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 펌프」를 읽고

괴델의 묘, Princeton, USA

대니얼 데닛의 책이 또 번역되었다고? 우리나라에 벌써 이 아저씨의 책이 번역된 것만 7권이다. (굳이 세어 보자면, 「마음의 진화」, 「이런, 이게 바로 너야」(공저),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 「주문을 깨다」, 「자유는 진화한다」, 「과학과 종교, 양립할 수 있는가」(공저), 그리고 이 책 「직관 펌프」) 컨템포러리 철학자 중에 이 정도로 많은 책이 번역된 사람이 있을까? 한때 열풍이었던 마이클 샌델의 번역된 책이 아홉 권 정도 되는데, 대니얼 데닛은 마이클 센델의 7/9만큼 한국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일까? (절대 그럴 리가 없지!)「주문을 깨다」와 같은 책은 한국에서도 민감한 주제인 종교 비판에 관한 책이니 나름 좀 팔렸다 쳐도, 「자유는 진화한다」나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 같은 책은 이해하기 절대 쉬운 책이 아니다. 샌델의 정의론이나 정치철학 같은 주제는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으니 그렇게 대단한 열풍을 불러일으켰겠지만, 데닛의 물리주의 심리철학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은 한국어 화자 중 과연 얼마나 될까?

Intuition Pumps And Other Tools for Thinking — Daniel Dennett

사실 최근에 많은 변화의 움직임이 있었다. 피터 마이클 스티븐 해커의 「신경과학의 철학」이나 제리 포더의 「마음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와 같은 무시무시한 책도 나온 걸 보면 나의 우려가 쓰잘데기 없는 한국 독서 시장의 과소평가였는지도 모른다. 아마 뇌과학의 시대를 맞이하여 뇌나 인지과학과 관련이 있는 철학 저술서들도 덩달아 묶여서 나온 거 아닐까. 어쨌든 제리 포더나 피터 해커의 책과 함께 대니얼 데닛도 이해하기 만만한 책은 절대 아니니, 책을 사주는 사람들이 몇 권 읽어보다 이내 포기하고 질려서 떨어져 나가는 일이 없길 바란다. 나는 이 주제에 무지무지하게 관심이 있거든!

데닛의 저작을 보면 정말로 끊임없이 계속해서 철학적 주제가 바뀌어 왔다. 데닛은 「content and consciousness」(1986)에서 의미와 내용에 대해, 「The intentional stance」(1987)에서 지향계에 대해,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1992)에서 의식에 대해, 「Darwin’s dangerous idea」(1996)에서 진화에 대해, 「자유는 진화한다」(2003)에서 자유의지에 대해, 「주문을 깨다」(2006)에서 종교에 대해 책을 썼다. 이 다양한 주제들이 결국 물리주의 심리철학으로 묶인다는 것이 신기하다. 이 책 직관 펌프는 새로운 내용이 아니고 지금까지 자신의 주제들을 정리한다는 의미로 쓰여진 듯 위의 모든 주제가 다루어지고 있다. 데닛이 42년생이니 이제 만 73세이다. 뭔가 인생을 정리하는 느낌이 든다……

책머리나 책 소개를 보면 마치 철학의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매우 일반적인 메타철학(이를테면 논리학이나 수사학 같은)을 설명할 것처럼 쓰여져 있지만 전혀 아니다. 그냥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자신의 주제들을 좀 더 풀어 쓴 것 뿐이다. 물론, 내가 생각하기엔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심리철학은 받아 들여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 내용은 아직도 졸라 어렵다. (원래 주제가 졸라 어려운 주제긴 하다. 제리 포더도 하물며 걱정되어 죽겠다고 했을까) 주제는 역시 의미와 내용, 지향계, 의식, 자유의지 등이다. 그 주제들은 좀 더 세밀하게 조각조각 쪼개서 ‘일반적인’ 철학적 사고 전문가가 생각하는 방법을 통해 확실한 개념 정리를 해 주는 스타일로 써 있다.

