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2019 개인 회고

Mijeong (Rachel)
Dec 30, 2019 · 11 min read

도대체 왜 이렇게 회고 시즌이 빨리 돌아오는 건지 잠시 생각하다가 2019년 한해를 돌아보았다. 2020년 계획 Personal OKR for Y2020에서 작성했듯이 일, 공부, 운동, 삶이라는 카테고리로 나누어 정리해보았다. 해당 카테고리 안에서 내가 달성한 것달성하지 못한 것들로 나누어 생각했다. 한 해를 보내는데 왜이리 몸도 마음도 힘들었을까 생각하며 하나하나 정리하다보니 그럴만도했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차분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토닥여주다보니 2020년은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도 생겼다. 진짜 잘 가라 2019년, 진짜 안 와도 되는데 34살.


일 👩‍💻

올 한해의 나의 일을 한 문장으로 회고하면 ‘얻고자 한 것은 조금 덜 얻었지만 예상치 못한 성장이 치고 들어왔다’ 이다.

달성한 것 1. WHY 시리즈

WHY 시리즈는 내가 일을 하면서 내린 기술적인 결정들의 이유를 스스로 정리하고자 작성했던 글 모음이다. ‘총 12개의 WHY 시리즈 글’을 작성했고 대충 한 달에 한 번 정도 작성한 셈이다.

WHY 시리즈 글의 시작은 항상.png

작성한 12개의 글 목록은 다음과 같다.

가장 기억에 남고 마음에 남는 글은 [WHY 시리즈 1] E.007 — Pull Request를 통해 잡은 오류들[WHY 시리즈 1] E.012 — 두 번째 Pull Request 이야기 이다. 개발이라는 영역에서 협업을 통하여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 중에서 코드 리뷰를 가장 좋아하기도 하지만, 당시 경험 자체의 질이 높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20년도 WHY 시리즈는 버전 2로 계속 진행될 예정이고, Personal OKR for Y2020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WHAT 시리즈 글도 추가로 작성할 예정이다.

달성한 것 2. 서비스(프로덕트)의 성장

이 곳, 베트남에서 배달서비스를 구축하기 시작한지 1년이 넘었고, 서비스가 정식으로 출시된 지도 반 년이 훌쩍 넘었다. 이전에 작성한 글에서도 언급한 적 있지만 서비스 출시 때에 목표로 했었던 올 해의 수치들은 예상보다 일찍 넘겼다. 즉, 우리의 예측보다 서비스는 훨씬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고, 그만큼 우리는 숨가쁘게 달려오고 있다는 말이다. 서비스의 성장이 나에게 미친 영향은 크게 두가지 관점으로 볼 수 있을 것같다.

첫 번째, 급격하게 성장하는 트래픽을 경험한 것이다. 이미 트래픽이 많은 서비스를 경험하는 것과 무(無)에 가까웠던 트래픽이 급격하게 성장하는 서비스를 경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안일했던 예측때문에 적지 않은 장애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AWS ECS의 인스턴스 스펙을 조정하고, 적절한 scale in/out 규칙을 찾고, slow query를 찾고, DB 스펙을 조정하고, 외부 시스템과의 인터페이스를 더 견고하게 맞춰나가는 것과 같은 작업을 해야했지만 덕분에 sustainable하고 scalable한 시스템을 위한 준비운동을 마칠 수 있었다.

두 번째, 팀이 아닌 프로젝트 매니징을 경험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전에는 리더로서 팀원을 지키기 위한 결정들을 참 많이 했었다. 지금은 그때의 결정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플랫폼 팀을 이끌며 나와 팀이 함께 내린 의사결정은 궁극적으로 서비스가 잘 되게 하기 위함임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생각의 범위를 ‘플랫폼 팀’으로 한정짓지 않으려 노력했고, 그 결과 생각의 폭을 ‘프로젝트 자체가 서비스에 잘 전달되는 것’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 물론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여전히 개선할 점이 더 많지만 생각의 범위를 넓힐 수 있었다는 점에서 굳이 달성한 것으로 분류하고 싶다.

