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내어 읽을 것 part.1
“왜 마법사들은 소리내어 주문을 영창하는 걸까?”
네 번째 수능을 망치고 고사장에 나오는 순간, 나는 죽기로 결심했다. 혼자서 곱게 죽을 생각은 없었다. 집에서 갈비조림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어머니가 있다면 죄책감이라도 느끼겠지만 이미 나는 애미도 애비도 없는 혈혈단신 천애고아였다.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너 이리 와, 이 개같은 자식아.”
나는 교육부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자의 머리탱이를 끄집고 아파트 꼭대기까지 올라왔다. 철저한 보안을 자랑한다는 기본 120평형 아파트 경비도 다년간의 알바로 다져진 나의 짱개 연기를 간파해내진 못했다. 나는 온라인에 공개되어있는 고위 관리직 정보로 손쉽게 장관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
땡큐, 전자정부!
“왜, 왜 이러는 거야 학생…? 아직 학생은 살아갈 시간이 많아…!
그 와중에도 영감탱이는 투덜투덜 거리기에 나는 그의 입에 양말을 쑤셔넣었다.
“한 번만 더 주둥아리 놀리면 니 아가리에 쳐박힌 임플란트를 하나 하나 뽑아버린 다음에 죽여버릴 거니까, 입 닥치고 있어. 응? 조용히 있으면 살 수 있냐고? 아니지 그게. 덜 아프게 죽인다고. 고마운 줄 아셔야지.”
전날 미리 들어와서 뜯어놓은 옥상문으로 나갔다. 즐비하게 늘어선 냉각탑에서 울려퍼지는 굉음으로 가득하다.
“어이 아저씨.”
나는 영감탱이의 양 팔을 등뒤로 돌려서 케이블 타이로 묶었다.
“내가 댁에게 별 유감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야. 알지?”
“읍… 으읍…”
“사는 게 다 그런 거니까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거 뭐랄까, 응, 교통사고라도 당했다고 생각해. 안그래도 오늘 집에서 안 나오면 내일 댁이 출근할 때 지게차로 밀어버리려고 했거든. 그러니까 그냥 오늘내일 죽을 팔자였다고 생각해. 그러면 이따 보자구.”
준비해 둔 경사로를 따라 그를 먼저 난간 위로 떠밀어서 떨어뜨렸다. 밑에서 밀어내느라 지쳐서 직접 보진 못했지만 별다른 비명소리나 파열음은 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녹지공간이 많기로 소문난 아파트 단지다. 아마 밑에 있는 나무 위에라도 떨어졌나보다.
곧 이어서 경사로를 오르던 나는, 순간 현기증에 주저앉았다. 가뜩이나 빈곤한 체력이 삼수를 하느라 방전이 되었다.
‘하필 이런 때에…’
죽는 것도 의지가 따라주지 않는다니.
웃기지 마라.
나는 팔꿈치가 까지든지 말든지 엉금엉금 기어올랐다. 그리고ㅡ아까 영감탱이를 밀었던 것과 마찬가지로ㅡ별 망설임 없이 난간 밖으로 몸을 던졌다.
몸이 위아래가 떨어지면서 자유낙하를 시작한다. 저멀리 보이는 하늘은 드럽게도 맑았다.
후우…
조까튼 인생 이렇게 뒤지는구나.
영원히 끝나지 않는 자이로드롭의 부유감도 어느 순간 끝났다.
머가리 박살나는 고통조차 들지 않았다.
이렇게 안 아플 줄 알았으면 진작에 뒤질걸. 이것이 영원한 안식인가. 근데 죽고 나서도 영혼은 있는 거였던가. 뇌가 없는데 어떻게 사고를 할 수 있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죽은 게 아니었다.
눈을 떠 보니, 바다가 보이는 들판이었다.
소리내어 읽을 것
Rogia
“…이상이, 제가 이 세계에 오게 된 사유입니다.”
그녀ㅡ시티 교수는 발표를 마치고 고개를 들었다.
지금 그녀가 서 있는 곳은 강단 위.
나를 포함한 백 오십 명의 마법학부 학생들이 빼곡히 앉아 있는 계단식 강의실에서, 그녀는 유일하게 먹빛 머리카락을 가진 인간이었다. 보기 드문 고동빛 눈동자가 비스듬하게 학생들을 훑었다.
“질문 있으신 분?”
