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가 유배당한 신자들에게,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를 읽고


존 쉘비 스퐁은 미국의 성공회 주교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감독’이라는 직책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한국 교회만 다녀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주교는 뭐고 감독은 뭔지 잘 모르겠다만, 중요한 점은 스퐁은 학자도 연구자도 아닌 교회 내부에서 어떤 직책을 맡고 있는 실무가라는 점이다.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입이 아닌 실제 교회 내부에서 이런 논쟁의 주장이 나왔다는 것이니까. 실제로 내 경험에 비춰 보았을 때, (중학교 때까지 다녀본 경험뿐이긴 하지만) 스퐁의 주장을 한국 교회 청년부 성경공부 시간에 함부로 주장했다가는 최악의 경우 마귀에 씌웠다고 핍박받거나, 적어도 손을 꼭 붙들리고 진지한 분위기로 우리의 예수님은 그러실리 없다고 타이름을 받을 것이다.

한국 교회 내부에서 논란의 여지가 될 수 있는 스퐁의 주장을 한 번 나열해 보자. 1. 성경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틀렸는데, 그 이유는 성경은 단지 역사 속의 사람들이 기억에 의존에 기술한 역사책일 뿐이기 때문이다. 2. 과학이 모든 것을 밝혀 낸 현대 사회에서, 하나님은 하늘 위에 있지도 않고 기적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3.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인간이 하나님을 만들어 낸 것일 뿐이다. 4. 예수는 부활했을 리가 없고, 부활했다고 기록된 것은 예수의 생애에 감명받은 후시대의 서술자들이 전승된 신화를 과장해 썼기 때문이다. 등등. 이런 얘기를 일개 신자가 교회에서 말했다가는 맞아 죽기 십상일지언대, 주교님께서 심지어 책으로까지 출판하여 주장한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과학이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사실을 얘기해 주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사회의 다른 모든 양상이 바뀌듯 기독교 역시 바뀌어야 하건만, 기독교가 내재하고 있는 ‘변화에 대한 저항성’은 기독교를 현대사회의 고집불통이자 골칫거리로 만들었다. 우주의 역사가 150억년이라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얘기되고 있으며, 생물의 미소적 특성(DNA)과 거시적 특성(행동동물학)이 한결같이 다윈의 진화론을 완벽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굳이 아담과 하와를 들먹이고 에덴 동산이 몇천년 전에 있었다는 얘기만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독교를 계속해서 폐쇄적이고 말이 안 통하는 집단의 이미지로 몰아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스퐁은 이렇게 표현한다. 기독교의 신자들은 ‘유배당했다’. 마치 고대의 유대인들이 바빌론에 의해 고통당하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신자들은 현대에 의해 유배되었으며, 신자들은 믿음을 버리거나 또는 고집불통인 근본주의자로 남거나 하는 극단적인 선택의 여지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스퐁이 유배당한 신자들에게 제시하는 제 3의 길은 그들 자신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길일 것이다. 그것은 유신론적 하나님을 버리고 무신론적 하나님의 길로 가는 것이다. 내 생각엔 우리나라의 개신교도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기독교도들은 이러한 주장만큼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무신론이라니, 가히 기독교의 근본을 뒤흔드는 것 아닌가? 무신론을 받아들이는 것과 믿음을 버리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글쎄, 나는 사실 이 책 안에서 용어의 교통정리가 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우선 ‘무신론’이라는 용어는 완전히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철저한 무신론자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에 언급되는 스퐁의 스승인 마이클 도널드 고울더는 원래 사제였으나 교회를 나서며 자신을 비공격적 무신론자 (Nonaggressive atheist)라고 주장했는데, 스퐁이 직접 밝혔듯이 그는 스퐁의 스탠스와도 차이가 좀 있다. 무신론이라는 용어를 넓게 정의하면 이러한 비공격적 무신론자까지 포함해도 무방할 것이다. 스퐁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은 인격신으로서의 하나님만을 버린 것일 따름이므로, 내가 생각하는 스퐁의 스탠스에 대한 용어는 ‘범신론’이 아닌가 생각된다. 뭐 용어는 용어일 따름이고 범신론이든 무신론이든간에 기독교도들에게 이러한 무인격적인 여호와를 받아들인다는 것만으로도 신성모독에 가까운 주장일 것이니 뭐 아무렴 어떤가.

나도 사실은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공격적 무신론자의 스탠스에 가까웠으나, 어느 정도 여러 주장들을 수용하게 되면서 마이클 고울더와 같은 비공격적 무신론자의 입장에 서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의 변화된 생각은 이렇다. 어떤 이들에게는 심리적이든 치유적이든 간에 분명히 종교같은 무언가가 필요하다. 종교가 역사적으로 인간 사회와 결합하여 ‘인간성’과 분리될 수 없는 거대한 상징 체계가 된지 2000년이 넘었으므로, 급격한 무신론적 제거 수술은 인간의 집단 정신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정말로 거부해야 할 것은 종교가 가진 폭력성(이슬람 근본주의의 테러리즘과 기독교의 호모포비아적 성향 같은)과 열린 사회를 거부하는 고리타분함(진화론 반대운동)일 뿐이고, 기독교에 그 두 가지 속성을 제거하는 분리수술을 시행하고 난 평화적이고 현명한 종교는 아마 스퐁의 범신론적 기독교와 비슷한 형태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고울더와 스퐁이 하나의 사상적 뿌리에서 나왔듯이 서로 어울리고 화합하면서 열린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변화의 의무는 무신론자들이 아닌 유배당한 종교인들에게 있으므로, 나는 그들에게 촉구한다. 그들 스스로의 손으로 직접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하는 것이 옳다. 누군가가 (리처드 도킨스든, 칼 세이건이든 누구든 간에) 아무리 외부에서 지껄인다고 해도 꿈쩍하지 않을 사람들 아닌가? 물론 변화의 과정은 무척 고통스러울 것이나, 이제껏 변화를 거부한 것은 그들이니 그 고통의 기간은 과거의 잘못된 선택의 기간 만큼이나 더 클 것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내부에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존 쉘비 스퐁의 글을 참고해 보면 어떨까? 물론 이분의 말이 정답이란 얘긴 아니지만, 뭐 어디라고 정답이 있겠는가? 변화는 일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에 엄청난 산사태가 일어나 종교라는 것이 종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내일이라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사보거나, 퀴어 퍼레이드에 구경이라도 가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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