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희>를 봤어요.

우리선희를 봤어요. 나오는 세 남자는 선희와 각각 단둘이 한번의 술자리를 갖는데, 그 한번의 술자리로 모두 선희에게 빠지게 돼요. 선희는 얄밉게도 자기가 목적으로 하는 것을 얻고 떠나지만(캐릭터 설정 상 영화 전에도 언제나 그래왔듯이), 다른 남자들은 서로가 공유하면서도 어긋난 선희의 이미지에 머물러 서성여요.

그 이미지는 모두 선희를 객관적으로 바라본 이미지가 아니라, 선희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고 생각한 이후에 미화된 이미지에요. 이 한 대상에 대해 지속적으로 “미끄러지는” (홍상수의 입을 빌린 표현이기 때문에 쌍따옴표) 판단과 이미지가 이 영화의 주제에요. 이 변화는 김상중으로부터 직접적으로 표현되는데, 짧은 시간 선희를 생각하며 쓴 두 개의 글의 내용이 매우 상반돼요. 이 두 글이 쓰여진 시점 사이에는 선희와의 술자리와 선희로부터 받은 포옹이 있었죠.

영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주변사람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어요. 이미 사람들 만나기 전에 판단을 하기도 하고, 말하고 교감하기 전에 말투나 외모로 편견을 갖기도 하죠. 그렇다고 관계를 맺으면서 “깊이 파본다고 해도”(이선균의 대사를 빌어서 쌍따옴표) 그 대상에 대한 판단이 정확해지는 것은 아니에요. 이전에는 대상과의 거리때문에 이미지의 왜곡이 생겼다면, 이제는 대상과 가까이서 관계를 맺으면서 생기는 사랑, 욕망, 연민등으로 판단에 왜곡이 생겨요.

대상에 대한 왜곡된 판단의 원인 중 호감 혹은 욕망을 이 영화는 다루고 있어요. 우리들은 어떤 대상이 대단하기 때문에 반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반한다음에 그 대상을 대단하다고 판단하게 될 때도 있어요. 그 사람이 그자체로 무엇인지 보다는 나에게 무엇인지가 그 사람의 이미지로 침투하는 것이죠. 간단히 말해서 판단 후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고 그 관계가 대상에 대한 판단에 영향을 미치게 되죠. 남자셋의 선희에 대한 생각은 “내가 욕망해야 마땅한 대단한 여자”가 된거에요.

영화의 남자 셋에게 선희는 욕망의 대상이 되어 객관적 판단을 내릴 수가 없어요. 굳이 정재영과 정유미의 상황을 빗대어 표현하자면, “할 뻔 했는데 아직 못한 여자”가 되어버렸죠. 이러한 이유들로, 세 남자의 선희에 대한 판단은 계속해서 “미끄러지는”거에요, 바로 술자리를 기점으로. 그리고 선희의 도발적인 말과 행동이 트리거가 되어서요. 이 주도권을 선희가 쥐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캐릭터에요. 이 주도권을 여자가 쥐고 있다는 점을 알고있다는 점에서 정재영은 똑똑하지만, 알면서도 당한다는 점에서 제일 바보같애요.

애초에 선희에 대해 언급되는 영화 속 표현자체가 모순적이면서 모호해요 “내성적인데 용기있다’처럼 상반된 판단을 붙여놓은다던가 “착하다”처럼 가장 애매모호한 칭찬을 쓴다던가. 영화 건너 우리도 이런 모호한 말들로 정체된 이미지로 대상을 붙잡으려고 하지만, 절대로 단 한순간도 잡을 수 없어요. 남자 셋이 영화 내내 바보같아 보이는 것도 이 것 때문일거에요. 남자 셋 다 선희에게 인생에 대해 멘토링을 해주지만 그전에 선희조차 잘 알지도 못해요. 아마 감독도 이런걸 의도했을 거 같애요. 대상을 몇마디 말로 정의해버리는 것이 거리를 두고 보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지요. 한 가지 더 아이러니 한 점은 선희는 이 자신을 정의해버리는 몇마디 말(=대학추천서)을 얻기 위해 이 남자 셋 앞에 나타났다는 점이죠.

남자 셋이 창경궁에 모여 욕망의 대상이 된 선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요. 근데 이 영화가 끝나고서 또 선희에 대한 이미지는 변하게 될거에요. 왜냐하면 선희는 또 당분간 연락도 없이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이제 선희는 남자들에게 “욕망을 채워주지 않은 채 달아나버린 대상”이 되었으니까요.

+남자들 술자리에 꼭 나오는 이야기는 “내가 할뻔했던 여자”에 대한 이야기에요. 오히려 했던 섹스에 대한 이야기보다 “할 뻔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을지도 몰라요.

++ 듀나의 말투와 홍상수가 반복하는 개념을 섞어서 영화의 감상을 써봤어요. ~다로 끝내는 것보다 말하듯이 글이 나와서 편하네요. 이 글조차 우리 선희로부터 미끄러졌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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