턱 끝과 손목 끝까지 찰싹 달라붙어 감싸는 자흑빛 블라우스 차림인 그녀는 이 더운 공간에서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본국에서는 귀족의 빛이라 칭송받는 바이올렛 톤으로 꾸며진 의복은 이 수도에서도 보기 드문 이국적인 디자인이다. 나즈막한 그녀의 목소리에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프로페서 시티. ‘수능’이란 게 뭔가요?”
“고등교육과정을 밟기 위해 일 년에 한 번 치루는 테스트입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줄임말이고, 음, 요컨대 여러분이 아카데미에 들어올 때의 시험을 말하는 거죠. 이 곳과 다른 점이라면 전국에서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동시에 진행됩니다.”
그녀의 말에 낮은 탄식음이 들린다. 이 세계에서 아카데미는 삼학기제로 진행되고 입학 시험은 매 학기마다 치뤄진다. 거기에 각 아카데미마다 시험일자는 다르다.
“제가 있던 세계에서는 인서울을 하려면 수능 성적이 높아야 했거든요. 그 안에서도 더 좋은 학교, 그 중에서도 더 좋은 학과에 들어가려면 정말로 만점에 가까운 성적이 나와야 했습니다. 저는 그걸 실패했었지요.”
“프로페서 시티. 인서울을 한다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인(in-)은 ‘어딘가에 들어가다’란 접두사입니다. 서울은 제가 살던 국가의 수도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죠. 인서울은 ‘서울에 들어가다’, 즉 수도 내에 위치한 고등교육법을 준수하는 기관에 진학한다는 의미입니다.”
“아 그럼 프로페서 시티, 실례되는 질문입니다만 프로페서는 수능에서 어느 정도였습니까.”
“실례인 줄 알면 묻지 마시죠.”
그녀의 새침한 말투에 자그마한 웃음꽃이 활짝 핀다.
작년부터 아카데미 신입 교수로 들어온 그녀ㅡ시티 교수는 학점을 너그럽게 주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는 손에 꼽을 만큼 극소수인 ‘외계인’이다.
사실 아직 이렇다 할 학문적 성취를 거두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젊은 나이에 신입 교수가 된 건 외계에서 온 탓도 있을 것이다.
이런 류의 소문도 자자하다.
“그렇지만 가까이에서 보니까 더 예뻐보인다, 그치?”
“시끄러워.”
옆에서 시시덕대는 룸메이트를 무시하고 나는 손을 들었다. 강의실 곳곳에 손이 높게 들려 있다. 그 중에서 운 좋게도 그녀는 나를 지목했다.
“프로페서 시티.”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지목된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혹시 그 코스프레, 호무라ㅡ”
“프흡!”
내 말이 끝나기 전에 그녀는 혼자 사레가 들렸다. 한참을 콜록거리던 그녀는 “시간이 다 되었으니 끝내겠습니다. 다음 주 부터는 수업 교재 가져오세요.”라 말하고는 급하게 마무리 멘트를 내뱉었다.
“…그리고 방금 질문한 학생. 못 끝마친 질의응답을 해드릴 테니 교수실로 오세요. 방과 후에 혼자서.”
그녀의 말에 강의실이 살짝 술렁인다. 아마 교수는 ‘학생을 호출하는 위엄’이라 생각했는지 가슴을 살짝 편다. 그보다는 외계인의 호출을 받은 나를 부러워하는 질투의 파도가 아니었을까.
“네. 알겠습니다.”
아무렴 어때. 나는 군말 없이 대답했다.
*
이곳은 라플라스 제국의 수도 ‘번리’에서도 최외곽지역에 위치한 번리 제1 아카데미.
‘1’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듯, 이 주위에서 가장 높은 입학 성적을 요구하는 곳이다. 본 아카데미의 교복만 입고 있어도 주위 상가에서는 ‘공부 좀 하는 아이들’이라며 아껴준다. 이런 학교에 내가 다닌다.
응, 여러분이 생각하는 대로다.
나는 지금 내 자랑을 하고 있다.
똑똑.
교수실 앞에 선 나는 정중하게 노크 두 번을 하였다. 안에서의 대답은 없었지만 나는 “실례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막무가내로 들어갔다.
시티 교수는 제1 아카데미에서도 최연소 교수를 맡고 있는 여자다. 분명 외계에서 온 덕은 있겠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출신만으로 낙하산 인사를 할 만큼 이곳이 만만한 학교는 아니다.
겉보기에는 허술해 보여도 분명히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교수실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와, 아와와와, 잠시만요!”