달성하지 못한 것 1. 업무와 기술의 균형

베트남에서 1년 동안 합을 맞추었던 동료와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다. 동료는 나에게 나의 장점은 일이 되게끔 하는 사람이라는 점이고, 더불어 단점은 아니지만 함께 공부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해주었다. 이 말을 계속 곱씹어 보며 일이라는 카테고리에서 가장 아쉬운 점에 대해 생각해보니 업무와 기술의 균형을 신경쓰지 못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서비스를 런칭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집중해야만 했었다고 핑계를 대본다. 내년에는 기술적인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애써야겠다. 서비스의 성장에도 이제 반드시 필요한 일이 되었고, 멤버들과 나의 갈증을 해소하기에도 적절한 시기가 되었다.


공부 📝

달성한 것 1. 영어

1년 전, 베트남 삶을 시작하면서 7개월 정도 꾸준히 했던 공부 습관은 온라인 화상 영어였다. 하루에 25분씩 외국인 선생님과 스카이프를 통해 대화하는 일을 일주일에 3번 정도 반복했다. 딱히 계기가 있는 건 아니었고, 한국에서도 갖고 있던 습관이라 그냥 했다. 왜 1년이 아니고 7개월이냐 묻는다면, 7개월 이후부터는 회사에 베트남 멤버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공식 언어가 영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영어로 읽기와 쓰기에는 두려움이 없지만, 나 역시 말하기 앞에서는 영 쫄보가 되는 사람이었다. 영어로 말해야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머리가 하얘지는 그런 기분이랄까. 대학원 공부를 한 덕(?)에 과거 외국인들 앞에서 발표하는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그건 내 영어 말하기 실력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랬던 나에게, 33년 인생 처음으로 영어 말하기가 는 것 같다는 경험을 준 건 ‘업무 공식 언어가 영어’라는 강제성이었다. 여전히 영어 쓰기 속도의 반 정도로 말할 뿐이지만 두려움이 사라졌다는 것, 그리고 한 두시간 정도의 영어 미팅은 이제 어느 정도 소화한다는 것은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역시 나란 인간은 강제성이 부여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분위기를 이어가서 내년에는 더 기똥차게 잘 해내야지.

달성하지 못한 것 1. 기술 공유

새로운 환경에서 1년 동안 경험한 기술들을 많이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베트남이라는 낯선 환경은 생각보다 기회를 잡고 일을 벌이기에 더 어려운 환경이었고, 이곳에서의 삶과 일에 적응하느라 생각만큼 관심을 쏟지 못했다. Medium을 통해 공유한 글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누군가에게 경험한 기술에 대해 공유하지 못해서 많이 아쉽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에는 기술 공유로 한 해를 시작할 수 있도록 이 나라 저 나라의 컨퍼런스에 스피커 신청을 해두었다. 내가 경험한 기술을 스스로도 잘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운동 🧘

달성한 것 1. 매일 운동 하는 습관

아주 오래전의 나도 그리고 지금의 나도 운동하는 첫 번째 목적은 한결같다. ‘먹고 싶은 음식과 술을 걱정 없이 먹기 위함’이다. 어쨌든, 친구도 가족도 하나 없는 베트남에서 매일 운동하는 건 나에게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특별히 아프거나 혹은 여행을 갔을 때를 제외하고 매일 출근 전 조깅을 하는 건 생각만큼 괴롭거나 힘든 일이 아니게 됐다. 팟캐스트 들으면서 땀 흘리며 뛰고 난 후 샤워하는 건 생각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이다. 참고로, 운동할 때 주로 듣는 팟캐스트는 ‘책읽아웃’과 ‘서늘한 마음썰’이다.

달성한 것 2. 다양한 운동

다양하다고 이름 붙이기에는 소박한 정도의 다양함이지만 제대로 재미를 붙인 ‘요가’와 최근 시작한 ‘테니스’는 참 만족스럽다.

생각이 많고 머리가 복잡할 때는 요가를 찾는다. 집중하지 않으면 금방 자세가 흐트러져서 넘어지는 창피함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그 순간만큼은 잡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다. 베트남 호치민이라서 경험할 수 있는 숲속에서의 요가 경험은 정말 큰 덤이다.

