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회고

생각해보면 감사할 거리가 많았다

Gordon Choi
8 min readJan 8, 2024

들어가기 전에

이번 포스트는 조금 편하게 작성하고자 한다. 필자가 아닌 나, 목차와 서론-본론-결론이 아닌 굵은 이벤트와 소회로 말해 볼 것이다.

2023년이 가고 2024년이 시작된 지도 어언 열흘이 다 되어간다. 작년 이맘때의 내가 그랬듯, 기록할 만 한 것들을 기록해서 기억할 수 있는 발자국으로 남겨 보고자 한다.

글을 쓰기 시작하다

작년 1분기에 처음으로 글또를 시작한 것이 글쓰기를 시작한 계기가 됐다. 기록하고 공유하는 개발자로서 뭔가 더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글을 꾸준히 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은 저 때나 지금이나 비슷하게 느낀다. 그래도 최근에는 꽤나 손에 익었는지, 아니면 그간 글로 풀어내고 싶었던 기술적 키워드에 대한 갈증이 나도 모르는 새 생긴 건지, 아무튼 처음 시작할 때보다는 쉽게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좋은 방법은 두 번 쓸 수 있고, 실수는 두 번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기록의 장점이겠다. 그건 기술적이든 아니든 똑같은 것 같다.

개인적인 기록도 이에 발맞춰 발전했다. 2023년에는 Obsidian을 쓰기 시작했는데, 블로그에 풀어내는 것보다 좀 더 러프하게 더 많은 것에 대해 기록해두고 있다. 엄청나게 적극적으로 여러 기능을 쓴다기보단 그냥 메모장 대용같은 느낌으로 쓰고 있기는 하지만. 인터넷에 있는 컨텐츠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느낄 계기가 있었기 때문에, 보고자 하는 것은 너무 미루지 않고 보고, 또한 얻은 인사이트를 기록하고자 매번 시도하고 있다.

메모를 꽤 많이 했다

이 시기에 대한 기록은 또한 글또를 하면서 남겨 봤다. 웃기게도 1/4분기 회고랑 글또 회고만 딱 썼다. 글감을 적당히 커버하려고 하는 과거의 나에게 실소하게 됨과 동시에, 그래도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는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이래저래 당분간은 계속 글을 쓸 것 같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한다.

근무 경험을 쌓다

2023년 여름, 모 기업의 전환형 인턴으로 합격해 일했다. 결과적으로 잘 되지는 않았지만, 내 안의 미묘한 의심을 없애 주는 계기가 되었다.

비전공자 출신 개발자는 으레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난생 처음 접해보는 무언가를 직업을 삼을 것을 전제하고 학습하는 삶을 산다. 인생의 물길을 바꾼 도전자들이 대개 그렇듯, 이들이 가진 “비전공자”라는 타이틀을 접한 다른 사람에게는 신기함 — 내지는 일부 사람의 경우 은근한 낮잡아봄 등— 의 반응을 자아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말하자면, 결심을 흐리게 한다.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이걸 직업으로 삼았을 때 나는 잘 해낼 수 있을까? 와 같은 의심이 더 빨리, 더 강하게 고개를 들게 만든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전자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다. 필연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개발과의 만남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흥미를 느꼈다. 개발을 시작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개발을 그만둔 나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고 싶은 나에게, 좋아할 만 한 새로운 것을 발견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두 번째, 직업으로써 개발자를 잘 소화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속단할 수 없었다. 언제나 이론과 실제는 다르고,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모르는 부분도 있다. 신입 수준에서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일말의 두려움이 남아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이 부분에서도 정말 다행히도 좋은 회사에서 인턴 근무를 할 기회를 얻었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확신을 갖게 됐다. 개발자를 오랫동안 가져갈 나의 직업으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고. iOS 앱개발을 처음 시작했을 때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이 또렷해지는 순간이었다.

근무할 때, 내가 완벽한 동료였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분하게도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일했다. 그리고 좋은 영향력을 많이 받았다. 내가 좋은 영향을 주었는지, 더 좋은 것을 남기고 올 수 없었는지 가끔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그 회사에 계신 분들 중 여전히 나의 안부를 물어 주시는 분들께 내심 감사한다.

부지런히 움직이다

2023년은 유독 외부 활동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나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며, 동시에 새로운 것에도 관심이 많고 생각의 폭을 넓혀 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것은 혼자만의 생각을 토대로 도출된 혼자만의 결론이었다.

