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I


— 어서 오십시오.

택시가 출발했다. 그는 행선지를 묻지 않았고, 나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지쳐 있었고, 어디로 가느냐 보다는 얼른 도착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러나, 택시에 올라타고 난 후 몇 분간의 휴식이 싫증날 즈음,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 어디로 가십니까.

— 손님이 원하는 곳으로 갑니다.

말문이 막혔다. 재밌는 양반이구만, 하고 좋게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짜증이 먼저 밀려 들었다. 반문하는 내 목소리는 그다지 곱지 않았다.

— 내가 어디로 가길 원하는 것 같은데요?

— 손님께서 잘 알고 계시겠지요.

— 왜 행선지를 묻지 않죠?

— 궁금하지 않으니까요. 제 일은 손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모셔다 드리는 것일 뿐입니다.

츳. 이번에는 얕은 웃음이 나왔다. 하긴 맞는 말이지. 내가 알아서 내 놓아야 할 것이긴 해.

— 저…

이번에는 그가 먼저 말문을 연다.

— 타신 곳은, 알고 계십니까.

— 네?

— 손님이 제 차를 잡아 타신 곳 말씀입니다.

— 물론 알죠. OO동.

— 후회 없을 만큼인가요.

— …?

— 어딘가로 옮겨 간다는 것은, 즉 이동한다는 것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철저히 벗어나는 것이니까요. 아쉽지도, 그립지도, 기억나지도 않게 다 버리고 제 차에 타셨어야 합니다.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말 많은 양반한테 걸린 건가. 피곤한데. 내 쪽은 한 번 돌아보는 일 없이 그는 하던 말을 계속했다.

— 다 버리려면,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안 후에야 가능한 것이니, 묻는 겁니다.

— …

밤 깊은 시간이라 거리에는 차가 없었고, 택시의 속도는 계속 빨라졌다. 손잡이를 잡고 있는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 있음을 문득 깨달았다.

— 천천히 모셔도 됩니다. 그다지 급하지 않아요.

— 그건 손님의 일이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제 일이오?

— 네. 제 일은 손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모셔다 드리는 것이고, 손님의 일은 제 차에 타고, 원하는 곳에 내리시는 겁니다.

— 아니, 제 말은…

그때였다. 퍽, 짧고 둔탁한 소리가 보닛 부근에서 난 것과 거의 동시에, 헤드라이트 빛을 받아 새하얗게 뜬 어떤 여자의 얼굴이 앞유리를 가득 채운 찰나, 그 얼음장 같은 눈이 내 눈과 마주쳤다. 다시 퍽, 이번에는 좀 약하게 지붕에서 들리더니 이후론 고요 뿐이었다. 나는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 뭐, 이, 이, 이봐! 지금 뭐였지? 사람 아니었나?

— 보셨습니까? 사람, 이었나요?

— 이 양반이? 꼭 봐야 아나? 당신, 지금 어떤 여자를 친 거 아냐? 얼른 차 세워!

— 그건, 그 여자의 일이지요. 그게 사람이고, 또 여자였다면.

— 아직도 말장난인가? 못 봤던 거야? 어떻게 사람을 치고, 아니 죽었을 거야, 사람을 죽이고 그냥 뺑소니를 칠 수 있지?

— 핫핫. 사람인 것도 알고, 여자인 것도 알고, 이미 죽은 것까지 아시는군요. 이제 기억이 나시는 겁니까?

— 기억… 이라니? 헛소리 집어 치우고, 빨리 돌아 가 봐야 하는 거 아냐? 정말 그냥 뺑소니 쳐 버리려고 하는 거야? 일단 세워 봐, 아니 속도라도 좀 줄이라고!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차의 속도도, 이제는 아예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고 막무가내 운전을 하는 그도 무서워지고 있었다.

— 속도를 줄이라고요? 이 속도에서 브레이크를 밟았다간 그냥 뒤집어지고 말 겁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으셨으니, 그럴 순 없지요. 게다가 그건 손님의 일도 제 일도 아닌 이 차, 택시의 일입니다.

— …!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공포와 피로가 범벅이 된 이 상황에서, 난 잠이 오기 시작했다. 눈이 감기고, 혀가 꼬이면서 말을 내 뱉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 도대체… 어… 당신, 뭐야? 이런, 나쁜… 살인… 자. 병원이라도… 시..체..라도.

— 살인이라고? 아직도 그게 사람이고, 여자라고 믿습니까? 세워서, 뭘 확인하고 싶은 겁니까? 아직도 출발했던 곳 그 자리가 그리운 겁니까? 아니면 산산조각 나기 전 그 여자의 껍데기가 아쉬운 겁니까? 핫핫핫!

나는 더 이상 대꾸하지 못했다. 그저 꿈꾸듯, 충돌하기 전에 내 망막을 스쳐간 그 여자의 얼굴을 되새겨 보려 애쓰고 있었다. 영혼이 빠져나가기 직전, 섬뜩하지만 알 듯 모를 듯 미소를 머금었던 얼굴. 그다지 차갑지 않았을 지도 몰라. 내려서, 만져서 그 온기를 확인했어야 하는데…

비포장도로를 지나가고 있는지 택시가 간헐적으로 퍽, 퍽 하며 좌우로 튀었다. 불현듯 아직도 행선지를 말하지 않았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아, 택시는 비포장 도로를 지나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아까 그 여자처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간격을 두고 수도 없이 멍하니 거리 이곳 저곳에 서 있었고, 택시는 그 틈을 무시무시한 속도로 지나가며 닥치는 대로 그들을 치고 있었다. 앞유리는 그들이 쏟아낸 선홍색 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들어 있었고, 차에 치인 사람들의 시체들은 사방 팔방으로 마치 붉은 꽃잎처럼 흩어져 가고 있었다.

— 어.. 이…런…

— 거의 다 와 갑니다. 손님.

어디에, 거의 다 왔다는 거지. 눈에 띄게 차분해진 그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화가 나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그저 피로할 뿐이었고, 결국 잠이 드는 순간에 ‘다 왔습니다’ 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꿈에서 나는 그 여자, 그들처럼 멍하니, 그렇지만 혼자 거리에 서 있었고, 저 멀리 한 택시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이고 그것은 점점 가까와졌다. 아 눈이 부시다, 생각한 순간에 택시를 타고 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