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진Feb 26
짝사랑
면도날같은 바람과 한참 싸우다
피투성이 태양이 드디어 나타났습니다
그가 나를 위해 싸웠을 리 없지만
새삼 그가 자랑스러워
그가 내 마음 또 배신하기 전까지만이라도
그에게 기대고 싶어집니다
바람의 시체를 끌고 뉘엿뉘엿 지나가는 그의
발가락 부여잡고 입을 맞추면
바람의 냉기 아직도 숨쉬는 상처 사이로
얼어붙어 도르르 구르는 붉은 핏방울
반짝이는 보석처럼 굴러 떨어질 테지요
그렇게 내 사랑은 보상받을 거구요
기쁨에 몸을 떨며 한 입 가득 녹여 삼키고
피묻은 간절함 담아 다시 그를 바라보면
비겁한 바람의 시체는 온데간데 없고
그는 또 저물며 오늘의 패배를 인정합니다
그래 너 따위, 다시는 사랑하지 않아
냉소와 함께 져버린 그를 보냅니다만,
아직도 뭔가를 기대하는 버릇이 남았는지,
살짝 들떠 보이는 햇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