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케루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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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스크립트는 스스로를 드러내며 순수하다
그리고 그 생기에 모두가 가슴 벅차한다.

『길 위에서』라는 작품에 대해 트루먼 카포트가 한 말은 유명하다. “그건 글을 쓴 게 아닙니다. 그냥 타이핑 한 거죠.” 이에 잭 케루악은 농담조로 말했다. “성령의 말을 들으면서 타이핑 한 거죠. 퇴고가 필요 없는 거에요.” 케루악에 대해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충동적이고 즉흥적이며, 줄거리나 글의 종류, 글의 구조와 형식을 신경쓰지 않고 작품을 빠르게 쓴다는 것인데, 이런 이미지가 생긴 이유는 어느 정도는 케루악 자신 때문이다. 1968년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작가는 자기가 쓴 글을 퇴고하지 않음으로써 글쓰는 동안에 정신이 작동하는 방식을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사건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고백하는 겁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게까지 극단적이지는 않았다. 그는 작품 『길 위에서』는 세심하게 준비했으며 퇴고도 많이 했다 (뉴욕 공립 도서관에는 여러 개의 미완성 원고가 있다). 게다가 케루악은 마침표를 싫어하고 쉼표를 불신한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는 마침표와 쉼표를 둘 다 많이 사용했다. 케루악이 발견했다고 보통 얘기하는 비트 세대 Beat Generation에 대해 그는 “실제로는 우리 머릿 속에 있는 생각일 뿐이다”라고 회고했다. 그리고 그가 즉흥적으로 쓴 글들은 현실이라기 보다는 환상인 경우가 더 많았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케루악의 글은 이상적인 문학적 목소리를 추구하면서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그리고 그의 실험은 『지하생활자The Subterraneans』라는 작품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이 작품은 3일 만에 쓰여졌고 언론은 이 작품에 대해 대서특필했다. 뉴욕 타임즈는 “구문이 거의 정신 분열증 수준으로 붕괴된 작품 — 경험의 연속적인 흐름을 거의 반사 작용에 가까운 방식으로 재현해 내려는 노력.”이라고 썼다. 이 작품을 통해 케루악에 관한 잘못된 믿음은 현실이 된다. 이질적인 선율들이 즉흥 재즈 연주의 한 악절과도 같은 방대한 시적인 문장에 쌓여서 뿜어져 나온다:

미국의 미래의 스타일에 대해 예언하는 스물 다섯 살 난 여자 스포츠 머리처럼 짧은 뱀 같은 검은 레게머리에 뱀 같은 걸음걸이에 창백하고 창백한, 마약 중독자 같은 빈혈기 가득한 얼굴 우리는 마약 중독자 같다고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렇게 말했겠지? 성스럽다고 아니면 금욕적이라고? 하지만 전혀 그런 게 아니야. 차가운 파란색의 촉진제인 차가운 파란색의 그녀의 얼굴 남성용 흰 와이셔츠를 입고 소매는 단추를 잠그지 않은 채 내가 기억하기로 그녀는 누군가에게 말하면서 그에게 몸을 구부리고 있었어. 거침없는 어깨를 하고 바닥을 미끄러지듯 나아간 후에, 짧은 담배 꽁초를 든, 재를 짧게 톡 터는, 그러나 길고 긴 1인치나 되는 동양적인 느낌의 뱀 같은 손톱으로 계속해서 재를 터는.

그냥 타이핑한 것에 불과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훌륭하지 않나요? 트루먼씨.

우리가 알기로 케루악은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케루악의 작품 『즉흥적 글쓰기의 정수』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더 나은 인상을 주거나 어떤 인상을 돌려주기 위해 두 번 생각하지 말라.” 그래서 우리는 그가 리팩토링하는 것을 배제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의 작업 절차에서 계획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이해가 안 되는 것이고 심지어 함수 사용도 금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케루악은 분명 “재즈 운율”이 만발한 상태에서 이 해답을 작성했을 것이다. 그의 해답은 43의 계승만을 반환할 것이다. 다른 수의 계승을 원하면, 박카스나 커피를 들이 붓고 밤을 새면서 새로 작성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석 부분이 코드 부분과 사실상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하자. 케루악에게는 코드나 주석이나 모두 같은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긴 서사시처럼 동시에 같이 흘러 나오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 해답을 통해서 그는 1668년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과 『길 위에서』에 나오는 문단을 섞어놓은 것을 들려주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