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나보코프

1899–1977

나는 언어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바스크립트로 생각하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열두 살 난 롤리타에 대해 그가 집착을 갖고 있다는 험버트 험버트Humbert Humbert의 애매한 설명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견줄 이가 없을 정도의 언어적 탐미주의자로 알려지는 편이 더욱 온당하다. 나보코프는 교묘하게 짜놓은 플롯의 모든 조각을 매만져서 말장난과 애니그램anigram, 이중적 의미를 갖는 어구double entendre와 almost-words[ns1] , 두운과 아크로스틱acrostic[1]을 가지고 노는 놀이터를 만들어 내는 등 말장난과 언어유희를 즐긴다. 그러나 나보코프에 대해 솜씨좋고 정교하게 만든 기발한 방식에 안달이나 난 사람이라고 일축하는 사람은 생생한 형상화를 통해 독자를 감동시키기도 하고 불안하게도 만드는 그의 능력을 간과하는 것이다. 다음 발췌문에서 그는 쉬쉬 소리가 나는 치찰음 S와 귀에 거슬리는rugged[ns2] R, 활기찬 B의 행렬을 소환하여 어린 시절의 만족감에 대해 애석해하는 그림을 표현하고 있다.

A sense of security, of well-being, of summer
warmth pervades my memory. That robust
reality makes a ghost of the present. The
mirror brims with brightness; a bumblebee
has entered the room and bumps against the
ceiling.1[ns3]
일종의 안도감, 평안함, 여름날의 따뜻함이 내 기억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그 원기 왕성한 현실이 현재를 가능하게 해준다.
거울은 환함으로 가득차 있고 호박벌 한 마리가 방으로 들어와서
천정에 꽝하고 부딪힌다.[i]

그 다음 부분에 표면에 관한 그리고 감각을 일으키는 세부사항에 대한 놀라운 나보코프의 선물이 나온다. 손목시계의 크리스털 유리 위해 내려 앉는 눈송이, 침대틀에 반사된 것, 흘러내리는 수돗물의 메아리가 인간의 말소리 같다고 암시하는 것. 나보코프에게는 “신성한 세부사항”이 전부이다. “사소한 것에 경이로움을 느끼는 능력… 정신이 얘기하는 이러한 방백[2]들, 삶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러한 주석들이야말로 의식이 가장 수준 높은 형태로 실현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 가득한 정신상태에서만이, 상식과 논리와는 매우 거리가 먼 이런 상태에서만이 우리는 세상이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ii]

그가 끊임없이 제공하는 적절한 비유들은 미묘한 차이마다 질감을 입혀 준다. 다음은 『프닌Pnin』에 나오는 문단인데 치과 방문으로 인한 끔찍한 결과를 표현한다.

His tongue, a fat sleek seal, used to flop and
slide so happily among the familiar rocks,
checking the contours of a battered but still
secure kingdom, plunging from cave to cove,
climbing this jag, nuzzling that notch, finding
a shred of sweet seaweed in the same old
cleft; but now not a landmark remained, and
all there existed was a great dark wound,
a terra incognita of gums which dread and
disgust forbade one to investigate.
그의 혀는 두툼하고 윤이 나는 물개처럼 털썩 드러눕고선
친숙한 이빨 사이를 만족스럽게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심한 공격을 받기는 했지만 아직은 안전한 왕국의 윤곽을 확인하며
동굴에서 만으로 가파르게 내려간다.
뾰죽한 끝을 타고 올라가며 패여있는 홈에다 몸을 비비고
그 오래된 갈라진 틈에서 단맛 나는 해초 조각을 찾는다.
그러나 이제는 랜드마크가 남아있지 않고
남은 것이라고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커다랗고 시커먼 상처, 미지의 대지인 잇몸 뿐이다. 그리고 그 혐오감으로 안을 살피는 것이 어려워진다.[iii]

일상적인 것에 대한 나보코프의 매우 독특한 관점은 비상할 정도로 재미있다. 지나치게 진심 어린 것이나 가식적인 것에 대한 그의 조롱 또한 매우 웃기다. 아마 그 누구보다도 나보코프는 사물 자체를 좋아해서 사물을 믿었던 것 같다.[nh4] 그는 “사상을 논하는 문학”에 할애할 시간이 없었다. 또한 그는 교훈 주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콘래드 브레너는 뉴 리퍼블릭[nh5] 에서 이렇게 썼다, “삶과 문학에 대한 그 모든 거짓되고 무거운 접근법을 유머가 망가뜨린다. 그리고 자신의 억누를 수 없는 관점을 드러낸다. 나보코프의 힘은 사악하지만 생략해서는 안되는 것을 견제하고 균형을 잡는 데에 있다.”[iv]

나보코프는모든 것을 완전히 장악하는 작가이다. 단어는 그의 하인이며, 인물에 대해서 그가 “그들은 나의 갤리선[3] 노예다”라고 한 것은 유명하다. 그리고 독자인 우리는 아마도 그의 즐거움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1]각 행의 첫 글자를 아래로 연결하면 특정한 어구가 되도록 만든 시나 글. (옮긴이)

[2]연극에서 등장인물이 말을 하지만 무대 위의 다른 인물에게는 들리지 않고 관객만 들을 수 있도록 약속된 대사. (옮긴이)

[3]그리스나 로마 시대 때 주로 노예들에게 노를 젓게 했던 배. (옮긴이)


나보코프 버전의 영어는 온전히 그의 것이고, 이는 자바스크립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해답의 세계에서는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걸까? 아니 이 해답의 세계들이라고 물어야 할까? 나보코프의 해답을 이해하는 실마리는 그의 웅장한 걸작인 『에이다Ada』에 나오는 두 개의 쌍둥이 세계인 테라Terra와 안티테라Antiterra이니 말이다. 테라는 우리가 사는 지구와 유사한 반면 안티테라는 시간이 바뀌어 있고 역사가 다른 등 지구와는 거의 닮지 않았다.

그래, 그건 알겠는데 이 해답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냐고 여러분은 물을 지도 모른다. 좋다. 샐린저의 해답에서 홀든 콜필드가 역사를 생략했던 방식을 기억하는가? 자, 나보코프도 비슷한 것을 한다(관례적인 지혜가 가진 폭압성에 대해 그가 경계했던 것은 유명하다). 어떻게 했느냐고? 그는 이것을 행복한 수 퍼즐 두 개를 동시에 진행시키는 방법으로 한다. 하나는 테라에서, 또 하나는 안티테라에서. 안티테라는 테라보다 약간 더 빨리 돌기 때문에 매번 조금 더 미래의 일까지 내다본다. 이제 테라와 안티테라가 동시에 동일한 응답을 끌어내면, 우리는 역사가 반복되었고 우리가 반복문을 돌고 있다는 것을[nh1] 미리 알 수 있게 된다. 이 지점에 이르면 게임은 끝나고 우리는 불운한 수에 대해 불행한 수라고 선언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수의 황홀경에 이를 정도로 운이 좋다면 나보코프가 롤리타의 유명한 첫 대사를 반복할지도 모른다. 다만 이번에는 혀를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까다로운 지시 대신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며…

그것으로 끝이다. 물론 그의 코드에 수수께끼가 더 숨어있지는 않나 증거를 찾아 헤매면서 여전히 코드를 살펴보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