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1년

minbok
11 min readMay 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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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4일, 취임식을 위해 엘리제 궁 앞에 서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JEAN-CLAUDE COUTAUSSE/FRENCH-POLITICS POUR LE MONDE

바로 작년 오늘, 마크롱이 전격전을 통해 프랑스 대통령에 취임했다. 전격전이라고 한 이유가 있다. 마크롱은 올랑드 정권에서 경제부 장관 직을 그만두면서 정치운동 조직(당시의 이름은 En March!였다)을 만들면서, “올랑드 대통령님의 재선을 위함”이라 했었다.

물론 그게 다 뻔한 거짓말임을 그 당시에도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마키아벨리 식의 권모술수였을까? 그럴 수도 있기는 하다. 그가 분명 군주론을 애독했었다는 증언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임한지 1년이 지난 지금도 대선 얘기만 할 수는 없다. 그는 1년동안 어떤 대통령이었는가? 정말로 프랑스에 희망을 가져다줬는가?

그는 권위적인가?

맞다고 봐야 할 텐데 좀 개운찮은 면이 있다. 그가 권위적이라는 점은 사실이다. 가령 3월 1일, 엘리제 궁의 행사에서 연극을 한 편 공연했었다. Prokofiev의 “피에르와 늑대”였는데,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나레이션을 했었다. 본인이 직접 춤을 췄던 루이 14세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에피소드다. 당연히 이 모든 것을 마크롱이 직접 지휘했었다.

인상 깊었던 대선 결선투표날 저녁, 루브르 궁에 나타나 혼자 걸어갔던 것 또한 그의 지휘 하에 일어난 일이었다. 모든 이미지를 그가 결정해서 무대 감독으로 임한다는 의미다. 게다가 이건 프랑수아 미테랑도 자주 하던 일이지만 밤에 역대 유명 국왕의 종묘를 방문한다.

결선투표 당선 직후, 루브르 궁으로 걸어 들어오는 마크롱. Crédits photo : AFP

자기 스스로를 프랑스 국왕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는 포천지와의 인터뷰에서 영어로 “나의 국민들(my people)”이라는 표현을 거침 없이 사용했었다. 이전 국왕들의 종묘만이 아니다. 프랑스 국내의 성도 자주 방문한다. 이건 드골 대통령이 자주 했던 일이다. 2015년 경제부장관일 당시 주간지 Le 1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기본적으로 프랑스인들은 국왕의 죽음을 바라지 않았다고 봐요. 공포가 감정과 상상력, 대중에게 빈 공간을 파냈습니다. 국왕이 더 이상 없으니까요! 이 진공 상태를 나폴레옹주의자들과 드골주의자들이 채우려 시도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를 빼면, 프랑스 민주주의는 이 공간을 채우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그는 혹시 변화한 왕정주의자일까? 권위주위의 연장선상에서 말이다.

마크롱 스타일

1기 내각 사진, 모두 다 마크롱의 말을 수행하는 장관들이다. 정작 실세들은 이 사진에 등장하지 않았다. (출처)

꼭 그렇지도 않다. 그는 로스차일드 투자은행에도 다니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엘리트 출신에 대통령 보좌관과 경제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전의 다른 대통령들과는 달리 정부 돌아가는 구석을 잘 알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프랑스가 상의하달 식 전문 관료의 나라가 되어버렸다는 비판이 있기는 한데, 대통령 보고조차 꽤 디테일까지 다 말해줘야 직성이 풀린다고 한다.

게다가 그는 이미지 조작(?)만이 아니라 실제로 업무에 있어서 장관들 위에서 군림한다.

이러한 군림은 에두아르 필립 총리도 예외가 아니다. 어차피 그 덕분에 총리가 됐잖았던가? 필립 총리가 언론에 “허용하지 않은” 뭔가를 발설하면 바로 다음 날 소환해서 혼낸다고 한다. 게다가 그의 내각에는 정치인 출신들보다는 해당 부문 전문가들 출신이 많다. 이들 모두 대통령에게 뭐라고 대들 상황이 아니다. 대통령 덕분에 장관이 됐잖았겠는가? 게다가 마크롱은 장관 보좌관들 수를 확 줄였다.

엘리제궁에서 곧바로 부처에 명령을 내린다는 의미다. 어디 행정부 뿐이랴, 그는 국회마저도 전광석화처럼 장악했고, LREM 의원들 대다수가 정치 신참들이다. 당연히 마크롱에게 충성할 수밖에 없으며, LREM의 균열은 여전히 전혀 안 보이고 있다. 소수의 “이건 좀…”하는 의견은 있지만 의회 내 투표가 있으면 모두 다 한 몸으로 행동한다. LREM 대표인 크리스토프 카스타네(Christophe Castaner)는 마크롱을 설명할 때 눈이 초롱초롱 빛날 정도다.

카스타네가 마크롱을 바라보는 눈빛을 보시라. (출처)

종합하자면, 마크롱은 현재 나폴레옹의 격언, “행동 전의 고민은 길게, 행동은 빠르게(Il faut être lent dans la délibération, vif dans l’exécution)”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드)골리즘과 보나파르티즘이 적절히 섞여 있다고 해야 할까?

