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덕트 디자인의 역사 (4) — 인지혁명 또는 성선택 진화

Singapore

잠깐, 내가 뭐라고 했지? 미술에 노력이 별로 들지 않는다고? 댄 애리얼리는 ⟪부의 감각⟫에서, 우리는 언제나 기회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돈을 쓰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기회비용이란, 우리의 몸이 두 가지 행위를 동시에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를 포기할 때 발생하는 비용이다. 기회비용이란 측면에서 보자면 미술은 정말로 비싼 행위이다. 동굴 안에서 그림을 그린 최초의 인간은 그 시간을 사냥이나 농사를 하기 위한 도구를 만들지 않음으로써 손해보는 식량을 비용으로 지불하는 것이다. 돌로 만드는 주먹도끼는 불을 일으키게 해 주거나, 동물을 사냥하게 해 주거나, 나무를 할 수 있게 해 주거나, 다른 도구를 만들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그는 은신처를 만드는 기회비용도 포기하였다. 인공물은 동굴보다도 더 따뜻하고, 비바람을 피하게 해 주며, 아늑하고 쾌적한 잠자리를 보장해 준다. 그런데 조각 작품은 어떤 효용이 있는가? 글쎄, 그것으로 토끼의 머리를 내리칠 수는 있지만 그럴 바엔 그냥 돌멩이가 낫다. 그리고 사실 300만 년 전부터 효율적으로 개발된 주먹도끼가 있지 않은가? 동굴 벽화는 어떤가? 이것이야말로 정말 불필요함의 끝판왕이다. 토끼의 머리를 내리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가성비 똥망의 행위인 것이다.

예술의 이러한 성질 때문에 예술이 늦게 피어났을까? 도구와 은신처, 불의 사용 등 매우 유용하고 생존에 도움이 되는 행위들은 그 유용성으로 인해 오래 전부터 개발될 필요성을 느꼈고 개발 된 후에도 계속해서 쓰이고 또 발전되어 왔으나, 미술은 그 쓸모없음에 비해 들이는 에너지가 크기 때문에 초기 호모 파베르는 미술 활동을 하느니 차라리 유용한 도구를 만드는 활동을 하는 게 나았을 수도 있었다. 만약 그 가설이 맞다면, 아마 미술이 등장한 시기는 도구로 인한 생산성이 높아져 잉여 시간이 등장한 시기라고 설명될 것이다.

미술의 잉여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미술 행위를 한다는 사실은 설명이 필요해 보였고, 많은 학자들이 설명을 부여하려고 시도하였다. 철학과 과학 분야에서 정말로 다양하고 다채로운 시도들이 있었으며, 나는 이중 두 가지의 가설을 소개하려고 한다. 나의 전공 분야는 심리학과 과학 분야에 가까우므로, 구조주의 인류학이나 포스트모던 철학 등지에서 답을 구하려고 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쪽 분야에서도 나름의 설명을 시도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설명이 충분히 성공적이냐 그렇지 않느냐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맡기겠다. 내가 인용하려고 하는 분야는 진화심리학에 가깝고, 이 분야 역시 꾸준히 논란이 있어 왔던 분야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어떤 방법론을 지지하려는 것은 아니고, 단지 이러한 설명도 있고 저러한 설명도 있음을 넌지시 얘기하려는 것 뿐이다. 여러 설명 중 정답은 하나 이상 있을 것이고, 나는 정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여튼 정답 자체가 있다는 사실은 나와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어떤 가설이 정답이든간에 앞으로의 논지에 큰 장애는 없을 것인데, 왜냐하면 인간이 미술을 한다는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의 이론을 소개한다. 하나는 유발 하라리가 그의 책 ⟪사피엔스⟫에서 밝힌 ‘인지혁명’ 이론이고, 또 하나는 제레미 밀러가 ⟪연애⟫(Mating Mind)라는 책에서 다윈을 인용한 ‘성선택’ 이론이다. 두 이론은 진화심리학적 배경에서 태어났지만 서로 상충되는 논지 전개가 보여서 서로 양립할 수는 없는 운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쪽 하나에는 지지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인지혁명: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인지혁명’ 이론이란 유발 하라리의 인류 발전 혁명 3단계 이론 중 하나이다. 인지 혁명은 그 중 첫번째로, 약 7만년 전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관심이 가는 사람들을 위해, 두 번째는 12,000년 전 농업 혁명이고, 마지막은 5백년 전 과학 혁명이다.) 정확히 말하면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까지 서서히 일어났다고 하는데, 7만 년이든 3만년이든 우리가 논의했던 도구의 사용(340만 년~250만 년 전)과 불피우기의 발명(70만 년~12만 년 전), 건축의 발명(대략 40만 년 전)보다는 훨씬 최근이고, 최초의 미술(4만 년 전)에 가깝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관찰할 수 있는 사실만 보자면, 그 당시의 호모 사피엔스 (바로 우리)는 아프리카에 있었는데, 매우 작은 소규모 집단이었다. 오히려 그당시 호모 파베르의 대세는 아프리카에 처박혀 있던 호모 사피엔스 집단보다는 유럽에 살고 있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흔히 말하는 네안데르탈인)나 동아시아에 살고 있는 호모 에렉투스였다. 인지 혁명은 네안데르탈인이나 호모 에렉투스에게는 미안하게도 호모 사피엔스에게만 일어났으며, 그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를 뛰쳐 나와 유럽을 정복했다(45,000년 전). 정복의 와중에 네안데르탈인을 멸망시켰느냐, 아니면 어느 정도는 교배로 섞였느냐는 학계의 큰 논쟁점이었는데, 최근에는 네안데르탈인과 일부 교배하였다는 설이 대세로 확립된 듯하다.(음…그러니까,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이랑…말하자면 이종교배를 했다는 이야기다.) 이에 따르면,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 순종은 아닌 셈이다. 또한 사피엔스는 동아시아까지 이르렀는데, 역시 원주민인 호모 에렉투스는 호모 사피엔스에게 정복되고 ‘교배’되었다(6만 년 전).

