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와 대화하다 — 쿼츠의 신선한 시도

쿼츠 메인 페이지

많은 미디어 종사자들이 쿼츠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단순한 구성, 깔끔한 디자인, 차트와 같은 인포그래픽의 활용, 풀(Pull)이 아닌 푸시(Push) 유통, 명확한 관점 등.

그러나 그들의 타깃 전략에는 국내 미디어가 벤치마킹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었다.

예컨대 그들의 타깃 전략은 이렇다.

쿼츠는 비즈니스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여러 디지털 기기를 소유하고 잘 쓴 기사를 애호하는 부유한 모바일 사업가들)’을 겨냥한 디지털-온리(digital-only) 글로벌 뉴스 제공 언론사다. — 디지털 뉴스의 혁신 p.69(루시 큉 저 / 한운희, 나윤희 번역)
쿼츠는 애틀랜틱의 핵심 모임에서 고급스러운 기사와 분석을 제공하는 디지털 온리, 모바일 퍼스트 비즈니스 분야 뉴스 사이트에 착수하면서 고안됐다. 이 뉴스 사이트의 목표 대상은 고등교육을 받고, 기업에서 고위 관리자급 이상이며, 글로벌 비즈니스 이슈에 관심 있으면서, 자주 출장 다니는 글로벌 감각을 지닌 사람이다. — 같은 책 p.72
쿼츠 이용자의 절반은 미국 내 이용자며 나머지는 영국, 캐나다, 호주, 인도, 독일 이용자들이다. 이들의 중간 나이는 40세며 40%는 평균 가계 소득이 10만 달러 이상으로 이코노미스트,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 포브스 독자보다 높다. — 같은 책 p.74

그러니까 그들은 소수의 엘리트들을 위한 미디어다. 영어를 기본 언어로 사용하고 지적욕구가 뛰어나며 돈이 많은 사람들 말이다.

물론 한국에도 그런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그 규모가 미국이나 기타 영어 사용권 국가에 비교하면 매우 적다. 무엇보다 알파벳이 아닌 한글로 된 기사는 보는 사람이 제한적이다. 고급 기사가 유통되는 시장은 그보다 훨씬 훨씬 적다. 수요는 있지만 매우 협소한 시장이라는 얘기다. 고급지를 표방한 미디어 중 현재 한국에서 잘 나가는(생존이 아닌 수익을 내고 있는)매체가 어디 있는가.

그래프로 나타내면 이런 느낌이랄까

쿼츠는 모순적인 행동도 잘 한다.

‘홈페이지는 죽었다’고 선언하더니 돌연 2014년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Quartz has a new look — and for the first time, a homepage

그동안 그 흔한 앱 하나 만들지 않다가 ‘앱 무용론’이 돌고 있는 요즘, 앱을 론칭한다.

우리 고객의 대부분은 우리 기사를 SNS나 쿼츠의 데일리 뉴스 레터를 통해 접한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앱을 만들어 자원을 낭비하느니 모바일을 포함한 모든 플랫폼에서 최적화한 웹 화면을 잘 구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 조이 로빈스(Joy Robins) 쿼츠 수석부사장 — 해당기사

물론 쿼츠는 — 비록 그들의 모체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애틀랜틱 미디어이기는 하지만 — 전통 미디어라기보다는 스타트업에 가까운 신생 매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타깃 전략과 유동성을 이해할 필요는 있다.

아무튼 쿼츠의 앱을 보고 잠시 말을 잃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혁신이었다.

잠시 쿼츠의 앱 화면을 살펴보자.

블랙 앤 화이트로 구성된 심플한 로고
메신저 UI
마치 실제로 대화를 하듯 답변을 선택할 수 있다. 심지어 사진은 정적인 사진이 아니라 움직이는 gif다.
다른 기사를 보고 싶니? 선택지는 오로지 하나다. 마치 답정너…
광고도 매우 자연스럽게 배치하였다.
심지어 현재 기사가 없으면 퀴즈를 제공한다. 베이징보다 아틀란타 공항에 이용객이 더 많다니 놀랍지 않은가.
기사를 클릭하면 해당 기사 페이지로 넘어간다.

