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1899–1986

자바스크립트로 작성을 하는 것과 작성을 하지 않는 것, 이 두 가지가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표현에서 볼 수 있는 절제된 기품은 그가 사용하는 환상적 이미지, 격렬하고 끝없는 상상력과 대조를 이룬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보르헤스는 분방한 열정으로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의 신념(시간, 우주, 미로, 공간)에 충실했으며, 그 신념을 단순하면서도 정교하게 다듬어진 고전적 산문으로 녹여냈다.

보르헤스는 자신이 마음속까지 독자라고 늘 주장했는데, 이것은 독서를 위한 독서를 열렬히 신봉한 나보코프와 입장을 같이한 것이다. 보르헤스는 의미나 메시지의 중요성에 대해 일축했다(“나는 무엇인가를 보여줄 생각이 없다. 나에게는 의도가 전혀 없다.”[i]). 책의 목적은 미학적 즐거움에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즉, “독자에게 어떤 즐거움과 감정을 주느냐”[ii]를 보고 작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르헤스는 한 번도 장편소설을 쓴 적이 없다. 그는 장편소설이 노력을 들일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보았다. “방대한 책을 쓴다는 것은 힘들고 빈곤을 부추기는 사치에 불과하다. 말로 하면 몇 분 만에 완벽히 설명할 수 있는 아이디어 하나를 가지고 5백 페이지나 쓴다니!”[iii] 대신 보르헤스는 가상의 책을 잔뜩 만들어 내고서는 이들을 단편소설의 주제로 삼았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에는 가공의 행성에 대해 묘사하는 가짜 백과사전이 등장하는데, 이 행성의 발견으로 막을 수 없는 모방의 파도가 몰아치고 그 결과 기존의 문화가 싸그리 없어진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The Garden of Forking Paths』에는 무질서하게 중구난방으로 뻗어나가는 한 소설에 대한 인용이 나온다. 이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은 각각 가능한 모든 행위를 동시다발적으로 하면서 미래의 어느 순간에 이따금씩 조우하게 되는 일시적 행로의 무한한 그물망을 만들어낸다.

『바벨의 도서관The Library of Babel』에서 보르헤스는 끝없이 늘어서 있는 똑같은 모양의 육각형 방에 관해 이야기한다. 각 방에는 20개씩의 책장이 있고 각 책장에는 동일한 방식으로 제본한 410쪽짜리 책이 32권씩 꽂혀있다. 역사의 어느 시기에 이르면 한 “천재적인 사서”가 다음과 같이 추론하게 된다. 즉, 똑같은 책은 단 하나도 없으며 모든 책은 같은 글자를 무작위로 모아 놓은 것이므로, 지금까지 쓰인 모든 책 그리고 앞으로 쓰여질 모든 책이 도서관에 소장되어야 한다고 말이다.[iv] 이처럼 다소 기묘한 방식으로 아직은 세상에 나타나지도 않은 인터넷에 대해 긍정하면서 도서관의 지지자임을 자처한 이들이 점차 깨닫게 된 것은, 자신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지식이라는 귀중한 보물이 사실은 거의 전혀 쓸모없는 자료가 끝없이 널려있는 세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보르헤스는 호평 받는 시인이기도 했다. 그가 즐겨 다룬 주제의식이 시에서도 많이 드러나긴 하지만, 산문에 비해 그의 시는 좀 더 개인적인 경향을 보인다. 보르헤스 자신의 상처받기 쉬운 내면과 낭만적 고뇌가 그가 쓴 시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보르헤스의 해답 안에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모티브 중의 몇 개가 결합되어 있다. 그것은 곧, 수학적 이론과 공간의 기하학적인 배열, 무한에 대한 암시, 이야기 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보르헤스의 전형적인 면이 드러난 것은 서술자인데,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계단에 관한 상상을 과장해서 펼친다. 그는 신비로운 책(계단을 올라가는 괴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주는데, 몇 줄만 읽어도 우리는 그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위로 올라가고 있는 괴물들의 행진을 보노라면 우리는 보르헤스가 과연 언제 수학에 대한 얘기를 할지 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예상대로 그가 이미 수학 얘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계단이 몇 번째인지가 바로 분자가 되고 각 괴물의 보폭이 분모가 된다. 괴물들이 발을 딛지 않은 계단은 제수(즉, 나누는 수)가 없으므로 소수이다. 이 상상의 세계로 우리를 데려다 놓음으로써 보르헤스는 소수를 계산해 내는 건조한 방법이 나오리라고 예상했던 우리에게 도리어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소수라는 것이 얼마나 간단하고 일반적인지를 보여준다.

보르헤스의 논리는 분명하며 정리가 잘 되어 있고, 그가 작성한 자바스크립트는 복잡하지 않으며 불필요한 영리함이 없다. 이는 문법적으로 지나치게 섬세하게 작성하는 것을 싫어하는 보르헤스다운 면이다. 그러나 그는 주석과 변수명을 잘 선택함으로써 영예롭게도 상상의 세계의 느낌을 주는 효과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