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짐을 대하며.

2017.04.16. ‘미래의 사라짐, 사라짐의 미래’를 마치고.

본 글은 ‘미친색기’(미래로 향하는 친숙하고 색다른 기행) 멤버들이 주최하는 모임에 참석한 게스트 분들과 함께 나눈 대화에 필자의 생각을 정성껏 버무려 적은 글이다. 매회 달라지는 주제의 미래에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여기에 남겨본다.
언제까지 과거에
젖어 살끼요?!!

송년회 자리에서 모임의 막내가 선배에게 한 말이다. 선배는 주말마다 함께했던 모임이 즐거웠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한 해를 넘기기 전에나 한 번 볼까 말까 한 관계가 되어버린 자리에서 그는 늘 과거를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그러던 어느 날, 진취적이고 냉정한 성격의 소유자인 막내는 누적 되었던 따분함과 함께 경상도 특유의 말투로 선배에게 일침을 가한 것이다.

하지만 막내가 날린 날카로운 일침은 일타쌍피였으리라. 회상에 젖었던 것은 선배 뿐만 아니라 막내를 제외한 모두이거나 적어도 내게는 날카로웠으니까. 비록 나를 향한 말이 아니었음에도 그의 말을 흘려 듣지 못하고 반응하는 것은 나 또한 과거에 젖기 일쑤인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연연하는 것이 흘러간 시간뿐이랴. 시간을 소비했던 공간, 그곳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 즐겨했던 것들 그리고 사랑의 시작과 끝. 이 사라진 모든 것들은 단연 술자리 최고의 안주인 것을.

그것이 정녕 본인 뿐만은 아닐테다. IoT(Internet of Things)와 관련된 온갖 스마트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다시 아날로그 감성을 가진 제품들이 디지로그(Digilog)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출시되고 있다. 게다가 대중의 입맛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방송매체에서는 이미 사라진 것들에 향수(鄕愁)라는 양념을 입혀 내놓고 있다. 술자리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대화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은 필자를 포함해 우리는 늘 사라진 것들에 대해 그리움을 안고 사는가 보다.

‘응답할까 2030’를 기대해보며.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 대표 격이지 않을까? 시대적 배경 뿐만 아니라 사라지고 이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곳곳에 재치 있게 표현해주었던 것이 채널을 고정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88, 94, 97에 이어 우리의 입맛을 자극할 다음 연도는 언제일지 기다리게 만드는 것이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응답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언제까지 과거에 젖어 살끼요?!’라 하니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응답할까 2030’ 편이 나오면 어떨까 하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 다가올 미래 또한 결국 사라짐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사라지는 것들에 매력을 느낄까? 단순히 사라진, 사라지는 그리고 사라질 것들을 나열하기보다는 사라짐의 개념을 다루어보고자 한다. 우선 사라짐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현상이나 물체의 자취 따위가 없어지다.’
‘생각이나 감정 따위가 없어지다.’

주체의 곁에 있던 현상, 물체, 생각 그리고 감정이 없어진 것을 우리는 ‘사라졌다’라고 표현한다. 여기 단순하게 이해하고 넘어갈 법한 사라짐에 관해 심오하게 생각했던 사람이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1929~2007). 그는 생애 끝 자락에 사라짐을 고민했고 말 그대로 ‘사라짐에 대하여’(원제, 왜 모든 것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가?)라는 책을 집필한다.

생애 마지막을 사라짐으로 채웠을 장 보드리야르
내가 시간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아직 없으며
한 장소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사라져 버렸고
한 인간에 대해 말할 때, 그는 이미 사망했으며
시절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첫 문구부터 난해하기 짝이 없는 그의 책이지만 미친색기 시즌2에서 난해하기로 손꼽혔던 ‘미래의 사라짐, 사라짐의 미래’라는 주제에 이보다 적절한 자료가 있었을까? 가장 와 닿았던 그의 표현은 이렇다.

‘명명되고 나면, 필히 기울기 시작한다.’

책의 부가설명을 그대로 옮겨보자면, ‘하나의 사물이 명명되고 재현과 개념이 그 사물을 포박하는 순간은 바로 사물이 그 에너지를 상실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라는 것이 사라짐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덧붙여 보자면, 아직 존재하지 않은 미래의 모든 것들은 명명됨과 동시에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고 결국 사라질 것이며 그것이 존재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아주 먼 미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장 보드리야르의 생애 마지막 책 ‘사라짐에 대하여’

이 책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다루지 못해 아쉽기도 하거니와 어떤 내용인지 궁금한 분에게 책을 추천할 수도 없겠다. 이미 절판된 책이기 때문이다. 아마 시중에 남은 한 권이 내게로 오지 않았을까. 궁금한 분은 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는 블로그를 추천한다.

더불어 한 달에 한 번 꼴로 돌아오는 발제를 준비하다 보면 해당 주제의 미래보다는 단어의 개념을 파악하는 것에 무게를 두는 것이 본인 스타일이다. 다소 추상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본인만의 해석을 괴변으로 내놓기도 하지만 매번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여주는 것 또한 미친색기가 추구해야 할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번 ‘사라짐’에 대한 필자의 괴변은 이렇다.

#미친색기 #미래 #토크쇼 #사라짐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찾는 사람이나 물건이 없으면 ‘사라졌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아까까지 있던 볼펜이 사라졌어.’, ‘방금 여기 있던 사람이 사라지고 없어.’, ‘아이들이 사라졌어요!’ 등등. 무심코 썼던 그 표현에는 사라진 대상이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이라는 희망이나 짐작 등의 전제조건이 내포되어 있다는 묘한 느낌이 든다. 단순히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어디에 있는지 모를 뿐이지 결코 사라진 것이 ‘무(無)’이거나 ‘공(空)’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자. 예술을 포함해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 중에 ‘사라짐’을 소재로 하는 것이 있다. 마술이다. 마술은 사라진 주체의 행방을 모든 관객이 모르도록 해야한다. 단 유일하게 아는 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마술사다. 세상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사라졌다’라는 표현을 쓰는 우리가 현실에서 사라진 모든 것들의 행방을 알게 된다면 즉 우리가 관객에서 마술사가 된다면, 사라진 것들은 더 이상 사라진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다.

이들에게 ‘사라짐’은 무슨 의미일까?

다만 사라진 것들의 행방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후배의 날카로운 일침을 듣고도 우리는 아름다웠던 추억을 술잔에 적시는 것이 아닐까?

Content image source : https://www.youtube.com/watch?v=VkM-SdLki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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