테니스는 동료의 권유로 시작했고 한 번 수업을 들었지만 꽤 오래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근거는, 첫 수업부터 칭찬을 많이 받았고(자기애가 강한 편) 생각보다 훨씬 더 활동량이 큰 운동이라 만족감이 매우 컸다. 동료들과 더 자주 땀 흘리며 운동하자 다짐했다.


삶 ☺

달성한 것 1. 베트남 생활 적응

1년 전, 한국을 떠나고 베트남에 올 때는 사실 생각이란 걸 거의 하지 않고 무작정 왔다. 그때는 개인적으로 생각을 많이 하고 싶지 않은 시기였다. 많이 생각하면 아무 결정도 못 내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베트남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시작한 건 이미 베트남에서 얼마 정도 생활을 시작한 이후였다.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깨진 도로와, 그나마 걸을 수 있는 인도에서 바이크에 밀려나는 환경, 손 쉽게(?) 야생 바퀴벌레를 볼 수 있는 로컬 식당, 생각보다 친구 만들기를 어려워하는 내 성격, 물리적으로 주변에 하나 없는 가족과 친구, 정말 모든 게 낯설었고 나를 공격하는 기분이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어쨌든 잘 적응했다. 걸을 수 없는 환경이니 열심히 Grab을 이용해서 걷기에 대한 미련을 버렸고, 가끔은 내 바이크를 직접 끌고 다니기도 하고, 깔끔하고 입맛에 맞는 몇몇 단골 식당도 생겼다. 적어도 베트남 생활이 힘들어서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달성한 것 2.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 시작

베트남에서 만난 한 친구의 역할이 컸다. 스스로도 잊고 있었던 기억을 다시 꺼내고 피하지 않게 해주었다. 나는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의 피해자다. 그 기억을 다시 마주하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스스로 이야기해줄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아직 그 이상의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두렵지만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된 나 스스로에게 박수쳐주고 싶다.

그리고 조금씩 약자의 편에서 공감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조금 더 많이 공감하고 조금 더 행동하는 내가 되길 바란다.

달성하지 못한 것 1. 좋은 관계 맺기

나는 좋은 관계를 맺기에 좋은 사람이 아니다. 관계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상처를 쉽게 받는다. 그래서 필요 이상의 관계는 의도적으로 피하는 사람이 되었다. 조금 더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상대방 역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랐다. 결론적으로 실패했다고 본다. 나는 여전히 마음 쓰기를 두려워하고, 마음을 쓰려고 하는 순간 강한 집착에 사로잡힌다. 쉽게 나아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꾸준히 마음 쓰기에 대해 고민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내 마음대로 어워드 🥇

1. 올해의 영화

하나만 콕 찝기 어려워서 3가지를 선택했다. 왜 선택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전달되리라 생각한다.

  • 캡틴 마블
  • 벌새
  • 결혼 이야기

2. 올해의 책

여성인 나를 대신해 시원하게 하고 싶은 말을 질러준 책, 여성이 미래를 그리는 책, 그저 여성의 삶을 공감해주는 책을 선택했다.

  •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일의 기쁨과 슬픔

3. 올해의 여행

올해는 태국(방콕), 일본(도쿄), 싱가포르, 미국(뉴욕)을 여행했다. 가장 좋았던 여행은 싱가포르. 두 번째 방문으로 과하지 않은 적당한 긴장감이 있었고, 여행하는 동안 구글맵으로 길 찾는 일을 제외하면 폰을 사용하지 않고 그 순간에 집중했다. 베트남 생활과 대비되는 깔끔하고 정돈됨에서 오는 쾌감은 덤. 음식도 쇼핑도 스위트 룸의 호화스러움도 감정도 모든 게 조화로웠다.


마지막으로 문득, 1년 가까이 이 낯선 타지에서 매일 얼굴 보고 같이 생활했던 동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내 장단점을 한 줄씩 적어달라고 정중히(?) 독촉했다. 단점에 집중해서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는데 장점만 보고 히죽히죽, 어쨌든 좋잖아. 해피 뉴 이어!

나는 분명 장점부터 말해달라고 했는데.png
내가 얼마나 낯가리는데.png
나만 친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었어.png
공부할 수 있는 플랫폼 팀 만들게요.png
오래라고 했지만 나랑 꼭 같이 담배피는 동료.png
지금 나 꼰대라고 말한거지.png

Mijeong (Rach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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