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머리의 빠띠 여름방학 일기

조이성화
4 min readAug 12, 2018

--

신의 한 수

방학 시기를 정말 잘 잡았다고 생각했다. 종강하고 나서 에너지가 고갈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한 주 더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했는데, 만약에 빠띠 일을 하면서 했으면 큰일날 뻔했다. 날씨도 장마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비도 별로 안왔다.

월드컵

월드컵은 그야말로 축구 덕후의 축제였다. 경기를 챙겨본 첫 월드컵이어서 그런지 너무 신났다. 한 팀마다 한 명 이상의 스타가 있고 매 경기 절박함이 리그와는 달라서 보는 사람은 참 즐거웠다. 며칠 러시아 사람이 된 줄 알았다.

여행

이렇게 누워만 있어서는 안되겠다 생각했고 어딘가로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아직 내일로 티켓을 살 수 있었고 무작정 사들고 호남선 열차를 잡아탔다. 순천만의 초록이 그리워서 순천에 가려고 했는데, 자다가 순천역을 지나쳐 버렸다 흑. 이만큼만 해야지 했는데 사실 할 일이 너무나 많았던 봄,여름의 나 같아서 너무 우스웠다. 그래서 더 가서 여수에서 지내기로 했고 마침 찐쩐이 생각나서 연락했다. 감사하게도 찐쩐이 맛집을 추천해 주었고 정말 맛있었다!!! 역시 여행은 먹으러 가는 거지… 게장…너무 맛있었다.

그리고 학기 내내 미뤄왔던 부모님이 계신 창원에 들렀고 할머니 만나기 미션을 완료했다. 할머니의 기억을 조각을 조금이나마 모아보려고 했는데 벌써 너무 빠르게 까먹으셔서 막 깊은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다. 워낙 오랜만에 보기도 했고 최근에 요양원에서 넘어지셔서 컨디션이 안좋으셨다고 한다. 날 알아보는 데도 시간이 좀 걸렸다. 아무래도 여름 다 가기 전에 다시 들러야지 싶었다. (덧, 나는 우리 사회가 노인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싫다.)

독서

예전부터 유명한 페미니스트 작가 벨 훅스의 책을 읽어야지 하고 미뤄왔는데, yes24에서 중고책을 엄청 싸게 팔길래(3000원인가?) 샀다. 그래서 산 책 벨 훅스의 두 책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를 다 읽고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두 책 벨 훅스,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 며느라기를 읽기 시작했다.

계급에 대해서 말하지 않기는 정말 충격적이었는데, 잘 생각해보면 내 삶에서 많은 부분이 계급과 관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그것을 선명하게 ‘계급의 문제’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여기서 계급이란 변할 수 있는 개념이다. 그저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 정도로 퉁치고 말았지 정말로 내가 겪는 문제가 계급 때문임을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여러 노력을 통해 지금은 노동자 계급이 아니게 된 지금의 자신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노동자 계급과의 연대, 왜 우리는 계급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 계급 문제와 연관되어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이야기한다. 이 책 덕분에 또 나는 언어를 얻었다.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많아서 빠르게 읽어버렸다. 그 뒤의 경계 넘기에 말하기는 교수로 일하고 있는 자신의 경험에서 온 ‘교수법’에 대한 이야기다. 덕분에 권위주의적인 지금 대학의 교수법에 대한 나의 언어를 또 얻을 수 있었다. 좋다.

며느라기는 예전에 연재할 때, 드문드문 읽기는 했지만 진지하게 처음부터 읽어보자 싶었다. 그렇지만,,, 한 에피소드를 읽을 때마다 그것이 들고 있는 감정의 무게가 너무 커서 책장을 넘기기가 너무 힘들다. 또 그 사이에 내가 방관자, 가해자처럼 행동했던 과거가 겹치면서 읽는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인터넷으로 댓글과 함께 보면 더 느려질 것 같은데 다 읽고 나서 내 생각과 비교해보러 가야지.

마치며…

찐쩐이 한 문단을 부탁했는데 엄청 써버렸다. 5월쯤부터 알 수 없는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들고 있었는데 방학이 끝나고 나니 몸이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다. 너무 좋다. 거기에 생일과 어디서 왔는지 모를 긍정적인 기운이 돋아서 훨씬 좋다. 이 기세로 여름을 날 수 있으면 좋겠다.

--

--

조이성화

the one who wants to change the world. currently software develo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