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행자의 시간

삶 4

나는 어느 카페 앞을 오랫동안 서성거리며 배회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잠시 스치듯 지나가는 인간에 대한 그리움이 어쩌면 가을이라는 시간일 수도 있겠다는 감상에 빠져든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하늘 아래 이 세상 어느 곁에 기대고 싶다가도 높고 파란 하늘에 반해 넋을 놓고 (한 걸음 두 걸음 다가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다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제자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사람을 만나고 무엇보다 차가운 바람이 가슴 속에서 일렁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 파문의 그림자 속에서 잊고 싶은 기억들과 대면하게 될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은 그 기억으로부터 지워버리고 싶고 어떤 사람은 다시 되새기고 싶어 한다. 되새기고 싶은 그 사람이 한 때 고마운 사람이었기에 좀 더 따스한 기억일 수 있다. 지워버리고 싶은 그 사람이 한때 그러한 따스한 사람이었기에 스산한 바람이 살짝 스칠 때 그 자리가 눈을 맵게 하고 가슴을 아프게 한다.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다. 부스럭부스럭 뒹굴고 있었다. 부쩍 차가워진 공기에 몸을 움츠렸었다. 모진 강바람이었다. (정처 없이발길은 시내를 걷고 또 걸었다.) 걸었다기 보다 헤매고 또 헤맨 날이었다.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마포대교 위를 걸었다. 세상도 자신의 자리를 잃었고 (마음도 제자리를 잃었던 날이었다.) 홀로 한참을 거니는 동안 문득 베듯 지나가는 날카로운 강바람이 나를 일깨웠다. 노을 진 한강이 붉게 그리고 단풍처럼 아름다운 노란색으로 얽히며 조화롭게 물들어있었다. 사악한 여의도의 밤섬은 쓸쓸하게 하늘로부터 구름을 뚫고 쏟아지는 빛내림을 받고 있었다. 서둘러 어두워지는 하늘 물길도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무심하게 서쪽을 향해 흐르고 또 흐르기만 했다. 한강을 가로지른 마포대교 위를 요란하게 지나가는 자동차들, 홀로 그 다리를 거닐던 나는 시끄러운 소음들 사이에 버려진 듯 존재하였으며 부정한 세상을 바라보며 한탄하였다. (정치권력에 의한 폭력과 범죄가 일상적으로 난무하는 곳에서) 별 볼 일 없는 무명 시민이라는 인간 존재의 삶은 참으로 고달프고 비참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