沖縄 2013 & 2014

그것은 아주 짧은 여행이었다. 같은 섬을 아주 다른 방식으로, 서로 아무런 연결점을 찾을 수 없는 이유로 두 번 머물었다. 그동안 나는 그곳에 가보았다고 말할 수도 없을만큼 오키나와의 아주 작은 조각들을 보았을 뿐이다.
오키나와는 슬픈 섬이다.
2013년 3월 21일
아무 생각 없이 비행기표를 끊었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 두 명과 동행했다.
2014년 5월 28일 오후 1시 경
두 번째로 그 섬에 들어간 것은 출장이었다. 서울에서의 회의가 끝나고 곧장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오전 10시 15분 비행기를 타서 12시 35분에 나하 공항에 내렸다. 지난번보다는 좀 더 여름에 가까운 계절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했다고 생각했다. 햇빛이 그때보다 더 따가웠고, 자외선에 발이 신발 모양을 따라 새카맣게 탔다. 썬블록을 발등에도 발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3년 3월 27일 오후 2시 경
3월 말이었음에도 공항에 내렸을 때는 후텁지근한 공기에 숨이 턱턱 막혔다. 트렁크를 돌돌 끌고 모노레일을 타고 시내 구석진 곳에 있는 호텔에 짐을 풀었다. 시간이 애매해서 슈리성에 가기로 했다. 피글렛이 역 플랫폼에서 뭔가를 까먹는 사진이 남아있다.
가는 길에는 이국적인 꽃들이 피어있었다. 선명한 색은 오키나와의 꽃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슈리성에서 본 전통의상에는 인상적인 노란색과 보라색과 붉은색이 있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꺾어오고 싶은 색이었다. 성에는 새 것 같은 돌이 많았다.
2013년 3월 27일 오후 8시 경
유명하다는 쟈키스 스테 — 키 하우스에 갔다. 줄을 서서 한참 기다렸다. 유명인들의 사인이 벽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아마도 텐더로인과 뉴욕 스테이크를 먹었던 것 같다. 이 집은 텐더로인이지. 라지 사이즈로. 맥주는 오리온이다. 오키나와에 갔으니 오리온을 마셔야지. 오리온 맥주에 홀딱 반한 것 같다. 나는 이날도 나 혼자 맥주통에 빠졌다 나온 사람처럼 얼굴이 벌개져서 나왔다. 대충 고쿠사이 도오리를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온 것 같다. 오래된 기억이다.
2014년 5월 28일 오후 2시 경
버스 터미널 근처로 호텔을 잡았다. 다음날 일찍 버스를 타고 기노완 시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공연히 이동에 진을 빼고 싶지 않았다. 익숙한 공항 터미널에 내려 익숙한 모노레일을 타고 지난번에는 지나쳐 갔던 역에서 내려 바라보기만 했던 천변을 따라 걸어갔다. 호텔에 짐을 풀고 슈리성에 갈까 고쿠사이 도오리에 갈까 고민하다가 오키나와 현립 미술관으로 갔다. 아무리 콘크리트 덩어리같이 생긴 미술관 모양이 마음에 안 들었다고는 해도 미술관 사진은 하나도 찍지 않고 애매한 오모로마치 역 사진만 찍었다. 발등이 타는 게 신경쓰인다.

2013년 3월 28일 아마도 오전 9시 30분 경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 오키나와 섬 중부에 위치한 모토부 항으로 왔다. 배로 15분 떨어져 있는 이에 섬에 들어가기 위해서이다. 섬의 3분의 1이 미 해군 비행장인 이에지마는 아주 작은 섬이어서 자전거로 45분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다고 해서 가기로 결정했다.마는, 자전거 투어에 실패하여 잠시 G.I — 제인이 아니고! — 비치라는 곳에서 한참을 놀다가 결국 택시를 타고 초고속으로 한바퀴를 돌았다. 미터기 내려가는게 그토록 무서웠던 적은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카지노 슬롯 머신 돌아가는 것보다 더 빨랐을거다.

날씨가 흐린 것이 안타까웠다. 일기 예보를 확인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했는데 결국 흐렸다. 그렇지만 않았어도 하얀 모래 에메랄드빛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우리는 새카맣게 탈 수 있었을텐데. 덕분에 네 색도 내 색도 아닌 바다 색을 바라보며 한여름의 새파란 바다 색을 상상했다.