그래서 이 또한 검증하고 싶었다. 보고 배울 만 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적극적으로 소통해 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2023년에는 글또 8기와 9기, Swift Coding Club에서 진행한 TCA/Tuist 스터디, 그리고 개발 동아리 DDD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외부 활동을 하며 처음 뵙는 분들을 많이 만났다. 이 중 글또 9기와 DDD는 지금 한창 진행중이고. 한편 작년에는 가지 못했던 Let’Swift에 가서 시선을 넓히기도 했다. 대체로 즐겁고 좋은 경험이었다.

그렇게 살아보니까, 나는 정말로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도 관심이 많고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왜 그렇게 느꼈냐고 하면 크게 근거는 없고 그냥 대체로 즐거웠으니까, 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알고 보니 내향적인 사람이고 안주하기를 좋아했다면 이런 경험들은 피로하기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단지 그뿐이다. 한편 iOS 개발자는 정말 한 다리 건너면 다 알더라.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상기했다(…).

이렇게 살면서 마찬가지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흔히 나의 수준은 내 주변 5명의 수준의 평균이라고 한다. 유유상종이라는 뜻도 있겠다만, 좋은 사람을 가까이 하라는, 의외로 상당히 액티브한 격언이다.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지만 이렇게 만난 분들은 정말 나에게 과분할 정도로 빛나는 분들이다. 내가 이들에게 미래에 어떤 재산이 되어줄 수 있을까 생각하곤 한다. 네, 이 부분을 읽고 계시는 당신께 드리는 말씀입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소회, 그리고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해 생각하다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작년 이맘때 쓴 2022 후기에도 언급했듯, 내가 손댈 수 없는 부분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심지어 하나 더 터졌고, 시장은 여전히 차갑다. 그래서 사실 이 회고도 조금은 더 어두운 글이 될 수 있었다. 오죽하면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따위의 문장을 생각하고 있었으니.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고 나서 생각해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사할 일이 의외로 많았다는 것이다. 2023년 나의 삶의 큰 줄기를 돌아보고 맺으려고 하니 결국 끝에 남는 것은 감사였다. 감사할 만 한 일이 나에게 많이 일어난 것도, 그런 것들에 대해 감사할 만 한 일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된 것에 대해서도, 통틀어서 감사할 만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디테일한 면에서 조금 아쉬운 점은 있다. 2023년은 전반적으로 구직에 집중한 해였다. 아니, 구직에집중한 해였다고 느낀다.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개발자처럼 살기보다는 취업준비생처럼 살았다. 회사에 소속되어 있지 않음에도 회사에 예속된 삶을 살고 있었던 자신을 발견했다. 주체적으로 살기보단, 객체로 살았다. 이런 데에서 객체 지향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구멍이 많이 뚫린 깃헙 잔디를 보면 내심 아쉬웠다. 조그만 프로젝트는 여럿 했지만, 공개하기 곤란한 것들이 많기에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2024년에는 조금 더 개발자답게 살기로 했다. 2023년 한 해 적지 않은 지식을 쌓았다. 이것들을 실제 결과물로 만듦으로써 이 지식을 개발자로 살아가는 평생 동안 사용할 수 있도록 날카롭게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트렌드에 대한 관심도 항상 가지고 있기로 한다. 이전 포스트에서 구본신참의 마인드셋에 대해 언급했다. 신입/주니어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기다. 하지만 동시에 세상에 이득을 가져다 주는 개발자로서 나의 영속성을 보장하려면 새로운 것에도 항상 귀기울이고 있어야 한다. 이를 또한 상술했듯 날카롭게 연마하고자 한다. 두 가지 다, 사실 개발자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개발자답다” 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지?

그리고 하나 더, 비록 부질없는 새해 다짐 삼대장이 금연 금주 운동이라지만, 올해는 운동을 꾸준히! 좀!! 제발!!!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기 때문에, 건강한 신체를 확보함으로써 세상을 보는 나의 해상도를 더 또렷하게 만들고 싶다는, 지금 봐도 매우 멋있어 보이는 작년의 다짐이 있었다. 결과는? 뭐.. 더 찌지는 않았다. 작년 이맘때 같은 다짐을 할 때와 달라진 점이라면 애플워치가 생겼고, 누적적 삶에 대한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는 점. 매일매일의 기록에 운동한 것을 남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볼 것이다. 사실 이 회고도 운동하고 와서 작성했다(…).

2023년 함께해주신 분들께, 그리고 적절히 잘 살아낸 나 자신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2024년에도 잘 부탁드린다는 것도.

내 주변의 모든 이가 행복한 새해를 맞기를. Photo by Ian Schneider from Unsplash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