쿼츠 앱을 살펴보고 나니 한가지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바로 프로그램 흐름도였다.

간단한 흐름도의 예와 흐름도 기호 — 출처 : 컴퓨터인터넷IT용어대사전

내가 어릴 때는 GW-BASIC를 시작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것이 유행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이상의 언어를 배우지는 못했지만 프로그래밍이란 무엇인지 짧게나마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프로그램을 짜는 과정은 이랬다. 먼저 책상에 공책을 펼친다. 흐름도 기호가 표시된 특수한 자를 이용해서 흐름도를 작성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프로그램을 입력한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조건식인 if문이다. 영어의 if문 처럼 프로그램에서도 if문은 매우 중요했다. 예를 들어 만약 질문지에서 A를 선택하면 A1으로 가게 만들고 B를 선택하면 B1으로 가게 만든다. 이런 여러가지 if문이 뒤엉켜서 하나의 프로그램이 완성된다. 그리고 이런 기본적인 질문과 여러 분기점을 바탕으로 게임을 만들 수 있었다. 코에이의 삼국지1이나 2와 같은 고전 게임이 바로 그런 예이다.

번호를 입력하면 해당 내용으로 연결된다.
커맨드는 여전히 숫자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미연시(미소녀연예시물레이션)가 된다.

소년들에게 신세계를 보여준 불후의 명작(…)
다행히도 숫자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행동창이 제시되었다.

그러니까 쿼츠의 앱은 요즘 가장 유행하는 메신저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기본적인 방식은 질문을 던지고 몇 가지 선택답변을 제시한 뒤 사용자가 답변을 선택하면 거기에 맞는 화면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단순하다. A를 선택하면 A1으로 B를 선택하면 B1으로. 사실 A는 이 기사를 더 볼 것이냐는 의미고 B는 관심 없으니 다음 기사를 보여달란 의미다. 기사마다 이걸 반복한다. 그걸 메신저의 형태로 멋지게 포장한 것뿐이다.

나는 개발자가 아니지만 사실 저런 형태의 구현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물론 제공되는 메신저 대화 창은 에디터가 직접 입력해야겠지만, 하루에 제공되는 뉴스가 엄청나게 많은 것도 아니다. 메신저를 따라 했으니 길게 적을 필요도 없고 채팅하듯 짧게 요약하면 그만이다.

실제 대화는 아니지만 마치 대화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켜 똑똑한 친구 한 명과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떠드는 것 같은 느낌을 제공한다. 기존에 독자들이 미디어에 가졌던 불만들, 그러니까 나보다 위에 있는 듯한 그 거북함, 잘난 척, 권위성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언론사에서는 왜 이것을 생각해내지 못했을까. 그들은 정말 천재다. (참고로 쿼츠의 목표는 영리하지만 너무 잰 체하지 않는 목소리를 가지는 것이다 — 디지털 뉴스의 혁신 p.77)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지만 한때는 뉴스의 미래를 게임에서 찾았다. 위에 보이는 동급생2의 화면에서 처럼 상단에는 사진이 제공되고 하단에는 몇 가지 선택지를 줘서 그에 따라 기사가 노출되는 방식으로. UI를 게임처럼 구현하면 사람들은 재미있어할 것이고 딱딱함보다는 친숙함과 익숙함을 느낄 것이다. 사실 인터랙티브 화면 구성이 별 건가. 게임처럼 선택지를 주고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주면 된다. 클릭하면 다른 화면이 나오고 어떤 사진은 동영상이나 움직이는 사진을 제공하고 말이다. 물론 중요한 건 ROI가 나오느냐의 문제겠지만. 이것이 모든 전통 미디어의 딜레마다.

한때 이런 게임북을 만들어 보기도 하였다. 가급적 모바일보다는 PC화면에서 보기 바란다. [게임북]

쿼츠의 앱은 최근에 본 미디어 앱 중에서 가장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저런 방식이 지속가능성이 있겠느냐의 문제는 차차 검토해보기로 하고 아무튼 혁신이란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단순하지만 아무도 하지 못 했던 것을 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게 바로 쿼츠의 무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