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순대와 순댓국의 역사

시대에 따라 달라진 순대

필자가 좋아하는 광화문 화목순댓국의 순댓국과 순대, 모듬고기

순대 조리법이 최초로 등장하는 책

순대의 역사를 소개할 때 대부분 이 책을 언급한다. 바로 ‘제민요술’이다. ‘제민요술’은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농서로 산둥지역을 통치하던 태수 가사협이 편찬한 책이다. 산둥지역은 한반도와 무척 가깝고 당시 고구려나 백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의 음식이 한반도의 음식에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민요술’에는 양 피순대와 양 고기순대 그리고 선지순댓국에 대한 조리법이 등장한다.

기록에 등장한 순대

안타깝게도 국내에서 순대에 대한 기록은 그리 오래되거나 많진 않다. 가장 최초의 기록은 개(犬) 순대로 조선 중기인 1670년 경이다. ‘음식디미방’ 또는 ‘규곤시의방’이라 불리는 서적으로 정부인 안동 장씨가 쓴 조리서에서다. 여기에 선지를 넣지 않은 개의 창자로 만든 개 순대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600년대 말엽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주방문’에는 소의 창자로 만드는 순대가 등장한다. 또한 1766년 농서 ‘증보산림경제’와 1809년 일종의 여성생활백과인 ‘규합총서’에는 선지를 넣지 않은 소 창자로 만든 순대를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이전의 한반도에서는 순대를 먹지 않았을까? 앞서 ‘제민요술’의 지리적 관계를 바탕으로 삼국시대에는 순대를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북국 시대와 후삼국 시대에는 관련 기록이 없어 알기 어렵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이 거의 없어 순대 문화가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123년 고려 중기 송나라 사절로 고려에 왔던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고려는 정치가 심히 어질어 부처를 좋아하고 살생을 경계하기 때문에 국왕이나 상신이 아니면, 양과 돼지의 고기를 먹지 못한다. 또한 도살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다만 사신이 이르면 미리 양과 돼지를 길렀다가 시기에 이르러 사용하는데, 이를 잡을 때는 네 발을 묶어 타는 불 속에 던져, 그 숨이 끊어지고 털이 없어지면 물로 씻는다. 만약 다시 살아나면, 몽둥이로 쳐서 죽인 뒤에 배를 갈고 내장을 베어내고, 똥과 더러운 것을 씻어낸다. 비록 국이나 구이를 만들더라도 고약한 냄새가 없어지지 아니 하니, 그 서투름이 이와 같다”

다만 고려 말기 몽골이 침입한 이후에는 몽골과의 교류를 통해 육식과 순대 문화가 부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보편적으로 먹고 있는 돼지 순대 조리법이 최초로 언급된 책은 무엇일까? 굉장히 후대의 일로 1830년대에 편찬된 종합 농업기술서인 ‘농정회요’에서다. 도저장이라는 음식으로

“돼지 창자를 깨끗이 씻어 피를 헤아려 가져다가 참기름, 콩나물, 후추 등의 재료를 골고루 섞은 다음 돼지 창자 속에 집어넣고 새지 않도록 양쪽 끝을 묶은 다음 삶아 익힌다. 식은 후 납작하게 썰어 초장에 찍어 먹는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재미있는 점은 돼지 창자를 씻을때 당시로서는 상당히 비싼 재료인 설탕을 써서 누린내를 제거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돼지 순대는 지금과는 다르게 무척 고급 음식이지 않았나 싶다.

그 이후에는 19세기 말에 쓰인 요리책 ‘시의전서’에 한글로 도야지순대조리법이 등장한다.

“돼지의 창자를 뒤집어 깨끗이 씻고, 숙주, 미나리, 무를 데쳐서 배추김치와 같이 다져, 두부를 섞어 파, 생강, 마늘을 많이 다져 넣고 깨소금, 기름, 고춧가루, 후춧가루 각색 양념을 섞어 피와 함께 주물러 창자에 넣고 부리 동여 삶아 쓴다”

라고 되어 있는데 현재의 순대와 가장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다.

기록에 등장한 순댓국

일제강점기인 1924년. 이용기가 쓴 국내 최초의 컬러가 들어간 요리책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순대 대신 내장만 넣어 끓인 국을 순댓국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1931년 동아일보 기사에 순댓국에 대한 묘사가 등장하는데 돼지 삶은 물에 기름을 건지고 우거지와 내장을 넣거나 된장이나 무, 우거지, 콩나물을 넣고 소고기까지 넣어 끓이는 것으로 나온다. 순댓국에 순대가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순댓국으로 불리고 있는 점을 보아 현재처럼 순댓국에 순대가 들어간 형태는 해방 이후로 추정된다.

해방이후 1948년에 손정규가 쓴 ‘우리음식’에 지금의 순댓국과 가장 유사한 조리법이 등장한다.

“창자 안팎을 소금에 비벼 잘 씻어둔다. 돼지고기를 잘게 썰어놓고 숙주, 배추 김치 등 만두소와 같이 하여서 돼지 고기와 선지와 찹쌀가루나 녹말가루는 엉기게 하기 위하여 넣고 갖은 양념하여 무쳐서 창자에 넣고 양 끝을 실로 매서 국에 잘 삶는다. 건져서 식혀 2~3cm로 베어 국에 넣기도 하고 초장에 찍어 먹기도 한다. 술안주 등에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서민적이고 친숙한 순댓국

1984년 경향신문에는 전두환 대통령이 아파트 노인회장등 주민들과 순대국으로 아침식사를 함께하며 환담을 나눴다는 기사가 나온다.(순대국으로 아침식사-경향신문)또한 같은 해에 경향신문에 투고된 소설 ‘서울1984’에는

“술 하실 줄 아세요? 적당히 합니다. 그러시다면 제가 가끔 가는 순대국집이 이 근처에 있어요. 누추한 곳이지만 그리로 가시면 어떻겠어요? 누추한 게 뭡니까. 임계순씨가 가자는 데면 어디라도 하고 박문기가 웃었다”

라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190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서야 우리가 현재 인지하고 있는 서민적이고 친숙한 순댓국에 대한 이미지가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100년 전 음식과 지금의 음식은 동일할까?

이처럼 순대와 순댓국의 역사를 보았을 때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수많은 음식들이 사실 우리의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거나, 꾸준히 한 가지 형태의 전통을 이어왔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이 흔치 않았고, 조선시대에는 중기에 임진왜란이, 후기에는 병자호란 등의 전란이 일어나 국력이 바닥을 쳤기 때문에 물자가 풍부하지 않아 고급 음식 문화가 발달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말이다.

국가와 문화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게 사실을 왜곡하여서는 곤란하지 않겠나 싶다. 중요한 것은 음식이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고 새롭게 태어난다는 점이 아니겠는가.


이 글은 육경희 저 ‘순대실록’(BR미디어, 2017) 의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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