2014년 5월 29일 오전 7시 30분 경
사실 모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제대로 적어놓은 것도 없어서 전적으로 희미해져가는 기억에 의지하여 서술한다. 오전 7시인지 9시인지 나하 버스 터미널에서 기노완 시 후텐마 비행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두 시간 쯤 지겹도록 가면 사키마 미술관 근처 정류장에 내리게 될 것이다. 거기서 내려서 15분 정도 걸으면 도착할 것이다. 오키나와에서 버스는 두 번째이다. 이번에는 모토부 반도까지 올라가지 않고 그 중간쯤에서 내린다. 약 한 시간 정도 걸릴 예정이다. 회의라면 회의고, 사전 조사라면 사전 조사라는 명목으로 가는 것이지만 사실 작품 대여 협의를 다 끝마치고 와야 한다. 담당 큐레이터가 자기 할 일을 하지 않아서 내가 그 일을 하러 가는 것이다. 협상에 가이드 라인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 불러주는 숫자를 들고 돌아와 보고하면 데우스 엑스 너는 뭐했냐 식의 질타를 듣는다. 아무튼 어쨌든 작품은 광주에 와야 하므로 나는 기노완에 간다.

2014년 5월 29일 오후 1시 경
여기가 사키마 미술관이다. 20세기 중반 태평양 전쟁 시대 양식을 따른 건물이지만 아늑한 곳이다.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하여 주변을 둘러 볼 수 있었다. 전부 미군 기지 아니면 주택가이다. 근처에 소방서가 있어서 ‘불조심’ 사진을 찍었다.

2013년 3월 28일 오후 2시 30분 경
오키나와 소바와 소키 소바를 먹었다. 이제 가물가물해졌지만 잊을 수 없는 국물맛이었다는 것 만큼은 기억하고 있다. 이에지마에서 모토부 항으로 돌아와 길을 건너면 덩그러니 있는 미나토 쇼쿠도 — 부두식당 — 에서 실패한 자전거 여행으로 주린 배를 헉헉거리며 허겁지겁 채웠다. 집에 싸가고 싶었다. 진짜로.
2013년 3월 28일 오후 3시 ~ 6시
츄라우미 수족관에 갔다. 가는 길에 자색 고구마 아이스크림을 사서 후식 삼았다. 배도 부르고 간식도 먹었고 눈요기 하는 내내 ‘우와 니모!’, ‘저거 니모!’ 수준 이상의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 것 같다. 고래상어 세 마리는, 나중에 제주 아쿠아리움의 꼬마 고래상어를 보고나서야 오키나와의 고래상어가 얼마나 대단한 녀석이었는지를 뒤늦게 알았다. 그때는 그냥 당연한 건 줄 알았다.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면 소리를 질러주겠다. 우와아아아.

돌고래 밥주기를 볼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튀어나왔다. 차 시간이 애매해서 달리기를 좀 했다. 나름 여유롭게 나하로 돌아온 것 같았지만 사실 모토부 항 터미널에서 차를 놓칠 뻔했어서 자칫했으면 아주 난감했을 뻔했다는 건 비밀에 부쳐두자. 돌아오는 길에는 나하 시내에 들어오면서 길이 조금 밀렸다. 이리 저리 빙글빙글 돌아오는 길에 피글렛도 푸우도 다들 곯아떨어졌다. 저녁은 아주 맛있는 것을 먹어야 했다.

2014년 5월 29일 오후 3시 경
오키나와 기노완 시에는 사키마 미술관이 있다. 기노완 시는 오키나와 섬의 중남부, 섬의 남부 4분의 1 지점에 위치한다. 국도 58호선이 지난다. 나도 나하 시에서 국도 58호선을 타고 기노완 시에 갔다. 이 국도 58호선을 두고 양쪽으로 후텐마 미국 해병대 비행장과 캠프 즈케란이 있고, 사키마 미술관은 후텐마 비행장의 아주 조그마한 땅 한 조각을 주일미군 오키나와 방위국과의 끈질긴 협상 끝에 “반환”받은 곳에 지은 것이다. 내가 만난 오키나와 사람들-특히 미술관 사람들-은 미술관 부지의 반환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후텐마 기지 반환을 위한 힘겹지만 희망찬 첫걸음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후텐마 기지는 카데나 공군기지와 더불어 주일미군의 오키나와 지역 양대 거점이다.

