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주의! <1Q84>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는 나의 두번째 하루키 책이다. 첫번째 책은 <1Q84> 였는데 스토리가 무척 궁금하게 진행되었고, 총 3권인데, 1, 2권이 나온지 1년 뒤에 3권이 출간되었기 때문에 오래 기다린 만큼 큰 기대를 갖고 읽었었다. 하지만 3권에서 뎅고와 후카에리가 관계를 갖는 장면이 묘사되고, 성폭행 경험이 있는 17살 소녀가 주도적으로, 난 아직 월경을 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장면은 충격적이었고, 소름끼쳤고, 실망스러웠다. 아무리 소설에서 필요한 은유적인 장면이라고 해도 나는 그 장면에 작가의 남성적 성적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고 확신할 수 밖에 없었다. 좋아하는 소설인 <냉정과 열정사이>의 작가 둘이 다시 만나 쓴 <좌안,우안>을 읽을 때에도 츠지 히토나리의 너무나 남성 중심적인 성적 세계관에 거부감이 들어서 읽기를 멈췄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리 유명한 작가라도 일본 남자작가의 작품은 나와 정말 맞지 않는구나라는 결론을 내렸고, 이후 하루키의 책은 거들떠 보지도 않게 되었었다.
그런데 7년이 지난의 지금, 내가 좋아하는 팟캐스트 <지대넓얕>의 패널 김도인이 하루키 팬이라, 하루키의 <양을 쫒는 모험>을 소개하고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낭독해주기도 해서 대체 왜 사람들이 하루키를 좋아하는지 궁금해졌는데, 마침 트레바리 6월 도서로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가 선정되어 다시 하루키를 만나볼 기회가 찾아와 주었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는 에세이 형식이라, 소설보다 하루키가 인간적으로 어떠한 사람인지를 더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느낀 하루키는 소박하고, 호기심 많고, 감성적이고, 내향적인 사람인 동시에 남성중심적 사고가 당연한 시대를 살아온 그 시대 아저씨다. 내용 중 성욕을 기부하는 헌욕센터에는 남자가 아니라 “예쁜” 간호사 누나가 있고, 여행 시 헌 속옷을 들고 가 입고 버리는 건 매우 편한데, 신혼여행을 가는 “여자”는 하면 안되고, 스무살 전후 여성들의 애욕의 뿌리를 자르면 그 사람들의 성적자유가 아닌 “출산과 인구문제”가 생길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이러한 1949년에 일본에서 태어난 보편적인 남자의 사고방식 이 외에도, 심심할 때 “나름대로" 같은 러브호텔 이름을 생각하거나, 고무 잠수복의 귀찮음을 섹스로 연결시키는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하루키의 성적 사고방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씁쓸했다.
하지만 이 책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왜 하루키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일상을 이야기할 때 느껴지는 소박함과 솔직함은 부인할 수 없는 하루키라는 사람의 매력이었고, 에세이에 공유한 좋아하는 구절들 - “가을을 툭툭차며 걸어갔다", “Think of nothing things, think of wind” - 은 내 마음에도 꼭 들만큼 감성적이었다.
특정 작가를 좋아하는 일은 사람을 사귀는 일과 비슷한 것 같다. 모두가 좋아하는 매우 괜찮은 사람임에도 나와 맞지 않는 한 부분이 있어서 친해질 수 없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비난하고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어떤 한가지 면이 좋아서 그 사람을 좋아하고 친해지기도 한다. 그러면 하루키의 좋은 면들을 다시 발견한 이 시점에 나는 다시 하루키를 좋아할 수 있을까? 글쎄다. 지금은 이 작가를 인간적으로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좀 더 시간이 지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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