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원하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널 만나길 단념한지 꽤 오래됐다. 페이스북은 휴업상태고, 오프라인 활동은 몇몇사람으로 — 실제로 열 손가락 안에 꼽지 싶다 — 줄어들었으니. 말할 것도 없다. 가끔 궁금해 눌러보는 카카오톡 속 사진은 매번 바뀐다. 같은 것도 있긴 하지만, 욀 만큼 익숙해졌으니. 그렇다.
어딘가로 여행이라도 간 듯, 이국적인 풍경의 사진들이 앞을 장식한다.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몇 차례 더 눌렀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세상을 너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내 좁은 그릇 안에서, 내 쫀쫀한 씀씀이 안에서 남들에게 멋진 것으로 비치는 것들은 대개 사치로 치부된다. 외국으로 떠나는 여행, 비싼 옷, 별천지의 음식들… 네 취향이 그곳에만 있다고 단정하진 않겠다. 그냥 이건 넋두리다. 넋두리야 늘 하던 것의 연장이니까. 내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서술. 예의 말처럼 여전히 나는 피핑 톰이고, 너는 아이돌처럼, 내게 박제된 기억이다. 언젠가의 봄에 손을 흔들던 걸 마지막으로, 그 뒷모습이 점차 흐릿해지고 있다. 바삐 살아간다고 자위하고, 여유가 없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일 때쯤 공허하고 외로운 시간은 반드시 생긴다. 침대를 뒹굴거릴 때, 길을 걸을 때, 혼자 밥을 꾸역꾸역 삼킬 때, 새벽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 여전히 나의 문제는 아닐까.
그러다 생각을 — 스물 여섯이 넘어서, 그러니까 만으로 25세가 지나고 나서부터 앞의 해에 살던 생각과 다른 방식의 생각을 하게 되었다 — 했다.
네가 원하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무엇이 되든, 그것이 어떻든 너와 함께 여가를 지내며, 너의 취향에 맞는 씀씀이를 얕은 고민으로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안된다면 잘난 사람이 되어 괜찮게 사는 모습이라도 보여주고 싶다.
스스로 깨우친 많은 것들은, 나의 유-청년 시절의 삶과 어쩌면 달랐다. 빈궁해보이지 않으려 문화예술의 여러 분야에 탐닉했고 — 그러나 몰두하지 못하고 딜레탕트로 남았다 — , 허장성세와 자기파괴의 변증이 나를 갉아먹을때쯤 자연스레 군에 들어갔다. 민간의 공기라는 약품으로 화학처리되어 위병소를 더 밟지 않아도 될때 쯤, 나는 나`가 되었다.
많은 것을 잃었고, 나`에는 다른 것들이 내려앉았다. 경험의 더께들이 쌓이며 좋은 것은 무엇이 있었나, 생각해본다. 없다. 술을 한동안 피했고, 사람을 한동안 피했고, 사람들에게 퍽 무례했고, 더욱 아는 체를 많이 했다. 니힐리즘에 빠진 때보다도 못하게, 기억에 남을 것이라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학교가 준 책무를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에 몰두했다. 누구에게도 자랑할 수 없는 약간의 학점이 보상으로, 복학생 가면이 소지품으로 주어졌다.
그러다 널 봤다. 만났다기 보다는 봤다고.
별 생각 없이 갔던 신입생 환영의 어떤 행사에서 꾸미지 않은 모습들이 그렇게도 좋았던 것 같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소심했지만, 그때는 더욱 그랬다. 감정과 호의를 구분하지 못했고, 스물 몇 해동안 리비도는 머릿속에만 맴도는 무엇이었다. 꽤 오랫동안 지켜보기만 했다. 즐거운 대학생활 되시라, 말하고 가끔 고개숙이며 인사하고. 그게 내 대학시절 가졌던 학과 내의 비-연애로서의 예의였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탐독했고, 몇 차례 욕심도 났지만, 잘 넘겨가며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떻게 친해졌지? 하는 사이에, 전철역에 서 있었다.
겨울에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었다. 겨울의 문제였을까? 몹시 서툴렀다. 거절당하는 것도 아닌 이야기를 질질 늘이며, 네 진을 빼놓진 않았을까, 이상하게 보이진 않았을까. 왜 그렇게 토해냈어야 했는지, 좀더 세련되게 말할 수는 없었는지, 평소와 다르게 선을 넘었던건지. 여전히 부끄럽다. 감정의 토로는 몇 분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스물 몇 해 살아오며 는 것은 눈치 뿐이기에, 추위보다 더 얼어붙은 공기를 느꼈다. 가끔 그 근처를 지나곤 하는데, 버스 앞 자리를 차고 싶을만큼 부끄러운 기분이다.
한 두차례 더 봤나, 영화를 보고, 학교에서 밥을 먹고, 내가 찾아가겠다고 약속하고, 지키지 않았지.
올해 짧은 연애를 했고, 차였고, 허덕였다. 마지막 방학이 찾아왔다. 연락했어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했고, 가장 먼저 떠올랐지만 단념했다. 자신감이 중요하다는데 사람들이. 너와 관계된 일에는 그걸 가져오질 못하겠다.
쓰고보니 굉장히 변태같다. 현실에 있는 너 아닌, 내 마음에 있는 너A를 놓고 내 맘대로 재단하는 것처럼 읽힌다. 아마도 내 기억속 마지막 남을 장기간의 감정이기에, 이렇게라도 써두어야겠다는 생각을 새벽 두 시에 하게 되었다. 제목은 멋져보이려고 썼는데, 결국 찌질하고 비루하네. 고치는 체 하고 있지만, 고치기는 요원하다.
꽤 오래전에 하던 말인데, 그래도 기다려 주면 좋겠다. 괜찮은 사람이 될게. 적어도 어제보다는 괜찮은 사람. 그러니 기다려 주면 좋겠다. 그래, 네가 원하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