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딜리아니와 위조 스캔들

minbok
10 min readOct 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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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tratto di Maria, 1918 (“마리아의 초상”, 미국 개인 수집가 소유)

위 그림은 2015년 서울에서 모딜리아니 전시회(한가람 미술관)를 할 때에도 걸려 있었다. 진품 70여점을 데려다가 했다고 하는데, 지난 7월 이탈리아 제노바의 팔라쪼 두체에서 역시 진품 70여 점을 가지고 모딜리아니 전시회를 했었다가… 마지막날이 되기 3일 전, 돌연 전시회를 서둘러 마감했다. 전시 작품 중 21점이 위조작임을 의심 받아 제노바 검찰청으로부터 압수 수색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시회 웹사이크 캡처(출처)

바로 위 그림도 21점에 속해 있었으며, “확실히 위조”임을 판명 받은 작품 중 하나다. 이미 십 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간 이후였다. 이번 전시회의 경우가 특이하긴 하지만, 모딜리아니 작품에 대한 위조작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모딜리아니가 사망하자마자 위조작이 만들어졌는데, 유독 모딜리아니 위조작이 이렇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다.

  1. 가격. 2015년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모딜리아니의 Nu couché (1917–18)는 1억 7천만 달러에 팔렸었다. 그 만큼 돈이 된다는 얘기다.
  2. 위조의 용이성. 키클라데스(Cycladic) 예술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모딜리아니 작품은 그만큼 위조가 쉽다.
  3. 카탈로그. 사실 온갖 모딜리아니 위조작 문제의 핵심이다. 보통은 작가당 하나의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é)가 있지만 모딜리아니의 경우는 6개다.
크리스티 경매장에서의 Nu couché (출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일생은 딱 35년 뿐이었다. 예술가답게 방탕하게 살았다고는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면모도 가졌으며, 파블로 피카소의 증언에 따르면 모딜리아니는 파리에서 유일하게 옷 입을 줄 아는 신사였다.

브랑쿠시와 만나면서 조각에도 눈을 떴지만 조각은 곧 그만둔다. 어쩌면 재료값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병(결핵)에 걸려 35세의 나이로 1920년 사망한다. 연인이자 역시 화가였던 쟌 에뷔테른(Jeanne Hébuterne)도 모딜리아니의 뒤를 이어 (임신한 몸으로) 자살한 얘기는 유명할 것이다. 그 둘 사이에는 딸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당시 딸은 갓난아기였다.

Jeanne Hébuterne (au foulard) (1919) (출처)

게다가 모딜리아니는 워낙 가난했기 때문에, 그림을 그려줘서 팔기도 하고, 내키는대로 거리의 주정꾼에게도 그림을 줬다고 한다. 예술가 친구들이 모딜리아니의 조각을 완성시켜주기도 하고 말이다. 아빠의 작품들을 알아봐야 할 딸이 갓난아기였다는 점과 부부 모두의 이른 사망, 모딜리아니의 따뜻한(?) 성격은 모딜리아니 작품의 정통성을 가리는 데에 큰 어려움을 주고 있다.

카탈로그 레조네

모딜리아니에 대해 권위 있는 카탈로그가 없지는 않다. 이탈리아의 비평가 암브로지오 체로니(Ambrogio Ceroni)로서, 그는 사망한 1970년까지 총 337 작품의 카탈로그를 만들어 놓았고, 미술업계에서는 체로니 카탈로그만 믿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 만큼 보수적으로 모딜리아니 작품의 진위를 판별했기 때문이다.

모딜리아니 사진 (출처)

그런데 체로니 카탈로그에는 다른 문제점도 있다. 체로니는 자신이 손수 목격한 그림만을 조사했기 때문에 미국에 있는 모딜리아니 작품들(?)은 전혀 조사가 안 됐었다. 생각해 보시라. 유태인이었던 이유도 있고 해서 2차대전 전후로 미국에 건너간 작품들도 꽤 있었다. 당연히 이 카탈로그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체로니가 선정한 작품 자체에 대한 불만도 있다고는 하지만 어느 작품들인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소송 가능성 때문이다.)

그럼 체로니 이후에 모딜리아니 전문가가 없었는가? 있었다. 크리스티앙 파리조(Christian Parisot), 60대 후반인 그는 모딜리아니에 대한 여러 권의 책을 냈으며, 쟌 모딜리아니(모딜리아니의 딸)를 만나 친교를 쌓았다. 그리고는 모딜리아니의 노트나 작품, 스케치 등을 많이 “얻었다.” 그리고는 이 자료들 6천여 점을 갖고 모딜리아니 합법 기록물 보관소(Archives Légales Amedeo Modigliani)를 건립했으며, 그 나름의 모딜리아니 카탈로그 레조네도 제작했다.

