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GS V: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Missing Link #1

METAL GEAR SOLID V: THE PHANTOM PAIN | TACTICAL ESPIONAGE OPERATIONS | PLAYSTATION4 | 2015 | KONAMI

두 편으로 나뉘어 발매된 <메탈기어 솔리드 V> 그라운드 제로즈와 더 팬텀 페인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깐 시계를 2010년으로 되돌려보도록 하죠. 그 해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용으로 발매된 <메탈기어 솔리드: 피스워커>는 대단한 걸작이었습니다. 닌텐도 DS라는 경쟁 기종의 세계적 대히트와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고성능 스마트폰의 파상공세가 이어지는 판국에, 이미 저물어가는 기기였던 PSP로 여기까지 해냈다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요. 깊이있는 이야기, 매력적인 캐릭터, 우수한 시청각 경험, 복잡해져만 가던 조작체계의 일신, 휴대용 게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거대한 볼륨, 과거 시리즈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영화적 연출을 부족한 용량 때문에 사용할 수 없게 되자 그것을 방드 데시네(Bande dessinée)식의 연출로 대체한 과감한 결단, 무엇 하나 빠질 것 없는 ‘세계의 KOJIMA PRODUCTION’ 게임이었지요.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게임에는 한 가지 기묘한 특징이 있었습니다. 좀 이상할 정도로 게임 안에서 ‘V’ 사인이 반복해서 등장하거든요. 주요 인물 중 하나인 파즈 오르테가 안드라데의 시그니쳐 사인으로 피스 사인이 등장한다던지, 결말 부근의 “로켓트 브이!”라던지, “빅 보스(Vic Boss)의 ‘V’는 승리(Victory)의 ‘V’다!”라는 어줍잖은 말장난까지. 심지어는 게임을 클리어하고 뜨는 타이틀 로고에서도 ‘V’ 어필이 계속되고 있죠. 상업적인 문제를 고려해 차마 5편이라고 하진 못했지만 마치… 이 게임이야말로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의 다섯 번째 게임이라는 걸 알아달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시간이 지나 진짜 <메탈기어 솔리드> 5편, 그러니까 <그라운드 제로즈>와 <더 팬텀 페인>이 발표되고 코지마 감독이 이번에는 빅 보스가 활동하던 시절과 그 이후 솔리드 스네이크가 활약하는 시리즈 사이의 미싱 링크Missing link를 그려낼 거라고 약속했을 때, 사람들은 오랜 세월 기다려온 대망의 메탈기어 사가 완결편이 등장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메탈기어 세계관의 100여년 남직한 가상 역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정해져 있었고, 묘사되지 않은 부분은 빅 보스가 최초로 아우터 헤븐을 선언하는 1974년부터 솔리드 스네이크가 단신으로 아우터 헤븐 봉기를 진압하는 1995년까지의 공백 뿐이었으니까요. 그라운드 제로즈 미션은 실패로 끝나고, 빅 보스는 그간 이루어온 모든 것과 10년의 세월까지 한꺼번에 잃어버리게 된다는 전개까지 공개되자 메탈기어 팬덤은 바야흐로 이제야 모든 것이 끝나고 ‘역사’는 드디어 ‘완성’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그리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찾아왔죠. 메탈기어 시리즈의 제작사인 코지마 프로덕션이 해체되고 그 수장인 코지마 히데오는 사실상의 연금 끝에 해고된다는 소식이었죠. 그간의 처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개발자에 대한 처사치고는 너무나도 불합리한 것이었습니다. 모 회사인 코나미에 대한 잇다른 내부 고발과 부정적 캠페인이 쏟아졌지만 코나미와 코지마 프로덕션에서는 별 다른 해명도, 발표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시리즈 완결편이 시장에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게임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람들을 당혹시키기에 충분한 물건이었죠.

