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톡톡] 블라인드 테스트

실제하는 환상 오로라 http://www.iclickart.co.kr

얼마전 올리브오일을 바꿨다. 올리브오일이란 우리집에 간장과 고추장 같이 중요한 존재라 먹던 것이 반병 정도 남았을 때 미리 2병 씩 주문을 한다. 쇼핑은 신랑 담당이기 때문에, 신랑이 주문한다. 그런데 요번에는 늘 주문하던 그리스에서 나온 유리병에 든 것 대신에 스페인에서 나온 캔에 담긴 올리브오일을 샀다. 바꾼 것이 싸다고 했다.

나는 새로 산 오일이 맘에 들지 않았다. 첫인상에 포장과 용기가 예쁘지 않았다. 먹을 때 냄새도 독하고 목넘김도 좋지가 않았다. 요리에 넣을 때 보다 빵에 찍어먹을 때 도드라지게 맘에 안 들었다. 신랑에게 얘기를 하니,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자고 했다. 나는 승리를 자신했다. 미각이 나름 예민하다고 자부하기 때문이었다.

신랑은 나 보고 다른 곳에 가 있으라고 하고서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준비했다. 똑같은 종지에 동량으로 각각의 기름을 붓고 A와 B라고 표시를 했다. 그리고 다른 종이에 A와 B가 무슨 브랜드인지 자기만 볼 수 있는 곳에 적어놨다. 준비가 되었다며 나를 불렀다. 빵까지 구워놨다. 냄새만 맡지 말고 빵에 찍어서 맛보라고 했다.

“흠, 냄새만 맡아도 딱 알겠네.” 내가 대답하자 신랑은 포스트잇에다가 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적으라고 했다. 나는 술술 적어나갔다. 신랑은 정답을 공개했다. 결과는, 나의 패배. 정확히 반대로 써놨다. 충격이었지만 웃음이 나왔다. 둘이 동시에 ‘푸하하하’ 웃었다. 신랑은 한번 더 확인하는 의미에서 새것 병을 열어서 냄새를 확인시켜줬다.

패배를 기억하기 위해 책상위에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다.

신랑은 내가 실수한 이유를 설명해줬다. “첫인상에 마음에 안 들어서 맛까지 마음에 안 든거야.”라며 예전에 다 쓴 유리병에다가 부으라고 했다.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는 평소에 보이는 것과 실제 사이에서 늘 고민한다. 환상을 잘 부리면서도 속고 싶지 않다. 하지만 잘되진 않는다.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보이는 것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갈까.

잊고 싶지 않은 패배라 책상위에 포스트잇을 적어놓았다. 하지만 저것도 사진 촬영을 위해서 정돈된 글씨체로 두번째 적은 것. 속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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