Jeanne Modigliani (출처)

문제는 이 크리스티앙 파리조의 명성이 아주 수상하다는 점에 있었다. 그의 저작물은 카탈로그를 포함, 스펠링이나 문법 오류, 수상쩍은 작품들이 들어 있다는 평을 받았으며, 결정적으로 파리조 본인이 위조범이었다.

2006년, 파리 경찰청은 기록물 보관소를 급습했으나, 기록물들은 전혀 해당 장소에 없었고, 모딜리아니 미술관 건립을 위해 로마의 모처로 보냈다고 했다. (해당 미술관은 건립되지 않았다.) 그리고는 쟌 에뷔테른의 수채화와 드로잉 77점의 위조로 인해 2010년 2년 집행유예 및 벌금형을 받았다.

판결 후 파리조는? 이탈리아의 양조장과 계약하여 모딜리아니 포도주를 만들기로 했다. 본격 상업 이용으로서, 모딜리아니 담배도 나온다고 한다. 2020년에는 모딜리아니 사망 100주년 기념 전시회도 계획 중이다.

Laure Nechtschein Modigliani(출처)

이미 사망한 쟌 모딜리아니의 딸, 로르 넥트샤인(Laure Nechtschein Modigliani)은 파리조의 수상쩍음을 알고 기록물을 내달라 이탈리아 법원에 명령을 청구했으나… 이탈리아 법원은 파리조의 손을 들어준다.

새로운 희망?

새로이 모딜리아니 전문가로 떠오른 예술역사가 마르크 레스텔리니(Marc Restellini) 또한 파리조에 대해 적절하지 않다는 정도의 관점을 갖고 있으며, 그만의 카탈로그 레조네를 작업하고 있는 중이다. 체로니 카탈로그에 비해 작품이 꽤 늘어난 모양이다. 원래는 Wildenstein Institute의 후원을 받았으나 이 연구소도 문제가 있었다.

Marc Restellini (출처)

원래 모네 작품의 위조 여부를 두고 말썽을 빚었던 이 연구소는 모딜리아니에 대해서도 이 작품을 넣어 달라, 저 작품을 제외하면 네가 죽는다 등의 위협과 뇌물을 주려 했다고 한다. 그래서 레스텔리니는 아예 레스텔리니 연구소를 창립, 현재 카탈로그를 작업중이라고 한다.

위조작의 위조작

레스텔리니에 따르면 모딜리아니 위조작이 천 점을 넘는다고 한다. 심지어 유명(!) 위조작을 위조한 작품들도 나돌고 있으며, 15년 전 프랑스에서는 웃지 못할 일도 하나 있었다. 한 조폭이 다른 조폭과 함께 모딜리아니 작품을 거래하려 한 것이다. 이 과정이 경찰에게 발각, 경찰은 거래 대금과 모딜리아니 작품을 압수했다.

위조작 중 하나, “Nudo disteso (Ritratto di Céline Howard)” (출처)

그래서 조사했더니, 체로니 카탈로그에 있다고 주장했던 그 작품은 위조작, 심지어 거래 대금으로 사용했다는 현금도 위조 지폐였다.

이제는?

문제는 크게 늘어난 모딜리아니 위조작을 가려야 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당장 11월부터 영국의 Tate Modern에서 모딜리아니 전시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이번 이탈리아 건도 있고 해서 비상. 일단은 체로니 카탈로그가 기준이라고는 하지만 체로니 카탈로그 자체도 문제가 좀 있기 때문에 테이트 측에서는 몇몇 작품에 대해 위조 감별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체로니 카탈로그에 등재돼 있는 이 그림(PORTRAIT OF BEATRICE HASTINGS)을 레스텔리니는 위조작품이라 주장하고 있다. (출처)

우선은 프랑스에서, 정부 보유 모딜리아니 그림 27점과 조각 3점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물감 판별은 물론 엑스레이, 적외선 촬영, 모딜리아니 작품에서 뽑아낸 유기물과의 대조 검사를 하는 중이다.

하지만 위조물의 삶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 위조물로 판별됐다 하더라도 10여 년 후, 갑자기 또 진품으로 둔갑하여 전시회에 등장하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영원히 돌고 도는 쳇바퀴? 그래서 위조작을 아예 파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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