중국은 폐쇄되고 억압적인 시대로 돌아갔다. 그러나 변화는 다시 계속되어, 세계시장에 편입하려는 발걸음을 가속화했다. 진보의 속도를 쫓아가기 힘들 정도였다. 어제는 갓 입학한 학생이었는데 오늘 이미 우등생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아시아에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중국은 이미 절반은 구원자의 이미지가 되어 있었다. 그의 역량은 놀라울 정도였으며, 그 어떤 장애도 뛰어넘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지금은 그 오만한 선생님 또한 헛발질을 하고 있다. 이 선생님은 능력으로 보나 도덕적인 면으로 보나 모범이 되어 왔다 자부했는데, 갑자기 자기 내부에 겹겹이 쌓인 문제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에 비해 중국의 기적은 여전히 계속되는 것만 같았다. 매년 8%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고 공언했으며 미래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했다. 이러한 믿음을 확인하며 세계도 깜짝 놀랐던 것 같다. 중국은 국제적인 대규모 확장을 시도하여 광산과 유전을 사들였다. 중국의 중앙은행장은 심지어 달러의 글로벌 기축통화 역할을 바꿀 필요성을 호소하기까지 했다.

국제무대에서 중국이 이처럼 명확한 자세를 보여준 적은 거의 없었다. 국가 지도자가 3월 말 런던에 도착하는 순간은 새로운 세계 질서의 리허설 같았다. 장기간 중국을 관찰해온 누군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전통적으로 중국은 국제무대에서 피동적이었으며 청중이었을 뿐 오피니언 리더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중국은 외부세계가 자신의 목소리를 확실히 듣게 하려 했다.”

중국이 정말로 이렇게 강대해진 것일까? 아니면 그저 말의 향연일 뿐일까? 세계는 일찍이 일본을 놓고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인터넷 열기나 오만하기 짝이 없던 글로벌 투자은행에 대해서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다. 거품 속에 있을 때 보게 되는 것은 번영과 강대함이며, 내부의 온갖 문제는 가려지고 무시된다. 그러나 임계점에 이르면 모든 것이 변한다. 동경하던 모든 것이 고통으로 바뀐다.

그가 국제무대의 주목을 즐길 때 분명 이런 점을 걱정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우위를 잘 알고 있다. 뭔가를 결정할 때 국내의 반대세력을 별로 고려할 필요가 없다.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반대파도 없고, 문제될 만한 걸 들춰내는 미디어도 없다. 대중은 조종하기 쉬운 집단일 뿐이다.

그러나 그 또한 중국의 다른 면을 알고 있다. 그는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신분으로 일한 바 있다. 그곳의 스토리가 결코 사람들이 아는 중국의 기적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안다. 또한 비공개 보고서를 통해 매년 수만 건의 집단적인 시위가 일어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정부 내부의 부패가 얼마나 심각한지도 잘 알고 있다. 모두들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주판알을 튕길 뿐이다. 자신이 이끄는 이 당과 정부는 이미 지난날의 희망과 이상을 잊은 지 오래되었다. 가장 동정적이고 용감한 정책이라 할지라도 방대한 관료 시스템에 의해 왜곡되고 집어삼켜져 아무런 형태도 남지 않고 사라지곤 했다.

따라서 그는 외부의 영광이 내부의 블랙홀을 잠시 가릴 뿐이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지금 중국은 성장의 속도와 내부 부패의 속도가 누가 더 빠른지를 다투는 달리기 시합 같은 형국이다. 이 모든 걸 잘 알고 있기에 종종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고 영광과 블랙홀 사이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익숙하지만 안전한 바디 랭귀지와 표정으로 드러난다. 그는 악수할 때 열정적으로 상대의 어깨를 치며 친근함을 내비치는 법이 없다. 얼굴의 미소도 자연스럽지 않고, 격앙된 목소리로 의견을 발표하지도 않는다.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