즉 ‘관찰할 수 있는 사실만 보자면’, 인지 혁명이란 아프리카에 짱박혀 살던 호모 사피엔스가 적은 수의 인구를 가지고도 용감하게도 공격적인 확장과 이종간의 교배를 할 수 있게 한 사고방식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사고방식의 전환이라면 무엇을 뜻할까? 호모 사피엔스가 2박 3일 마다가스카르 섬 워크샵이라도 다녀와 새로운 사고의 전환을 달성하기라도 한 것일까? 물론 그런 것은 아니다. 7만~3만 년 전의 기간은 아무리 짧은 시대적 변화라지만 그것도 수만 수십만 세대의 태어남과 이어짐으로 이루어진 기간이며, 이 변화는 진화론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과연 도대체 어떤 진화가 호모 사피엔스의 머리속에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유발 하라리도 정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잘 모른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이론은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가 사피엔스의 뇌의 내부 배선을 바꿨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전에 없던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며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지 혁명에 의해 언어로 서로의 생각을 교환할 수 있게 된 호모 사피엔스는 미술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 두 가지 행위는 하나의 핵심적인 특성으로 인해 발생했다. 그것은 바로 ‘허구를 말하는 능력’이다.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허구란 단순한 거짓말 정도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구성원들이 집단적으로 무엇인가를 믿게 할 수 있는 상상과 상징의 체계이다. 예를 들어, ‘사자는 우리 종족의 수호령이다’라고 말하고 모든 사회적 구성원들이 그것에 대해 동의하고 진심으로 믿게 만드는 체계이다. 이 체계는 언어와 미술의 탄생에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종교, 신, 전설 등의 개념을 탄생시키는 데도 영향을 주었음이 틀림없다.

그것이 바로 최초의 동굴 그림인 쇼베 벽화와 최초의 조각인 사자 인간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쇼베 벽화의 소 그림은 진짜 소는 아니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머리 속에저 재배선된 사고방식의 진화로 인해, 벽에 그려진 얼룩이 아닌 ‘소의 상징’이라고 믿게 된다. 사자 인간 또한 이상하게 만들어진 나무 조각이 아니라, 우리 부족의 수호령인 사자를 나타낸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

이 이론의 약점은 사실 뇌의 내부 배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는 게 문제라기보단, ‘왜’ 그런 변화가 일어났는지 모른다는 게 문제다.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 또한 왜 살아남았는지도 설명되어야 한다.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호모 사피엔스로서는 너무 성공적인 진화였기 때문에, 분명히 필연적인 무언가는 설명되어야 한다.

성선택 이론: 제프리 밀러의 ⟪연애⟫

운동을 열심히 해서 탄탄한 근육을 만드는 것은 좋지만, 약물을 바탕으로 과도한 근육을 만드는 것도 문제가 된다. 과도한 근육은 분명 생활상에 도움이 되는 점도 있겠지만, 실전성(길거리 싸움이나 근지구력을 요하는 오랜 노동)에 있어서는 적당한 근육보다 떨어진다는 것이 알음알음 알려져 있다. 그런데 대체 왜 인터넷 커뮤니티의 헬스갤러리 등지에서는 보기에도 불편하고 살기에도 불편한 ‘풍근’을 키우는 것일까? 이는 찰스 다윈이 생각했던 ‘공작새의 꼬리’와도 관계가 있다.