개론서 스타일이지만 내용을 굳이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의미: 의미가 심리철학에서 어떻게 다루어질 수 있는지 감도 안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의미는 삶의 의미 생명의 의미 그런 게 아니고 시스템이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꽃을 꽃이라 불렀을 때 의미가 생기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음성 레코더나 시각처리가 가능한 로봇이 꽃을 가리키며 “꽃”이라는 소리를 합성해서 출력하면 의미가 생기는가 하는 문제를 다룬다. 그 의미는 안에서 만들어지는가, 밖에서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매우 중요한 철학적 고민을 안겨 준다. 여기서 지향계의 정의가 만들어진다. 언어 문제도 있다. 언어라는 게 의미 생성에 있어서 중요한가? 언어를 모르는 원숭이의 뇌에서도 의미가 정보처리되고 있음은 거의 확실하다. 의미는 김춘수의 꽃보다 훨씬 비언어적인 것 같다.

진화: 진화란 주제가 과학에서 뛰쳐 나오면 어떻게 될까? 진화는 의식이 없이 의미를 만들어 내는 기제다. 물론 DNA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보를 진화시키는 정보 전달 ‘물체’를 DNA만 알고 있다. 진화를 철학에서 다루기 위해 좀 더 일반적인 정보 전달 물체까지 포함한다. DNA만이 아니라 밈 같은 복제가능한 가상의 정보 전달 물체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때로는 물체가 아닐 수도 있다. 사이버 가상 공간에서 작동하는 비트라도 상관 없다. 어쨌든 진화를 작동하게 하는 기제가 작동되고 나면 그 즉시 의미는 생성된다. 요는, 이해 없는 능력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의식: 의미에서 파생되는 또 하나의 철학적 주제. 의식을 가진 자가 부르는 “꽃”과 로봇이 출력하는 “꽃”의 의미에 대한 문제가 있다. 나는 데닛의 의식 이론이 현재까지는 어느 누구의 의식 이론보다 가장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고 짐작한다. 우리는 의식이 ‘쪼갤 수 없는 그 무언가’라고 생각하고 내 머릿속에 누군가 존재해 내 생각을 대신 해준다(이 누군가를 과학에서는 비꼬는 의미로 ‘호문쿨루스’라고 부른다)고 생각하지만 데닛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의식은 부분부분으로 쪼갤 수 있고, 또 그 부분들은 심지어 동시에 작동하지도 않는다.

자유의지: 물론, 너무너무 당연하게도 물리주의적 세계에서는 나의 ‘자유의지적인’(다른 말로 하면, 물리법칙에 지배되지 않는) 뉴런의 나의 사지를 움직이게 하지 않는다. 어떤 철학적 논증을 펼쳐도 자유의지는 구제될 방법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의지 이론이 산산이 무너지는 장면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절망하고 있다. 우리는 재판에서 범죄자를 처벌할 수조차 없다. 모든 것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데닛의 이론은 다른 방식으로 자유의지를 극적으로 되살린다.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 해도, 우리의 미래에 A의 대안인 B를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결국 우리가 예정되어 있는 A를 선택했다 하더라도, 자유의지는 있는 것이다. 말장난처럼 들리지만 어쨌든 정하기 나름 아닌가?

자세한 내용은 각 주제를 다룬 각각의 책의 서평을 쓸 기회가 있을 때 더 써 보면 좋을 것이고, 지금은 일단 책의 원래 목적인 ‘직관을 펌프질하는’ 역할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좀 얘기해 볼까 한다. 우리가 직관이나, 좀 더 국내에서 통하는 주제인 ‘창의성’ 따위에 대해 펌프질 비스무레한 것을 하려고 할 때는 항상 하는 짓거리들이 있다. 예를 들어 브레인스토밍, 1만 시간의 법칙, 카리스마 리더십, 스티브 잡스 같은 것 말이다. 자유의지의 철학적 논쟁 같은 걸 알고 또 그걸 토대로 직관이 펌프질된다고 해서 그게 내가 다니는 회사 실적에 뭔 영향이 있고 또 내 연봉엔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우리는 항상 너무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것만을 추구한다만, 그렇다면 데닛의 직관 펌프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내 생각에 책의 제목이나 방향성이 좀 잘못 설정된 것 같다. 자기계발을 이루고 싶은 사람이 이 책을 잘못 구매해서 데닛의 철학에 흠뻑 빠졌으면 좋겠다만, 쉽지 않은 일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