먼저 <그라운드 제로즈>와 <더 팬텀 페인>의 메인 빌런인 스컬 페이스를 살펴보도록 하죠. 이 인물은 스스로 말한 것처럼 이름과 얼굴, 과거와 내면이 없는 인물입니다. 전쟁은 그에게서 애착이라 할 만한 것을 모두 빼앗아갔고, 오로지 ‘고통’을 느낄 몸뚱아리 말고는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에게는 복수를 해야할 대상마저 없지요. 그가 말하는 ‘복수’란 그의 선임인 빅 보스나 윗선인 제로 소령를 향한 것이 아닙니다. 게임 내에서는 일부러 플레이어로 하여금 그것을 오독하도록 연출하고 있는데(파즈에게 행해지는 성고문이라던가. 과거 시리즈에서도 고문 묘사가 있었지만 대부분 상당히 순화된 것이었죠) 그의 말마따나 그건 딱히 스네이크에게 유감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지요. 그가 원하는 것은 제로 소령의 계획을 역으로 이용하여 세계를 자신과 같은 꼴로 만드려는 것이죠. 더 보스의 유지 - 세계를 일원화하여 다시는 그와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게 한다 - 를 잇기 위해 제로 소령이 이미 성립된 국가(nation)를 연합으로, 궁극적으로 단일한 공동체로 만들려고 했던 것과 달리, 스컬 페이스의 계획은 민족해방충을 이용해 공용어(lingua franca)를 파괴함으로써 국가를 서로 연합되지 않는 인종(race)으로 나누고, 그 인종 각자에게 핵억지력을 부여할 메탈릭 알케아(metalic archaea)를 공급하여 언제까지고 보복의 연쇄가 그치지 않는 만인의 만인을 향한 투쟁 상태를 만드는 것입니다. 스네이크와 그의 군대는 마침 눈에 띈 계획의 최종 테스트 베드였을 뿐이구요. 그가 제로 소령을 뇌사 상태로 빠뜨린 것 역시 단지 그의 의중대로 움직여줄 ‘(기록에 남지 않으므로)존재하지 않는 자’ XOF라는 군대를 얻기 위해서였죠.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을 조종하는 스컬 페이스 역시 미래에 어떤 기록도 남겨놓지 못하게 될 인물이긴 하죠. 근본적으로는 나중에 생각해낸 캐릭터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셀롯이나 마스터 밀러, 캠벨 소령, 닥터 클라크, 도널드 앤더슨 등의 시리즈 주요 등장 인물들이 직접 등장하지 않으면 간접적으로 어떻게든 언급되는 것과는 처우가 상당히 달라요. 스컬 페이스가 스네이크와의 치열한 전투 끝에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염두에 두지 못한 위험 요소에 의해 어이없는 사고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것 역시 ‘존재하지 않는 자’가 맞이할 결말일 수밖에 없겠지요.

한편 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모티프는 스컬 페이스 말고도 게임 속 여러 곳에서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스컬 페이스가 자신을 ‘존재하지 않는 자’라고 칭하며, 남은 것이라고는 자신의 ‘고통’을 세계에 되돌려 주겠다는 일념 뿐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주장을 하는 인물이 아군 측에도 한 명 있죠. 스네이크의 부관이자 사실상 다이아몬드 독스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카즈하라 밀러 이야기입니다. 전편에서도 스네이크의 무전 서포트를 담당했지만 그때는 상당히 유머러스하고 낙천적인 성격이었죠. 메탈기어 특유의 ‘진지한 것 같지만 일면 나사빠진 부분’을 담당했다고나 할까. 그랬던 인물이 10년 사이 완전히 다른 인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군대, 혹은 비지니스 풀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고 시력과 수족마저 잃었습니다. 결말 부근에서는 우정과 충성의 대상마저 잃어버리죠. 복수의 화신이 된 그는 내부 배신자에 대한 히스테리로 반쯤 미쳐버렸습니다. 한때 동료이자 현재도 신무기 개발을 전담하고 있는 휴이 에머리히 박사에게 몸서리쳐질 듯 냉혹하게 대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죠.

