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nelius und Hildebrand Gurlitt

법적 함의 및 퇴폐예술(Entartete Kunst)

minb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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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22, 2013 · 7 min read

문득 보니까 이 사건 카테고리가 “예술”로 돼 있다. 당연하면 당연하지 싶다. 뮌헨에서 발견된 1,400여점의 미술품 사건이다.

보다 자세한 정보가 나왔다. 일단 기차에서 붙잡힌 것은 2010년 9월이었다. 취리히-뮌헨 특급열차에서 스위스 은행의 구좌 현금을 가져온 것이 아닐까 의심을 받은 구를리트는 처음에 돈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조사를 받았고, 거기에서 9천 유로를 적발당했다.

당연히 세관으로 노인이 넘겨졌고, 구를리트는 세관에게 자신이 예술품 거래인이며 뮌헨에 주소가 있다고 당국에 넘겨줬다. 하지만 뮌헨에 해당하는 주소가 등록돼 있지 않아서, 은행 계좌 정보, 사회보장 등록번호, 의료보험증, 납세 기록 등 모든 것을 찾았다.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당국은 구를리트를 감찰 하에 놓아 뒀고 2011년, 아우쿠스부르크(관할 구역)에서 수색영장을 발급했다. 하지만 그의 아파트는 5개월 후에나 수색이 이뤄졌고, 그때 그의 소장품(!)들이 발견된다. 이때가 2012년 2월 28일이다. 그런데 그림들이 서랍 안에 그냥 쌓여 있었고, 당국은 그때 깨달았다. 거인의 공포를…이 아니고, 이거 탈세가 아니라 나치 예술품이 아닐까?하는 의심이었다.

문제는 세관당국의 조치였다. 일단 전문가(?)를 아파트로 들인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이들에게는 장갑도 없었고, 아파트 안이 너무 비좁았다. 조사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그림이 많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도 이들이 양심은 있었는지, 장갑이 없으니 만질 수 없겠네요라 말했었다. 그래서 어찌 보면 당연한 조언이랄 수 있을 텐데, 아파트가 아니라 온도 조절이 되는 예술품 저장고로 옮기라고 권고를 해줬다. 그래서 모두 다 압수.

구를리트가 거주하는 아파트

응? 그들이 가진 것은 수색 영장이지, 압수/몰수 영장이 아닐 텐데? 이 의문에 대해 당국은 답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다 옮긴 후 정식 조사가 시작됐고, 처음에는 예술사학자 1명만 동원됐다. 기밀유지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구를리트의 가족사가 공개된다. 그의 아버지다.

아버지인 힐데브란트 구를리트는 알려진대로 나치, 특히 괴벨스의 미술중개인이었다. 나치는 이른바 퇴폐예술(Entartete Kunst)이라는 일종의 “내쫓아야 할 예술”의 정의를 내린 바 있었다. 리하르트 바그너가 1850년에 작성한 “음악에서의 유대주의(Das Judenthum in der Musik)에서 대대적으로 유대인을 비판한 이후, 1933년, 정권을 잡은 나치가 공무직복구법(Wiederherstellung des Berufsbeamtentums)에 따라 유대인을 공무원에서 내쫓으면서 시작됐다. (나치즘을 히틀러가 뚝딱 만들어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부러 바그너를 집어 넣었다.) 유대인 책에 대한 분서갱유도 하면서 말이다(어디서 들어봤을 게다).

퇴폐예술(Entarte Kunst) 전시회를 관람중인 괴링과 히틀러(1937)

정의는 간단했다. 유대인 및 공산주의(볼셰비키) 예술 배격! 하지만 대상이 예술이기 때문에 그 기준이 상당히 애매모호했고, 일반적으로는 나치 이전, 그러니까 바이마르 시기까지의 모더니즘 모두가 비판의 대상에 올랐다. 그와 반대는 그리스/로마식의 예술, 아직 유태인의 “때”가 덜묻었던 양식이라는 이유다. 그래서 공직은 물론 일반 직장에서도 “퇴폐 예술” 관련자(작가만이 아니라 딜러도 포함)는 추방되거나, 유배되거나, 망명하거나, Aktion T4에 따라 안락사당했다.

