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감정 없이 사는 삶이다. 굉장하다면 굉장한 일이다. 어린시절 온갖 생각에 휘둘리며 살았다. 이룰수 없(는 듯하게 보이)는 사랑에 관한 생각에 휩싸여. 그 생각만으로도 시간을 헛되이 보냈던 기억이다.

그에 비추면, 지금의 무감각은 마음의 쪼그라듦으로 요약하기엔 부족한 느낌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변태되기의 삶같은 느낌이다. 미녀들을 (무감각하게) 감상하고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거 참 아름답네. 생각만 하는 것. 그러나 그녀의 아름다움은 나의 일이 아닌 거지. 내 머리에서 떠오르는 생각과 그녀의 아름다움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전혀 없는 거다.

다른 점에서 나의 관찰은 여전히 내 자존감을 갉아먹긴 하고있다. 어리고 길쭉한 남자들은 늘어나고, 그들의 우월한 요소들을 발견할때, 나의 못남에 좌절한다. 렌즈를 착용하고, 얼굴에 신경을 쓰고, 복장을 단정히 하는 것으로 결코 극복될 수 없는 일들. 결코 아름다움이 나의 단어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들. 하지만 나이가 찰수록 뻔뻔함은 늘어난다. 못남을 감추기 위해 뻔뻔해지는 것은 건강에 좋다.

다시금 사랑과 먼 삶이 돌아왔다. 일 년 쯤 되었다. 돌아보면 유익한 기억이었다. 물론 (스스로에게, ex에게) 좆같음 또한 남았지만, 분명한 건 연애를 함으로써 완전히 새롭운 무언가를 알게 된 부분들이 있다는 것 정도. 더 쓰긴 그냥 그래.

외로움은 가끔 찾아오지만, 가슴뛰는 일은 스물여섯이 마지막이었다. 그게 가장 슬프다. 진짜 노인네/아저씨 된 기분이다. 유엠씨의 말을 빌자면 “결국 결혼정보회사가 모두 정리해 줄 거란 걸” 같은 기분이다. 이 말을 언젠가의 수업 뒤풀이에서 강사분께 했다가 경멸하는 투로 대꾸를 들었다. 내용은 잘 기억나진 않는다.

여튼, 오늘로 만 스물일곱 해를 보냈다. 아, 27년 전의 어머니의 몸에서 뛰쳐나온 나는, 이토록 퍽퍽한 삶을 살 줄 알았을까.

이걸 듣고 썼다. 개인적인 취항은 리스트 편곡이고, 덕분에 클래식 무지랭이가 리스트를 좀 들어봐야겠군, 하는 생각을 들게 해줬다. 사족으로 현대음악 말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도 느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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