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추천 <이동진의 빨간책방>

걸으면서도 책을 읽어보자 


참 안 좋은 버릇이 있다. 무언가 시간이 버려지는 느낌을 참지 못한다. 그렇다고 시종일관 생산적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약간의 강박 같은 것이다.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만화책을 읽거나,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일 등을 가장 힘들어한다. “그 시간에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 맴돈다. 앞서 이야기한 그런 일들이 결코 생산적이지 않은 것은 아닌데 말이다. 근데 지금 내 꼬락서니를 봐서는 그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에는 실패한 듯싶다. 놀 거 다 놀고, 할 거 다 하는 사람들 보면 정말 부럽다…-_-…


자칭 ‘생산성의 왕’이 되고 싶은 나는 각종 정보를 주는 매체를 열심히 사용하고자 노력까지만 한다. 노력이 곧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여러 노력을 했지만, 오늘 소개할 나만의 노력 중 하나는 ‘팟캐스트’ 청취다. 군대를 제대하고 처음 아이폰4를 접했을 때, 내가 애플에 홀렸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 ‘팟캐스트’ 서비스 때문이었다.(어쩌면 이때부터 큐레이션 서비스에 호감을 느꼈을 수도…) 아이폰과 이어폰만 있으면 원하는 정보만 들어가 있는 ‘라디오’ 같은 이놈을 아무 데서나 들을 수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점이 바로 그거다, “아무 곳”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 “평소 걸어 다니면서 음악 말고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여 책도 읽어보고, 뉴스도 보고 했지만 이건 한국 20대의 조기 사망률만 높여주는 아주 위험한 짓이었기에 일찍이 관뒀다. 그때 바로 ‘팟캐스트’를 알게 되었으니, 어찌 가뭄에 단비 같지 않겠는가?

‘천문’, ‘경제’, ‘건축’, ‘정치’, ‘영어’, ‘문화’ 등 그동안 정말 다양한 팟캐스트를 내려받아서 청취했다. 몇 년이 지나니 그중에서 꾸준히 듣는 것은 역시나 항상 그렇듯 몇 개 남지 않았다. 이제부터 나름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내 아이폰 안에 살아남은 그 친구들을 가끔이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를 시작하겠다.


이동진의 빨간책방

정말 꾸준히 애청하고 있는 팟캐스트 중 하나이다. 출판사 <위즈덤 하우스>에서 내놓고 있는 도서 리뷰 전문 팟캐스트다. 팟캐스트 제목에서도 보이듯이 메인 테마는 ‘책’이다, 그것도 아주 빨간! 내용에 대한 애착이지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애정은 아니기에 팟캐스트 제목에 대한 후문까진 들춰 보지 않았다. 팟캐스트 내용으로 미루어 보건데, 아마 ‘빨간’이라는 말이 상징하는 것은 약간의 선정성이 아닐까 싶다.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욕설과 19금 멘트, 그리고 출연자와 함께 하는 만담이 어쩌면 ‘책’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잘 풀어낼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이 역할을 팟캐스트의 메인 MC인 이동진 씨가 충실하게 수행한다. 나는 이동진 씨가 매우 얌전하고 고상한 그런 분일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랐다. 아마 들어보신 분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듯한데, 그는 매우 상남자다.


보통 한주에 한 회가 업로드 되며, 한 회 분량은 1시간 30분 정도다. 대중교통을 활용하거나 걸어 다니면서 일주일 동안 꾸준히 듣기 좋을 정도의 분량이라고 생각한다. 이동진 씨만 나와서 진행을 하는 것은 아니고, 소설가 김중혁 씨가 함께 나온다. (사실 김중혁 씨가 쓴 책을 읽어 본 적은 없기에 그에 대해서 더 할 말은 없다…) 진행 측면에서 보면 이 둘은 궁합이 잘 맞는다. 한 주간 읽을 책을 이동진 씨가 정하고 일주일 동안 둘이서 열심히 그 책을 읽어오면 프로그램 내내 그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가끔 같은 원서의 다양한 번역본을 나눠서 읽어오는 경우도 있다) 보통 이동진 씨가 전체의 흐름을 이끌어 나가고, 김중혁 씨는 소설가의 관점에서 자기 생각을 덧붙이는 방식을 취한다. 재밌는 순간은 가끔 같은 책, 같은 내용을 두고 이 둘의 생각과 해설이 두 개로 나뉘는 때이다. 느낀 바는 개인이 다를 수 있기에 서로의 의견을 관철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아 그렇게 생각을 하셨군요? 거기에 이렇게 더 소스를 쳐볼 수 있지 않을까요?”라는 건설적이고 선정적인 의견 제안이 이뤄진다. 어떤 한 지배적인 의견을 “배워간다”기 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공유한다”는 성격이 더 강하고, 이런 점이 빨간책방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한다. 물론 나는 그것을 통해 배워간다.