(Aktion T4는 장애인을 죽이는 정책 아니었나 싶으셨겠지만, 정적 죽이기에도 적잖이 활용됐던 프로그램이었다. 서양의 여론이 “안락사”에 진저리치는 이유 중 하나다. 나치정권이 이 정책을 펼치기 전에, “안락사는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는 식으로 선전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퇴폐예술을 장황하게 설명했는데, 힐데브란트 구를리트가 이 “퇴폐예술” 작품 거래를 나치시절에 허가받은 사람이었다. 여기서부터 잘 보셔야 한다. 괴벨스는 독일 전역에서 수집(…)한 퇴폐예술 작품들을 “처리”하기 위해 힐데브란트 구를리트를 포함한 “딜러”를 지명했다(나치당 간부들의 경우, 소양 없는 자들이 많았고 취향을 걸리면(!?) 안 되기에, 작품을 가져가더라도 다시 되파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각 작품을 국내외 수집가들에게 팔았지만 딱히 사후보고가 정확히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처리를 통해 큰돈을 벌기도 했어도 그런 수집품 상당수를 “자기가” 간직했다. 게다가 퇴폐예술 작품만 사들인 것도 아니다. 고전적인 예술품도 많이 사들였다(그러니 뒤러 작품이 나오잖았겠나). 그리고 그의 고향집이 있는 드레스덴에도 상당수 작품을 놓아뒀다.

뭐라? 드레스덴?

여러분 생각하시는 것 맞다. 전후 미군에게 붙잡혔을 때 그는 작품 상당수가 드레스덴 공습으로 파괴됐으며, 합법적인 거래임을 증명했고 이민 나가려는 유태인들로부터 작품을 몰수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미 미국에도 잘 알려져 있던 딜러였기에 그는 무죄로 풀려났고, 전후에도 그는 미술거래인으로 활동하며 교통사고로 사망(1956)할 때까지 활동했었다.

자, 바이에른 당국에 따르면, 이번에 발견된 작품은 대충 세 가지 종류에 속한다.

1. 나치가 퇴폐예술이라 해놓은 작품들 380점

2. 주로 유태인 소유주들로부터 “압수”된 작품들 590점

3. (나치시절 이전 “구입” 등) 확실히 합법적 입수로 보이는 310점

여기서 의문을 가져보자. 1번과 2번을 원래 소유주에게 돌려주는 것이 맞을까?

1번의 경우, 나치가 퇴폐예술이라 해서 압수한 작품들 상당수는 원래 독일의 국립 미술전시관에 걸려 있던 작품이 많다. 원래 국가 것이었고 그 소유/처리가 딜러에게 옮겨졌기에 지금 와서 어떻게 할 근거가 미약하다. 게다가 꼼꼼하다는 독일인이 저지른 대표적인 실수가 있다. 퇴폐예술몰수처리법이 아직도 파기가 안 됐기 때문이다(물론 라트부르흐 공식에 따라 나치 관련법 전부 무효!라 할 순 있겠다). 따라서 법적 흠결이 발생할 여지가 매우 크다.

최근, 전 IMF 총재, 도미닉 스트로스 칸과 이혼한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안 상끌레르(Anne Sinclair)는 마티스의 이 작품이 아버지(Paul Rosenberg) 소유라고 주장하고 있다.

2번의 경우, 나치 정권이 소유주와 그 가족들을 워낙 많이 “죽였기” 때문에 법적으로 소유권이 어디에 있을지는 상당한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더구나 소유주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별다른 “근거” 없이 주장하는 경우가 많고 시효 인정 여부도 논쟁거리다. 단, 2번에 해당하는 작품을 모두 소송으로 해결하려 할 경우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일단 바이에른 주 법무부와 문화부, 재무부, 연방 문화/미디어부 등이 태스크포스를 조직하기로 한 모양이다. 중구난방으로 제각기 조사하기보다는 그 편이 나을 테지만, 바이에른은 뭐든 연방 탓 하던 동네 아니던가. 잘 될지는 모르겠다. 유대인은 유대인들대로 그 태스크포스에 꼭 자기들이 끼어야 한다고 야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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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doppia v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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