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위기와 1920-30년대의 유럽

minbok
6 min readFeb 8, 2016
제국중앙은행에서의 회의장면이다. 샤흐트는 맨 왼쪽 인물.(출처)

제목이 거창한데 사실 이 글의 이야기는 실현 가능(?)한 근미래와 1920-30년대 독일의 비교이다. 당시 독일이 어떻게 경제성장을 이끌어냈냐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얄마르 샤흐트(Hjalmar Schacht)를 만날 수 밖에 없다.

생소한 인물이실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치를 지지하여 독일 제국중앙은행장으로서 승승장구 했지만 결국 히틀러(그리고 괴링)와 불화하여 권력에서 탈락한 인물이다. 덕분에 전범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말이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샤흐트가 독일 경제에서 활약을 보였을 때가 크게 두 번 있다. 첫 번째는 20년대, 두 번째는 30년대이다. 사실 이렇게 나누는 편이 깔끔한 구분이기는 한데,사전 지식 없으면 뭔 말인지 궁금하실 것이다.

  1. 20년대: 렌텐마르크의 도입을 통한 하이퍼인플레이션 해결
  2. 30년대: 페이퍼컴퍼니의 어음 발행을 통한 대규모 적자재정의 실현

한 문장 요약만 봐도 어지러울 수 있다. 20년대부터 보자.

Berlin Alexanderplatz의 한 장면 (출처)

당시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그저 전쟁 채무 불이행(즉, 이행을 위한 무조건적인 화폐 남발)으로 교과서에 나오곤 한다. (물론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드라마, “벨린-알렉산더 플라츠”를 보셔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잘 안 나온다.

자, 독일이 왜 채무납부를 위해 화폐를 남발했을까부터 보자. 베르사이유 조약은 금이나 파운드/프랑으로 채무를 줘야 했다. 그런데 독일은 전쟁중에 이미 금본위를 탈퇴하면서 화폐를 남발한 상태였고, 금/경화(파운드/프랑)를 매입해야 했으니 더더욱 화폐를 남발해야 했었다. 뭘 믿고? 바이마르 공화국을 믿고?

그래서 1 미국달러 당 4 마르크하던 환율이 1923년에는 1 미국달러당 4.2조 마르크로 돌변한다. 이러니 차라리 현물(석탄)로 내는 편이 나았고, 그때문에 프랑스/벨기에는 루르 지방을 무력으로 점령하기에 이른다. 이때 샤흐트가 등장. 물론 샤흐트 혼자 하지는 않았지만 주된 해결책은 임시 IOU(차용증서)라 할 수 있는 렌텐마르크(Rentenmark)였다.

2 렌텐마르크 (출처)

더 이상 정부채권을 지불하지 못 하는 재무부 대신, 독일 내 금보유량 및 그 외 자산을 기준으로 만든 임시 IOU, 즉 임시 화폐가 렌텐마르크였다. 그저 남발했던 기존 마르크 대신, 금본위제로 돌아갔다는 의미가 여기서 나온다. 이로써 일단 독일 내 초-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었다.

1930년 야인으로 돌아간 샤흐트는 권력욕을 키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으리라 판단한 정치세력과 힘을 합친다. 바로 나치다. 그는 독일 내 산업계 지도자들과 함께 힌덴부르크에게 압력을 가하여 히틀러를 총통으로 올리고 자신은 다시금 중앙은행장에 오른다. 그에게는 새로운 임무가 생긴다. 30년대 얘기다.

히틀러와 샤흐트 (출처)

당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해결한 독일의 과제는 “정상국가”로의 재진입이었다. 하지만 베르사이유 조약 하에서 독일 정부는 회계장부를 연합국 측에 다 공개해야 했고, 재무장이 불법화 되어 있었으며 법적인 이자율이 4.5%에 머물러야 했다. 어떻게 해결해야 했을까?

20년대 렌텐마르크의 경험을 되살려, 샤흐트는 “중간 장치”를 하나 만들기로 했다. 페이퍼컴퍼니를 한 곳 만들어서 그곳의 어음(즉, 중앙정부의 장부에는 기록 안 된다)을 마구 발행하여 회사들이 페이퍼컴퍼니를 위해 무기를 만들도록 한 것이다. 이른바 MEFO Wechsel이라 불리우는 유령 어음의 탄생이다.

당시 독일 정부 채권이 190억 제국마르크였다고 하는데, 이 MEFO Wechsel 어음은 120억 제국마르크에 달했다고 한다. 재정적자x적자를 조성하여 실업자도 줄이고 도로도 닦고 무장도 하고, 일석 3조 이상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이게 다 전쟁 이전까지였다.

제국마르크 지폐 (출처)

히틀러의 유대인 정책이나 전쟁 추진에 반대했던 그는 한직(요새 말로 하면 특임장관)으로 물려난 다음, 결국 해임당했고, 반-히틀러 조직과 대화하기도 했었다. 그가 히틀러에게 반대했던 이유는, 무한-재정적자와 다를 바 없는 전쟁추진이 다시금 독일을 부도 상태로 내몰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페이퍼컴퍼니로 충분하고 더 이상은 위험하다는 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샤흐트의 모험, 특히 30년대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적자재정을 지금 눈여겨 봐야 할 이유가 무엇일지 나온다. 적자재정을 추진하려는 남유럽 국가나 프랑스에게 일종의 “힌트”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가령 2018년에 예정되어 있는 이탈리아 총선에서 제1야당이라 할 수 있을 5성운동(MoVimento 5 Stelle)의 베페 그릴로(Beppe Grillo)가 총리에 오를 때, 때마침 이탈리아 중앙은행장도 바뀔 때가 된다. 2018년 11월 자기의 입맛에 맞는 중앙은행장을 고용하여 탈-유로로 향하는 방법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 방법은 MEFO-Wechsel과 유사할 가능성이 높다. 일종의 “렌텐-리라”도 발행하면서 말이다.

베페 그릴로, 그의 별명은 “코메디언”이고 실제로 코메디언 출신이다. (출처)

마린 르펜도 마찬가지. 가능성은 낮지만 만약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멀쩡히 있는 중앙은행장을 갈아 치워서 샤흐트 방식을 추진할지 모를 일이다. 베페 그릴로와 마린 르펜 모두 탈-유로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1930년대의 독일과 마찬가지로 실업률의 대폭적인 감소, 공공투자 급증을 통하여 대대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다. 무엇을 희생 삼아서? 유럽과 유로다. 마리오 드라기, 보고 있나?

뭐라? This time is different?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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