공작새의 꼬리를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만, ‘살기 불편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공작새의 꼬리가 바로 근육돼지들의 ‘과도한 근육’과도 일맥상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다윈의 ⟪인류의 유래와 성선택⟫을 읽어볼 만 하다. 공작새의 거대하고 다채로운 꼬리는 실제로 포식자에게 눈에 잘 띄어 좋은 사냥감의 목표가 된다. 그런데 공작새의 꼬리 같은 형태가 어떻게 진화하였는지가 찰스 다윈의 궁금증이었다. 당시의 다윈은 ⟪종의 기원⟫을 통해 진화론, 즉 ‘자연선택 이론’을 정립한 상태였는데, 공작새의 꼬리의 예시는 자연선택 이론으로 설명될 수 없었다. 눈에 띄는 꼬리 때문에 사냥당해 살아남지 못한 공작새는 절멸하고 자연스럽게 눈에 덜 띄는 꼬리를 가지진 공작새가 진화할 것이다.

다윈이 또 다른 책 ⟪인류의 유래와 성선택⟫을 집필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공작새의 꼬리는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과도하게 아름답고 눈에 띄게 진화하였는데, 유전자의 번영을 위해 ‘성’은 매우매우, 때로는 생존보다도 더 중요하다. 때로는 암컷과 번식을 하기 위해 목숨까지 포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성선택 이론이며, 성선택은 자연선택과 함께 찰스 다윈의 진화론 양대 이론으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제프리 밀러는 호모 사피엔스의 지능, 언어, 예술이 생존을 위한, 즉 자연선택적 진화가 아닌 번식을 위한, 즉 성선택적 진화로 생겼다고 주장했다. 남성이 여성을 꼬시기 위한 로맨틱한 말들, 유머, 똑똑함, 그리고 아름다운 것들을 그리고 깎기 위한 손재주가 여성에게 매력으로 다가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작새의 꼬리 그리고 근육돼지와는 반대로, 이 기제는 여성이 남성을 꼬시기 위한 기제로도 작용되었다.) 성선택에 따르면,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아까 말했던 특유의 쓸모없음 때문에 오히려 더 상대 성에게 더 선택되는 경향이 있었다. 왜냐하면 어떤 호모 사피엔스가 도구를 만들거나 농사, 사냥을 해야만 하는 시간에 쓸데없는 그림을 그리거나 나무 조각으로 하등 쓸데없는 조각품을 만들고 있다면, 그것은 곧 그 사람이 창고에 이미 먹을 것이 그득 쌓여 있어서 먹고살 걱정을 별로 안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인지 혁명 이론과도 비슷하게) 예술적 상징 체계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여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지능이 높고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속임수나 기타 사회적 위협을 잘 회피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였다. 현대 사회에서 그림 좀 잘 그린다고 사회성이 뛰어나다거나 하지는 않으므로 이 이론에도 약점이 있어 보이지만, 그 당시 사회는 그렇게 분업화가 세밀하게 되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어쨌든 그림을 최초로 그릴 정도의 지능이면 정말로 똑똑하고 또 여유로운 삶을 살았을 것이며 이성에게 유머러스하고 매력적인 사람이었음을 증명해 주었을 것이다.

증거는 있는가? 성선택 이론에 따르면 이 증거는 250만 년 전에 발견되는 돌도끼에까지 이어진다. 주먹도끼는 호모 파베르가 사실상 최초로 만들어 낸 ‘미술품’이라는 주장이다. 머렉 콘과 스티븐 미슨의 연구에 의하면, 250만 년 전의 주먹도끼는 기능적으로 쓸모 없는 좌우대칭의 형태가 발견된다. 왜 호모 파베르는 주먹도끼에 ‘좌우대칭’이라는 미적 아름다움을 추구했을까? 주먹도끼에 대한 이야기는 더 있다. 주먹도끼의 발견은 250만년 전에 시작되어 20만 년 전에까지 이어지는데, 어떤 주먹도끼는 사용하기 힘들 정도로 큰 것도 있었고 어떤 것들은 사용하기 의미없을 정도로 작은 것도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많은 주먹도끼들이 사용한 흔적이 없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콘과 미슨은 주먹도끼가 ‘도구’보다는 ‘장식품’으로서의 기능을 꽤 많이 담당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 장식품이란, 상대 이성에게 ‘나는 이렇게 손재주가 뛰어나고 이런 쓸모없는 것들을 만들 정도로 먹고살 걱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미적 감각을 토대로 당신에게 멋진 취향과 센스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나타내어 주는 지표라는 뜻이다.

증거는 이것 뿐만이 아니다. 5만 년 전의 호주엔 원주민이 바위에 그림을 그렸다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3만 5천 년 전 최초라고 일컬어졌던 쇼베 동굴 벽화보다도 빠르다니, 어떻게 된 것일까? 제프리 밀러는 이것이 유럽중심주의에 따른 주장이라고 말했다.) 10만년 전에는 아프리카에서 붉은 흙으로 몸에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4만 년 전이 미술의 시작이라는 관점은 제프리 밀러의 ‘성선택 이론’에 의하면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250만 년 전의 주먹도끼에서부터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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