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과대평가 되어있다.

행복은 그냥 그.. 밥 같은 거다.

행복이란 것이 백야처럼 삶을 밝히는 것은 아니다 보니, 이따금 행복이 저물고난 후의 공허를 이런 생각이 채울 때가 있다.
“정말 이게, 전부일까. 이 것이 나라는 인간이 가진 서사의 전부일까”

당신,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당신도 행복인가?

그럼, 묻겠다.

왜,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어야 하는가.

이 글은 행복에 대한 냉소가 아니다.
행복에 경도되어 놓치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다.

삶의 오른편에 행복이 있다면, 그 왼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더듬어 나가는 이야기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 말하는데, 행복에 대해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는 주장은 거의 절대가치로 숭상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말한 행복은 현재 우리가 말하는 행복의 의미와는 다르다.

영어로 happiness로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어는 eudaimonia이다. 
‘훌륭한 영적 존재’라는 의미다. 오늘날 통용되는 오래 지속되는 긍정적 감정으로서의 행복과는 거리가 있다.

과학은, 행복은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보상 체계일 뿐이라고 말한다. 동물에게 최고의 가치는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살아남는 것이고, 다음은 번식을 통해 대를 잇는 것이다. 인간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 했고, 유전자의 컨테이너로써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었다.

행복의 기전은 이러하다.

오감을 통해 인입 된 외부의 자극과 도파민, 세로토닌 등 홀몬의 하모니가 뇌의 뉴런을 통해 전기적 신호로 전달되면, 각 자극에 맞게 셋팅 된 값에 따라 분노나 사랑, 행복과 증오 같은 감정이 출력된다.

뇌는 같은 자극에 쉽게 적응하므로 행복의 반감기가 짧아지고, 더 큰 자극이나 새로운 자극을 통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행복을 추구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런 속성에 있다. 행복의 휘발성과 역치의 상방경직성(혹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그렇다보니 쾌락의 역치를 갱신하는 과정에서 마약이나 변태성욕 등의 가학적인 방식에 이르기도 한다.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가 마약에 손대는 이유가 단지 그들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정말 순진한 해석이다.)

졸음처럼 쏟아지는 권태를 쫓으려 새로운 장소, 새로운 음악, 새로운 음식, 새로운 여자(읭?!)만을 찾아다니는 것만이 삶의 목적이 될 수 있을까.

행복만이 인생의 목적이어야 하는가?

만약 행복만이 인생의 전부라면,
마약에 빠져서 살거나 영화 MATRIX속의 Cypher,
욕조 속의 인체건전지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다.

당신이라면 Cypher의 삶을 선택하겠는가?

아니라고 답했다면,

당신도 무의식적으로 행복이 인생에서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절대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행복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있지만 실제로는 매순간 행복 외에 다른 가치를 무의식적으로 함께 고려하고 있다.

행복하지만 무의미한 삶도 있고, 불행하지만의미 있는 삶도 있는거니까.

행복은 식사와도 같은 것이다.

되도록 거르지 말아야 하고,
영양가 있고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야며,
많이 누려둔다고 다시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밥을 짓듯이 지어야 하고,
해서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며, 그래서 가치가 있다.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 좋고, 맛난걸 먹으면 더 좋지만, 때때로 끼니를 거를 수도 있고, 맛 없는 음식이나 정크푸드가 주식이 되는 시절도 있겠지만
그게 우리가 살면서 먹은, 먹게 될 모든 행복은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공복과 포만 사이를 오가듯
때때로 행복하지 않을 수 있으나, 그 때문에 삶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러니,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다.
행복은 불행 만큼이나 비정상적인 상태이며,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불행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빵이 아니면 무엇인가

행복의 반대편에 놓여진 이것에 섣불리 어떤 관념어를 씌워버리기엔 겁이난다. 다만 이것은, 삶은 빵만의 문제가 아닐거라는 의구심이자. 인간 존재에 대한 오만과 경외의 원천이다.

우리가 배를 주리고 졸음에 시달리면서도 몰두하는 어떤 것. 고통과 번민, 절망과 마주하면서도 기꺼이 감내하는 일. 본능과 본성을 거스르고 불행을 기꺼이 감수 하게 하는 일.

그걸 이룰 수 있다면, 죽어도 좋은 이유.

살아가는 이유라기 보다 죽어도 될 이유.

누군가 스스로의 몸을 불사질러가면서 부르짖은 가치. 그것이 행복 만큼이나 가치있는 가치이며.

그런 가치와 행복의 균형이 인간의 삶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균형

결국 이 것은 그 양자의 균형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말하는 균형이란 분리된 것의 수평을 이름이 아니다. 같은 삶 위에 양립시켜야 할 통합적 가치를의미한다.

많은 이들이 일과 삶의 균형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그것이 양립 불가한, 배타적인 가치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행복과 사명, 일과 생활, 몸과 마음이 분리된 것이라고 인식하지만 이는 그릇된 것이다.

삶에서 균형이 필요한 모든 것들은 사실 그것이 하나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양쪽 영역 모두에 스트레스와 기쁨이 존재하며 이는 분명히 다른 영역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양자를 별개의 것으로 여기게 되면 한 영역에서 거둔 성공이나 보람을 다른 영역으로 가져갈 수 없게 된다. 일과 생활, 몸과 마음, 모두 맞닿아 있기에 경계가 존재하며 때문에, 통합적 관점에서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마음이 고단할 때는 건강한 몸이 버텨주고,

꿈으로 가는 길이 녹록치 않을 때는 행복에 삶을 기댈 수 있어야 한다.


I'M NOT OK. BUT, I'TS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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