휴이 에머리히는 과거의 MSF, 현재의 다이아몬드 독스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와 증오로 미쳐 날뛰는 중이라는 것을 가장 먼저 꿰뚫어 본 인물입니다. 왜나하면 그는 자신의 말마따나 ‘겁쟁이coward’이기 때문이지요. 그는 일개 무장용병집단에 불과하던 MSF가 어느샌가 핵무기까지 보유한 초소형 국가 체계에 가깝게 성장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지켜본 사람입니다. 핵무기까지 갖진 못했지만 현실에도 비슷한 곳이 있죠. ISIS라고. 따라서 MSF와 다이아몬드 독스는 모든 국가와 언젠가 척을 질 수 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휴이는 그런 상황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혹은 그런 상황에서라도 자기 자신만은 살아남기 위해 사이퍼와, XOF와 모종의 거래를 하죠. 어떤 면에서는 태생적으로 무력한 육체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갖게 된 성향일 수도 있겠지만, 그 자기 자신만의 보신을 꾀하려는 태도가 결국 발목을 잡아챕니다. 그가 아내를 살해한 것도, 아내의 시체를 유기한 것도, 심지어는 자기 자신만이라도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동료들은 물론, 자식마저 이용하려 했다는 걸 알게 된 다이아몬드 독스는 대번에 분노로 들끓는 생지옥으로 변합니다. 심지어는 스컬 페이스에게마저 그런 배신자에게는 볼 일 없다는 식의 모욕을 받게 되죠. 나중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가 최후의 방아쇠를 당기면서 ‘복수’라고 선언한 것은,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위협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자기 자신에 대한 개인적 모욕에 대한 복수라는 의미일 지도 모르겠군요.

스네이크의 다른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의 스네이크는 예전과는 달리 동료들과 어떤 감정적 교류도 일체 갖지 않으려 해요. 어떤 애착의 대상 비슷한 것이 있다면 기껏해야 데리고 다니는 개 뿐인데, 이마저도 좀 이상합니다. 게임 내에서도 대놓고 언급되지만 이 개, 정말로 개가 맞긴 한 겁니까? 아무리 봐도 늑대처럼 생겼고, 늑대처럼 울며, 늑대처럼 행동하는데? 휴이 말마따나 개도 아닌 것을 개라고 부르며 피와 돈에 홀린 ‘다이아몬드 독스’라는 이름의 용병 집단의 상징으로 삼는 건 터무니없을 정도의 부조리에요.

그러면 스네이크의 아들이자 훗날 ‘리퀴드 스네이크’라는 코드네임을 얻게 될 일라이의 경우는 어떨까요. 일라이 역시 ‘존재하지 않는 것’과 싸우고 있습니다. 영국을 떠나 나이에 걸맞지 않는 압도적인 전투 능력으로 아프리카 소년병들의 우두머리가 된 일라이는 스네이크가 자신의 아버지이며 언젠가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을 자기 뜻대로 이용해먹을 거라는 망상에 시달립니다. 소년병들의 존재를 애써 감추고, 제대로 된 성인으로 키워주려고 했던 스네이크와 카즈하라 밀러의 선의를 정반대로 해석했죠. 많은 부분은 그 뒤에 오셀롯의 정보 공작과 트렌치 레즈녹의 감정 증폭 능력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묘사되지만, 어쨌거나 일라이 역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큰 테마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지요.

이처럼 <메탈기어 솔리드 V:더 팬텀 페인>의 주요 인물들은 커다란 대주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갈 곳 없는 증오’ 아래 한데 묶인 인물들입니다. 이들이 겪는 고통은 일차적으로 각자의 원죄 때문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고통에서 해방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데에서 기인합니다. 심지어는 스컬 페이스가 죽어버린 이후에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대신 서로 조용히 미움만을 쌓아가죠. 전편의 유쾌한 분위기를 기대했던 플레이어들에게 이러한 모습은 일종의 배신처럼 다가옵니다. (계속)

p.s. 최종제품판의 빌드는 발매일로부터 상당히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환상의 51번 미션 ‘파리 왕국’에서 사용된 배경 텍스쳐는 애시당초 최초의 ‘폭스 엔진’ 시연에서 사용되었던 것들이니까요. 아마 오랜 발매 연기는 자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강력한 경쟁작을 피하면서, 코지마 본인이 어떤 식으로든 스튜디오를 회사내에 ‘연착륙’ 시키기 위한 수단 아니었을까요. 신규 리소스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만든(대부분 <더 팬텀 페인> 안에 있었던 거죠) P.T 역시 그런 노력의 일환 중 하나였겠죠. P.T는 아마 처음부터 나올 수 없는 게임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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