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직도 잘못된 가설 속에 살고 있는가, 「The Nurture Assumption」을 읽고

아이들 (1980년대)

이 책의 저자인 주디스 리치 해리스(Judith Rich Harris)는 미국의 시골에 살던 주부인데 옛날에 박사하다가 짤린 경험이 있으며, 그나마 심리학 교과서를 저술하다가 건강상의 이유(+다른 이유)로 몇년간 쉬기도 했다. 사실 이 할머니가 교과서 저술을 그만두게 된 이유는 증거와 이론이 서로 다름에 이상함을 느껴서였으며, 어느 날 결국 발달심리학의 한 커다란 명제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메타분석 논문 하나를 작성한다. 「Psychological Review」에 낸 이 논문은 전문가들의 견해 뿐 아니라 일반인의 상식까지 뒤엎을 정도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 직후 저술한 대중을 위한 책 「The Nurture Assumption」을 읽은 하버드 대학의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는 이렇게 얘기할 정도였다. “The book will come to be seen as a turning point in the history of psychology.”

「The Nurture Assumption」 — Judith Rich Harris

개인적으로 내가 읽은 과학 서적 가운데 손에 꼽을 정도로 논쟁적인 내용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뜬구름 잡는 이론적 내용도 아니고 실제로 아이를 키우거나 부모님이 꼴보기 싫거나 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무릎을 탁 치면서 “아 이래서 그랬구나” 할 정도로 엄청 실용적인 얘기다. 물론 ‘애를 키울 때는 이렇게 이렇게 하세요’ 같은 보통의 양육서 같은 건 아니다. 오히려 애를 어떻게 키우든 상관 없어요 하는 이야기니까. 실제로 전해 들은 바로는 한국의 발달심리학 교수님도 넌센스라고 할 정도로 패러다임 전환적이고 논쟁적인 내용이라 이 내용 그대로 믿으라고 내가 강요할 건 아니다. 어쨌든 읽어보면 좋을 만한 사람을 추천해 보자면,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에 관심있는 사람 (성공의 심리학 연애의 심리학 이딴 거 좋아하는 사람 말고), 토머스 쿤의 과학 혁명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은 사람,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다.

요약해 보자.

  1. 양육만이 환경이 아니다. — 우리는 환경에 영향을 받아서 성격이 형성된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환경의 요인 중에서도 부모 양육의 요인이 있고 친구들이나 선생님, 선배, 후배의 요인, 심지어 텔레비전, 인터넷 등의 대중 매체 요인도 있다. 이들은 구분될 필요가 있다.
  2. 아이가 부모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모가 아이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 아이를 폭력을 통해서 양육하면 그 아이도 폭력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다는 예시가 있고 많이들 믿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과 통계의 눈을 통해 보면 우리의 비과학적인 믿음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된다. 어쩌면 애초에 폭력을 쓸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성격이 더러운 아이가 태어날 수도 있다. 유전적 영향을 생각 안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부모가 받는 아이의 영향 뿐 아니라 유전자의 영향을 동시에 받은 부모와 아이의 서로간의 싸움일 수도 있게 된다.
  3. 가정의 성격과 사회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 가정에서 만들어지는 성격은 또래집단 내에서의 성격 그리고 성인이 된 후 사회에서의 성격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사회적 인성을 기르게 하려는 가정교육은 불필요하다.
  4. 성격, 사회화, 언어행동을 만드는 요인 중 절반은 유전 — 여기서부터 놀라워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본다. 유전자는 절대적이지만 절반만 절대적이며, 이 이야기는 환경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다음에 있다.
  5. 나머지 절반은 부모가 아니라 또래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다. — 가장 논쟁적인 이야기이며 해리스 가설의 핵심이다. 부모 양육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성격은 가정 안에서만 발현되고, 실제로 우리의 인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회적 성격은 또래집단에 의해서 형성되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성격’이라 부르는 사회적 성격은 부모의 영향을 거의(또는 전혀)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향력 100% 중 유전을 제외한 50% 환경적 영향이 사실 ‘부모의 양육’이 아닌 또래집단의 영향이라는 이야기인 것이다.

‘가정교육’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관념을 대표한다. 우리는 언제나 부모가 가정교육이 잘 되어야 아이가 바르게 큰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사실상 ‘부모의 영향’이라고 생각했던 건 가정교육의 영향이 아닌 유전의 영향이었다. 때리는 부모의 밑에서 폭력적인 아이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때리는 부모로부터 폭력적인 아이가 ‘태어난다’는 말씀이다.

사실이라고 쳐도 발끈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면 부모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도, 예를 들어 가두거나 줘 패면서 키워도 상관없다는 얘기냐? 일단 그 말은 맞다. 부모의 영향이 ‘제로’라는 입장에 있어서는. 다만 그러한 양육 환경이 또래집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가정이 있어야 한다. 엄청나게 심한 폭력 또는 감금을 동반한 학대는 그 나름대로 또래집단의 접촉에 영향력을 행사할 확률이 있다. 사실 여기서 해리스의 말은, 부모가 이혼하든 사망하든 역시나 아이의 성격에 대한 영향은 없다는 것이다. 친구만 잘 만난다면 말이다. 우리는 이혼가정의 자식이나 홀어미의 자식 등에 이상한 편견 (성격이 안 좋을 것이다, 가정교육이 덜 되었을 것이다 등등)이 있는데, 편견에 불과하다. 한 가지 더, 굳이 성격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해도 폭력은 그 자체로 있어서는 안 된다. 그냥 그것은 나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는 (성격 형성이 어떻든 저떻든 간에) 유년 시절의 불행했던 기억을 안고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이 것은 나름대로 나쁘다. 부모는 아이가 어떻게 클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이랑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아이는 어떻게든 잘 자란다. 유년 시절이 좋았든 나빴든.

오히려 부모가 아이에게 영향을 준다는 가설이 위험한 점도 있다. 청소년의 일탈 시에 ‘부모 가정교육’ 운운하는 비판은 매우 부적절하는 것이 해리스의 가설에 추가로 이어지는 논증이다. 이 시점에선 부모는 잘못한 게 없다. 잘못한 거라곤 친구를 잘 사귀라고 아이에게 못한 것 뿐이다. (사실, 아이에게 친구를 가려 사귀라고 하는 것도 어렵다) 부모는 어쩌다 우리 애가 이래 됐을꼬 하면서 죄책감을 가지겠지만,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2017년 현재, 20년이 넘는 시절동안 한국에서는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지도 않았다. (단지 해리스의 후속작 「개성의 탄생」만 번역되었을 뿐인데, 사실 이 책만 읽어도 양육 가설의 대부분의 내용은 파악할 수 있다. 단지 파급력만이 낮을 뿐.)여전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은 아이의 인격 형성에서 부모의 양육에 대한 역할이 지대하다고 대부분 믿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뿐이겠는가? 내가 발달심리학계의 분위기도 모르고 컨퍼런스에 참석해 본 경험도 없어서 잘 모르지만, 구글링을 해 보아도 후속으로 양육 가설에 대한 논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나오지 않는다. 논쟁은 사그라지고 사람들은 여전히 20년 전의 그때로 돌아가게 된 것일까, 아니면 대중과 괴리된 발달심리학계는 해리스의 이론을 대안 가설로 발전시키고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필요한 일은 대중의 인식이며, 그 때문에라도 번역본이 나오길 간절히 바란다. 그 이후에 연구자들의 대중에 대한 소개와 토의, 논쟁 등이 뒤따를 것이다. 해리스가 맞았는지, 양육 가설이 맞았는지 그 뒤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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