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s mine

바쁘다. 중국어 수업 때문에 8시까지 출근하고, 야근하느라 새벽 1시에 퇴근한다. 부족한 잠과 스트레스는 고열량 식사에 동료들과의 한 판 수다로 이겨내는 중이다. 이번 주에 운동을 하루도 못한건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운동할 시간에 일을 조금이라도 더 쳐내야 했으니까. 숙면을 못 취해서 목과 어깨가 뻐근한거 빼면 아직은 버틸만하다. D-day는 26일이니, 지나면 좀 나아지겠지. 물론 행정처리가 남았지만… 못할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힘들다고 느끼지 않는건, 순수하게 업무 자체가 많아서이지 사람 등의 외적인 요소로 스트레스 받는게 아니니까. 지금 우리 그룹에서 내가 하는 쪽 일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니 감내놔라 배내놔라 하는 사람도 없고, 그냥 내가 주도적으로 끌고가니 그런 면에서는 마음이 편하다. 일이 나에게 주는 만족이란게 이렇게 크다. 자존감을 높여주고, 결과물에 뿌듯해하며, 머리를 쥐어 뜯으면서도 배시시 웃게 만든다(이건 좀 이상한가?).

특히 이번 달은 너무도 빨리 지나 10월이 존재는 했던가 싶을 정도다. 주말 근무까지 해서일까? 일로 꽉꽉 채운 것 같다. 오늘도 뭔가 좀 극한 일정이었다. 일단 어제 새벽에 들어와서 화장도 안 지우고 입은 옷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 어찌저찌 아침 9시쯤 일어나서 조금 쉬다가 교회 친구들과의 점심을 위해 명동을 나갔다. 어제 보냈어야하는 문서가 있는데 받는 사람이 토요일에나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점심 먹다 말고 나가서 퀵 보내고;;;; 오후에는 뇌수막염으로 입원한 친구 병문안가고 집에와서 밥 먹고 또 일하고… 스케줄 배분 예술로 잘 쪼개놨다며 스스로 감탄하면서도 이게 과연 감탄할 일인가 싶기도 하고 ㅋ 참 내 삶에서 이 놈의 일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크구나. 남자도 없고, 애도 없고, 돈도 없고 나는 일이 전부구나 싶었다(참고로 이건 그 어떤 자조 섞인 생각이 아니다. 그냥 정말 그렇다는거다).

막상 누군가가 나에게서 내 일을 빼앗는다면? 타의에 의해 평생 내가 이 일을 못하게 된다면? 뇌수막염으로 반년 넘게 침상에 누워만 있어야하는 친구를 방문했다. 쓰러진 후 나는 오늘 처음 방문했다. 지난 2~3년의 기억이 없다고 하여 혹여 나를 못 알아보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날 알아보더라. 기특한 녀석. 아직 일어나진 못하고 말투는 어눌했지만 유머감각도 여전했고 활짝 웃는 모습에 약간은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말을 하는 중간중간 결혼과 일에 대해 희망을 더 이상 품지 않는 듯한 표현이 날 참 마음 아프게 했다. 성실하고 일도 잘했고 일찍이 팀장까지 단 아인데 그놈의 병이란게 뭔지 순식간에 친구의 미래를 앗아갔다.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만 누워있던 날들을 벗어나 이제는 말도 하고 재활에 집중하고 빨리 회복할 일만 남았지만 어쩔 수 없이 삶에 있어서 큰 부분들을 포기했어야하는 그 속마음이 얼마나 쓰릴지 대화 속에서 조금은 알것만 같았다.

주님한테 묻고싶다. 그 친구한테 어떠한 더 큰 길을 주실려고 이렇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순간을 내리셨는지.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묻게 된다. 나라면? 내가 이리도 사랑하는 일에서 강제로 손을 떼어야 한다면? 내가 가진 것이라곤 정말 일 밖에 없는 것 같은데… 나라고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주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하나는 믿는다. 이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이유 없는 시련은 없으며 힘들 수록 더 멀리 바라보며 비전을 품어야한다고. 친구가 희망을 잃지 않길 기도한다. 주님이 그 친구를 내치기 위해 이런 일이 일어난게 아니라 그 친구를 더 큰그릇 삼기위한 일이라고.

육체적인 일은 아니지만 나도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너무 힘들어 마치 내가 영화 박하사탕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날 죽음으로 내모는 것 같았다. 이길의 끝은 그냥 정말 끝인가 싶었던 날들이다. 얼마나 울고 얼마나 세상에서 꺼져버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내일이란게 보이니지 않았다. 그 시간들 속에서 스스로 칭찬하고 싶은게 하나있다. 주님을 끝까지 붙잡았다는 것 (아니, 물론 그 분이 날 놓치 않은 것이겠지만). 울고불고 정말 바짓가랑 잡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나 버리지 말라고, 나 살려달라고, 나에게 작은거 하나라도 보여달라고, 여기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성경 속 야곱의 심정에 가까웠다. 나 좀 어떻게 도와달라고, 난 주님 아니면 안 된다고. 그렇게 울면서 몇번을 응답을 구했다.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귀속에 들리는 음성이 아니다. 응답을 해주셔도 그 순간엔 그것이 응답인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일이 다반사인 듯 하다. 뒤돌아보니 그것이 응답이었던거다.

성경에 대한 나의 지식은 어렸을때보다 희미해졌지만 내 맘이 주님을 의지함은 스스로의 삶을 통해 더 짙어졌다. 그래서 친구한테 포기하지 말라고 하고 싶은거다. 왜를 물으며 시간을 보내지말고 앞으로를 바라보며 강력하게 갈구하고 나아가라고. 혹여 원망을 해도 그 분을 찾고 화를 내도 주님한테 화를 내라고 하고싶다. 그렇게 해서라도 주님과의 끈을 이어가라고. 그러면 분명 응답하실거라고.

우습다. 내 일. 내 것. 내 것이란게 없는데. 다 주님이 주신 건데. 다 주님 것인데 건방졌다. 이 글을 쓰는 말미에 난 또 이렇게 하나 깨닫는다. 나에게 일을 준 것도 주님이고 그것을 가져가는 것도 그분 손에 달려있다. 난 그저 주신 것에 감사하면 되는 것이다.

One clap, two clap, three clap, forty?

By clapping more or less, you can signal to us which stories really stand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