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s your “favor.it”?

잊고 있었던 당신의 “좋아하는.것”은 무엇인가요?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공기관에서 3년 8개월간 근무를 했다. 정규직, 정년 보장, 적지 않은 월급과 복리후생 등 유학까지 다녀 온 젊은 친구들까지도 들어가고 싶어하는 그런 곳이다. 하지만 나는 오랜 고민 끝에 지난 11월 직장생활을 마감했다.

첫 입사 했을 때 첫 직장의 설레임과 업무를 배우고 동료들과 친해져 가는 재미에 시간이 흘러만 갔다. 이렇게 한 해, 두 해가 흐르니 나는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었단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나의 세포들은 더 이상 분열하지 않았다.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밤이 되면 내일 아침 출근할 걱정을 하고, 평일이면 주말이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며…야근을 해야 할 때면 짜증부터 나고, 이해할 수 없는 이해관계와 불합리한 요소들… 승진하기 위해 동료들과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며, 퇴직이 다가오면 정작 남은 것 없이 여생을 어떻게 보낼지 걱정하고…뻔히 보이는 답에 내 인생을 걸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는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그 중 청소년기와 노년기를 제외하면 실제 열정적으로 인생을 불태울 수 있는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 먼 훗날 인생을 되돌아보면 남는 것과 후회하는 것은 바로 고작 20~30년간의 젊은 시절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산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진심으로 해보고 싶지만 딱히 실행할 용기가 없을 때 ‘현실적'이란 말로 핑계를 댄다. 사실 ‘현실적’이란 말은 왜곡되고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현실적인 것인가? 내 자신이 진짜로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따로 있는데 현실이란 핑계로 참고 사는 것이 진정으로 현실적으로 사는 것인가? 사람들이 둘러대기 좋게 만들어 놓은 현실이란 틀에 억지로 맞추어 살려니까 힘든 것이다.

돈… 시간…사람…무언가 소중하다는 것은 곧 유한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얻기 위해 기를 쓴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곧 지기 때문이고, 연인이 소중한 것은 언젠가 상대가 나를 떠나거나 죽기 때문이다. 나이 서른 하나에 부모님을 모두 잃고 나니 어려서는 참으로 길게만 느껴졌던 우리 인생이 이제는 한 없이 짧게 느껴진다.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피부로 깨닫는 순간… 내 자신과 인생이 한 없이 소중해지기 시작한다. 죽음 앞에서는 그 어떤 수치심도 두려움도 고통도…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며 솔직해질 수 있다.

상상해보라. 내가 만약 죽기 전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과연 아쉽고 후회스러운 것이 무엇일까?

하고 싶은 것에 도전했다가 생각처럼 잘 안되었던 기억일까?
그때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했던 것 기억일까?
“자기가 자신의 욕망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정작 내가 지금 행복한 것인지, 무얼 할 때 행복한지 모르고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이것들은 내 가족도 배우자도 모르며,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다. 나를 둘러싼 부모, 배우자, 자녀, 친인척, 사회 등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도 책임지지도 보상해주지도 않는다. 더이상 부모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 참으며 희생하는 것이 그럴 듯한 인생인 것처럼 포장하지 말자. 솔직해지자. 타인의 욕망을 채우다 50~60대가 되어 후회하는 삶을 살지 말자. 자신의 삶을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