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이 또 있다. 콜베르+저커버그다. 위에서 얘기했던대로 군주론을 분명 잘 습득하고 있는 마크롱은 전문가들의 “스타트업 기업” 형태로, 이들이 군주(!)의 명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는 “톱-다운” 방식이다. 그렇다면 군주의 말씀을 잘 전달할 “복심”이 있어야 한다. 물론 있다.

마크롱의 사람들

  1. 알렉시스 콜레(Alexis Kohler, 1972년생) 비서실장

이 사람이 마크롱 정부의 핵심 중의 핵심이면서 대중 앞에서는 잘 안 보인다. 어떻게 보면 에두아르 필립보다도 한 수 위. 마크롱의 생각과 말, 행동을 모두 다 같이 하고 있고, 아래로 명령을 내리는 인물이다.

2. 이스마엘 에믈리엉(Ismaël Emelien, 1987년생) 특별보좌관

원래는 DSK, 그러니까 도미닉 스트로스-칸, 전 IMF 총재의 수제자였고 마크롱의 시앙스포 후배이기도 하다. 선거구와 표심, 여론조사 전문가이다. 그 역시 대중 노출을 극도로 꺼린다. 피가로에 따르면 그의 목소리를 아는 이가 없을 정도라고. 주변 인물들은 그를 “이스마”라 부른다.

3. 실뱅 포르(Sylvain Fort, 1972년생) 연설보좌관

독일 문학과 독일 고전 음악을 좋아하는 (실제로 박사 학위 논문이 “프리드리히 폰 실러 젊은 시기의 희곡”이다) 마크롱의 고교 선배이자 대학 선배. 연설보좌관이라고 하는데, 과연 연설문만 작성하고 있을까?

4. 브뤼노 로제-쁘띠(Bruno Roger-Petit, 1962년생) 대통령실 대변인

원래는 친-사회당 계열 언론인이었는데 대선 후보 시절의 마크롱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다. 그의 정부 내 정확한 역할 역시 알려져 있지 않다.

5. 시베뜨 은다예(Sibeth Ndiaye, 1979년생) 홍보보좌관

마크롱이 장관 시절 때부터의 마크롱의 보좌관이었다. 그녀가 정부 내 일들에 대해, 모든 언론 누출을 틀어막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기자들과의 험악한 관계를 그녀가 떠맡고 있다.

하지만 뭣보다도 핵심 보과관은 따로 있다. 그 이름은 다름 아닌…

6. 브리짓 마크롱(Brigitte Macron, 1953년생) 영부인

위의 핵심 인물들은 모두 다 전면에 안 나서는 이들이다. 하지만 영부인은 다르다. 전면에 나서기도 하고 안 나서기도 하는데, 인기도 많고(팬레터(?)가 하루 200통씩 온다고 한다) 해서 보통은 마크롱의 “매력 자산”이라는 평이 많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그녀가 마크롱의 핵심 참모이기 때문이다. 다른 영부인들과는 달리 브리짓 마크롱은 재단을 세운다거나 기금 조성에 전혀 관심이 없다(오로지 장애 어린이들만 신경쓴다고 한다). 파리 시내를 매일 매일 활보하면서 직접 여론을 듣고 남편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당연히 남편은 부인의 말을 매일 경청하고 있다.

그의 과제

그의 남은 과제는 유럽과 (자기 자신의 재선을 포함한) 프랑스일 것이다. 프랑스 먼저 얘기하자면 그는 이제까지 하고자 하는 개혁을 대부분 “실천”했다. 부에 대한 연대세, 이른바 부유세를 부동산 부유세로 축소시켰고, 노동법을 행정명령을 통해 개혁했으며, 철도청(SNCF) 개혁도 잡음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 그가 의도한대로 가는 모양새이다. 그래서 과거와는 달리 실제로 일을 해내는 이미지가 계속 쌓여가고는 있지만, 그에 대한 반대율이 높음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 여론조사를 자세히 보면, 그의 지지율이 다시 상승세일 뿐 아니라 LREM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지지율이 92%이다. 어차피 1차 투표에서의 승리(2017년 당시는 24%를 얻어 결선에 진출했었다)가 관건이기 때문에 철옹성같은 지지율은 그에게 큰 힘으로 남을 것이다. 게다가 우파(대체로 알랭 쥐페 쪽일 것이다)와 함께 투표율이 무척 높은 은퇴 계층의 마크롱 지지율이 계속 상승세다.

2018년 3월 16일, 엘리제 궁 (출처)

일단 현재로서 재선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유럽은 어찌 할 것인가? 앙겔라 메르켈하고 매일같이 통화하고 문자를 주고받으며, 브뤼셀에서 볼 때도 같은 호텔에 묵는다는데, 독일이 너무나 깐깐하지 않나? 어차피 독일은 마크롱의 모든 요구에 NEIN이라 답할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이란과 같은 외교 문제는 결국 미국과 같이 풀어야 할 일이겠지만, 유럽 문제는 독일을 어떻게 상대하느냐에 달려 있다(현재의 영국은 이미 역사의 주인공에서 탈락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현재 마크롱은 독일 설득을 포기, 깨끗이 항복(?)했다고 보이지만 아직 모르는 일. 지금으로서는 그 편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항상 “내러티브”를 강조한다. 앞으로의 유럽 역사에서 그가 어떤 내러티브를 보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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