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word.

BOSHU No.1 서문


Foreword.

구텐베르크에 의한 인쇄 혁명이후 가장 큰 미디어 산업의 근본이 모바일 혁명과 소셜 네트워크라는 관계의 거미줄을 통해 통째로 바뀌고 있는 시점에서, 갑자기 ‘종이잡지’라는 아날로그식 접근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적어도 본인이 느끼는 바로는) 로컬은 그 변화의 패러다임 가장자리에 있고, 생각보다 요즘 친구들의 대부분이 소셜활동에 그렇게 능통하지도 않으며, 그 안에서 정보의 빈곤과 관계의 부작용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BOSHU’는 보다 익숙한 목소리로 ‘너’가 ‘또 다른 너’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연결과잉(Over connected)의 시대에서는 너도 나도 스스로를 잃어버리기 쉽상이다. 심지어 아직 스스로를 만나보지도 못한 청춘들도 많을 것이다.

엄마가. 대기업이. 사회가. 바라는 그런 ‘너’ 말고, ‘또 다른 너’를 말이다. ‘진짜 너’라고 하진 않겠다. ‘너’는 앞으로 계속 변할것이고, ‘BOSHU’는 ‘너’의 진짜 모습을 만나게 할 자신은 없다. ‘또 다른 너’ 까지면 충분하다.

오노 요코와 존 레논의
롤링 스톤지 커버

1967년에 창간한 [롤링스톤] 매거진은 히피문화와 함께 기성체제에 비판적인 세대의 지지를 받으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되지만, 반항적이고 대다수가 구매력이 없는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으며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이에 [롤링스톤]은 ‘인식과 실체(Perception/Reality)’ 캠페인을 벌이며, 매거진의 한쪽에는 사람들이 흔히 [롤링스톤]에 가지고 있는 막연한 ‘인식’을 표현하고, 맞은편에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강렬한 이미지로 표현하여 대중과 광고주들에게 다시금 열광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로컬의 청춘을 대상으로 하는 ‘BOSHU’의 독자들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롤링스톤] 처럼 대놓고 ‘인식’과 ‘실체’를 비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그 둘 사이의 괴리는 ‘너’도 충분히 느끼고 있을테니까.

물론, 이 ‘독립잡지’는 비틀즈의 멤버였던 존 레논(오노 요코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롤링스톤]의 커버 사진을 촬영한 뒤 4시간후에 극성팬에 의해 갑작스럽게 총기사망을 당함)처럼 어느 순간 돌연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OSHU’는 지역의 청춘들에게 ‘생각거리(things for thought)’를 던지고 싶다. 우리네 청춘들은 참 정신없이 바쁘다.(아니면 잉여거나) 게다가 대부분의 청춘들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건지, 왜 바쁜지조차 모른다. 괴테는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했다. ‘BOSHU’는 로컬의 청춘들에게 바쁜일상 속 잠깐의 생각거리를 통해 느린 휴식을 선사해주고 그 둘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 사이에서 ‘또 다른 너’를 만나고 ‘또 다른 너의 목소리’를 내길 바란다.

* 천영환

대학시절 부모님몰래, 복합문화공간 1986 noname_Cafe(노네임카페)를 담보대출, 신문배달 등의 노력을 통해 공동창업. 나름 후회없는 학창시절을 보내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어머니가 장애인이 되고 이를 인정하지 못하는데서 찾아온 어머니의 심각한 우울증을 함께 견뎌나가며 보다 ‘의미있고 가치있는’ 인생을 살기로 결심하고 사업을 정리.
미국 TED(빌 게이츠, 엘 고어등이 참여하는 지식공유 컨퍼런스)의 로컬 라이센스인 TEDx를 시작으로 NGO활동을 거쳐, 현재 사회적자본 지원센터에서 공익적 시민활동을 지원하며 청춘을 불사지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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