이야기의 내용은 딱 정해진 형식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책의 특수한 성격에 맞게 팟캐스트의 내용 또한 적당히 변주된다. 가령 “위대한 개츠비”라는 책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면 이 둘은 우리나라에서 불거진 “위대한 개츠비” 번역 논란에 초점을 맞춰, 각 번역본이 위대한 개츠비의 중요 대목들을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중점적으로 이야기한다. 최근에 들었던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해서는 책의 작가인 셀린저의 삶과 책의 연관성을 함께 짚고 넘어갔다. 우리는 보통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생애’와 ‘시대 배경’ 등 부차적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을 가볍게 무시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빨간책방을 청취하면서 느꼈던 것은 단순히 갈래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이것들이 책을 온전히, 그리고 건강하게 이해하는 데 있어 너무나도 중요한 요소라는 점이다.

특히, 앞서 이야기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그랬다. 어렸을 때 만났던 주인공 홀든과, 그리고 대학에 입학해서 만났던 홀든, 빨간 책방을 듣고 다시 읽었던 홀든은 셋 다 다른 인물이었다. 어렸을 때와 대학에 입학해서 책을 읽고 느낀 차이는 책을 더 깊게 빨아들일 수 있는 지적인 능력이 성장했다기보다는 맥락과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의 폭이 넓어진 점에 기인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해서 책을 읽고 나서와 빨간 책방을 듣고 책을 읽은 후의 차이는 위와 같은 요소 차에 의해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좋은 스승을 만나 화끈한 수련을 한 느낌이랄까? 막연한 책 읽기가 아닌 여러 방향을 고려하고 실천할 수 있는 쓸모 있는 책 읽기를 배운 느낌이었다. 물론 과외 선생님이 수학 문제를 풀어 줄 때면 다 풀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실제로 혼자서 풀어보면 먹통이 되듯, 주의해야 할 것은 꼭 빨간 책방을 듣기 전후로 책을 직접 읽어봐야 한다는 점이다. 전체의 흐름을 빨간 책방으로 다잡을 수 있기에 같은 책을 읽더라도 책을 읽는 시간이 상당히 짧아짐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빨간 책방을 어떻게 자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냐? 개인차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주로 쓰는 방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1. 현재 빨간 책방 책 리스트에 읽어본 책이 있다면 그 방송을 듣는다! 책 읽은 게 너무 오래되지만 않았으면 크게 상관없다. 방송에서 전체의 맥락이나 중요 포인트 짚어주는 부분들을 조금 더 신경 쓰면서 듣는다. 기억에 안 남을 것 같지만, 막상 책을 읽으면서 “아! 이 부분이었지?”라고 떠오르게 된다.
  2. 읽어보지 않은 책이 리스트에 있다면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서 다 읽어보고 방송을 듣는다. 아무래도 읽어보고 들어야 확실히 더 재미가 있다. 내용도 모르는 책 둘이서 떠드는 걸 듣고 있으면 애초에 집중하기부터가 쉽지 않다.

단순하지만 명쾌하다. 효과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직접 느꼈을 때의 감동을 극화시키기 위한 배려 차원이라고 생각해달라. 절대 더 쓰기가 귀찮아서 그런 게 아니다.

빨간 책방에서 다룬 책을 나도 다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위의 두 방법을 활용해서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것을 얻었다. 똑같이 같은 시간을 읽더라도 다른 사람이 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어 갔다면 배 아프지 않은가? 걷는 시간 조금씩 할애해서 책값 제대로 뽑아낸다면 나쁘지 않은 투자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