작은 비명과 함께 우당탕, 책이 무너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녀의 요청대로 잠시만 기다렸다가, 다시 방문을 힘껏 밀었다.
어차피 무너진 책탑의 잔해물이 처참하게 나뒹굴고 있다. 약간 퀴퀴한 냄새가 풍기지만, 낡은 책에서 풍기는 오래된 종이냄새는 이내 열려진 창문에서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에 희석된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허리까지 쌓일 정도다.
“저… 제가 뭔가 커다란 실수를 저지른 것 같은데.”
“아뇨, 괜찮아요. 링크를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봐요.”
바로 저자세로 나오는 나를 보며 싱긋 웃더니, 시티 교수는 손가락을 튕겼다. 허공에 떠오른 스크롤에는 이니셜 별로 색인이 정리되어 있다.
“이 방의 모든 책과 링크로 이어져 있어요. 이 교수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가장 먼저 한 마법이죠. 이렇게 책 이름을 터치하면…”
톡, 하고 교수의 손끝이 살짝 스크롤에 닿자, 책무더기 깊숙한 어딘가로 파란 빛줄기가 향한다.
“학생도 어디서 많이 본 거죠?”
“위키 링크네요.”
나는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인터넷의 하이퍼텍스트 구조를 마법 논리로 적용하다니, 이건 정말 대단하군요…. 아, 여기에도 물론 비슷한 마법 논리식은 여럿 봤었지만 초보 학생이 따라하기는 어려웠거든요. 교수님이 고안하신 방법은 꽤나 직관적인 것 같네요.”
“그쵸? 그렇죠! 안 그래도 이번 수업 진도에 이걸ㅡ”
딱 봐도 얼굴에 ‘꽃이 피었다’라 생각할 만큼 확 밝아졌던 교수는, 급하게 표정을 정리하고 큼큼 헛기침을 하였다.
“것보다 어… 어떻게 아는 거죠? 아니, 그게 아니라…”
“저도 수능 망치고 뛰어내렸거든요.”
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지갑에는, 내가 아직도 한국에서 살던 때의 신분증이 있었다.
“자요. 여기 민증.”
그걸 보던 그녀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후우… 내가 연상이로군…….”
“지금 그게 중요해요? 어차피 삼수생이었으면서.”
것보다 지금 바로 말투 바뀐 거 아니야?
“아, 아무튼.” 그녀는 말했다. “오랜만에 고향 사람을 만난 건 그다지 반갑지 않군. 넌 반가울지 몰라도.”
“너무해…!”
나는 진짜로 반가웠는데!
서운하다 못해 살짝 눈물이 나려는 나에게 그녀는 무언가를 내밀었다.
“수능 망쳤다면서? 그럼 여기서도 어차피 공부도 못 할 거잖아? 그게 있으면 교무관에 드나들 수 있다고. 타향살이가 서럽다거나 모르는 게 있다거나 하면 언제든지 이 교수실에 찾아와. 뭐어, 나는 딱히 널 찾아가야만 할 만큼 외롭진 않으니까. 오려면 네가 오라고. 근데 신분증 말고 여기서 네 이름은 어떻게 되니?“
“나단입니다. 정확히는 조나단.”
“음? 뭐야. 신분증이랑 같은 이름이네.”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 보면 교수님은 다른 이름이신가 보군요. 시… 풉, 시티라니……”
이 세계가 중세풍 판타지인 것을 고려해도 상당히 도시적인 이름이다.
“것보다 그 복장은 뭐졐ㅋㅋㅋㅋㅋ완전 호무라잖아욬ㅋㅋㅋㅋㅋㅋ”
“시끄러워!! 우연의 일치라고! 그런 CPL 따위 모른다고!”
“아. 지금 뭐라고 하셨죠…?”
나는 안경을 고쳐쓰는 자세를 취했다.
“CPL이라, 흐음. 그런 고급 어휘를 사용하시다니, 이거 확신범 아닙니까?”
“나가! 나가버려! 죽어!”
교수는 파랗고 빨간 빛이 이리저리 이어지는 책을 마구 집어던졌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한 권이라도 제대로 머리에 맞았다가는 큰 상처를 입을 수 있었다.
이 세계는 중세풍.
항생제가 아직 갖추어지지 않은 세계다.
사소한 상처로 낯선 이방의 세균이 치명적인 감염을 만들 가능성도 있다.
“그럼 먼저 나가 보겠습니다.”
나는 등 뒤에서 “아아ㅡ… 죽고 싶어……”란 혼잣말을 흘려들으며 급히 교수실에서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