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여자로 태어나는 특권을 가졌다고 해서 누구나 페미니스트 정치학의 옹호자가 되지는 않는다. 정치적인 입장이란 게 다 그렇듯이 페미니스트 정치학의 신봉자 또한 선택과 행동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벨 훅스 <행복한 페미니즘>

이번 해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서 아쉽다. 누구나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분짓는 경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경계로 내가 누군지 알 수 있고 내가 아닌 것도 알 수 있다. 이따금 그 경계를 조금더 밖으로 밀어내는 작업을 한다. 일상적이지 않은 행동이기 때문에 대체로 피곤하고 무리가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를 밀어냄으로써 만나게 되는 사람과 그 사람으로 인해 다시금 구성되는 경계 안의 나를 확인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2016년에는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밖으로 경계를 밀어내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매번 그런 무리를 했던 건 페미니즘 덕분이었다.

비로소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내가 잡았다고 확신할 수 있던게 겨우 작년부터었던 것 같다. 뒤늦게나마 독립과 이직을 하면서 관성적으로 버텨내던 폭력과 스트레스에서 빠져나왔고 그것이 내가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는 증명과 힘이 되었다. 완전히 가족과 회사로 인한 피로에서 자유롭지는 않지만 그 수위에 대한 조절을 스스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한 해를 시작했다. 나에게 집중하자마자 놀랍지 않게도 당연히머리에는 반짝하고 페미니즘 전구가 켜진 듯하다.

강남역 사건 이후 무어라도 해야 된다는 분노 반 부채감 반을 느꼈다. 그 후로 말하기 모임, 업계 페미모임, 주말 페미 북클럽을 해왔다. 아무 연결점이 없는 사람과 오로지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서로 알고 싶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실제로 만나고 그 것을 이어갔다는 게 새삼스레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함께한 모든 사람에게 감사를 꼭!

물론 무리를 해서 잔병치레가 잦았지만 또 얼마간을 나를 지켜줄 텍스트와 사람 그리고 페미니즘을 만났다. 이런 말을 하면 이내는 다시 불행해지기 때문에 자주 하지 않는 말이지만 어쩌면 내게 지금 과분한 행복감인가 싶을 정도로 많은 페미니스트를 만나서 기뻤다. 이번 해에도 이사와 이직을 해냈고 부디 내년에 이 두가지 과업은 반복할 일이 없길 바란다. 내년에는 올해 벌인 일과 만난 사람들을 잘 엮어서 또 다시금 내 경계를 밖으로 밀어낼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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