사키마 미술관에는 언제나 전시되고 있는 그림이 한 점 있다. 마루키 이리, 마루키 토시 부부가 그린 오키나와 전투도(1984)이다. 작은 미술관에서 절반에 가까운 공간을 나누어 그림 한 점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그림 앞에는 긴 의자 세 개가 있고 ‘차분히 앉아서 관람하십시오’라고 쓰여있다. 이 그림은 오키나와 현 나하 시 서쪽 30 km 에 위치한 토카시키지마(渡嘉敷島)에서 태평양 전쟁 시대에 있었던 “집단 자결”사건을 그린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오키나와 현에서 일반 주민이 집단으로 자살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를 일반적으로 ‘집단 자결’이라고 일컫는다. 연구된 바에 의하면 오키나와에서 약 1000여 명이 보고 되었으며, 이 그림의 주제인 토카시키지마의 희생자가 368명으로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때의 오키나와 ‘집단 자결자’의 수는 2차 대전 오키나와 전투에서의 양민 사망자 수는 9만 4천명의 1%에 달한다. 이 사람들은 엄밀히 말해 자기 의지로 죽은 것이 아님에도 ‘자결’이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미군의 공격은 격심했다. 미군이 차례차례 방어선을 뚫고 올라올 때마다 일본군은 차례차례 다음 방어선으로 후퇴해야 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군인들 뿐만아니라 주민들에게도 할복 명령을 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수류탄을 터뜨려 죽거나 서로 목을 졸라 죽었다. 일본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역사 교과서 표기 문제를 둘러싼 재판을 통해 이 죽음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지를 논쟁하고 있다. 집단으로 목숨을 끊은 현실이 일본군의 작전에 의한 강제나 유도, 명령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집단 강제사’, ‘강제사’로서의 본질을 바로잡지 않으면 진실을 왜곡하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그때 미술관에서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그림이 어떠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림이 80년대 민중미술, 판화의 전통, 검은 먹선, 이러한 키워드들과 일맥상통하는 것들이 있다는 느낌과, 강요배와 같은 작가들과 맞닿는 지점들이 느껴졌다. 나는 내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와 내가 처한 상황과 한국에 돌아가서 내가 해야 할 일에 이미 머리가 뒤죽박죽이었고, 거기에 관장님의 — 일본어로 된 — 친절한 설명이 더해져서 걸어다니는 거대한 반죽이 되고 있었다. 단 한 가지 분명히 알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분노와 투쟁심과 약간의 수치심과 자긍심, 연대감, 자존심이 한데 섞인 관장님의 눈빛이었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혁명의 이념을 계승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그런 단단한 자긍심 어린 눈빛.
2014년 5월 29일 오후 6시 경
관장님 부부께서 나하 시에 나갈 일이 있다고 데려다 주시겠다고 하시더니, 갤러리 오키나와에 들러 참여작가인 킨조 미츠루 작가의 전시를 보여주었다. 갤러리 오너인 우에하라 세이유 상도 만났다. 미군 혼혈인 것 같은 60대 즈음의 초로였다. 오키나와와 한국, 특히 5.18을 겪은 광주에 관심이 많고 두 나라, 두 지역의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경험과 아픔을 공유하고 예술을 통해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모시고 일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송구스러울 정도로 열성적이어서 몸둘 바를 몰랐다. 죽은 자와 산 자의 고통, 정치라는 괴물을 이야기하는 우에하라 상의 나이 든 얼굴 위의 눈동자가 유리알처럼 맑았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다.
나하 공항에서 관장님의 아드님을 픽업했다. 할 일이 없으면 — 이 미팅만을 위해서 오키나와에 온 나는 미팅이 끝났으니 할 일이 없다 — 저녁을 먹고 가라시기에 나하 시를 떠도는 외로운 식신이 되어 관장님 가족을 따라 나섰다. 혼자 관광와서 먹기 어려운 오키나와 가정식을 눈치 없이 냠냠 와구와구 먹고 삭힌 두부에 아오모리까지 주시는 대로 덥석덥석 받아먹었다. 회사 좋다는 게 이런 거로구나. 잘생기고 예의바른 내 나이 또래의 관장님 아드님은 도쿄에서 음악을 하는데 공연이 끝나서 집으로 돌아왔다나 어쨌다나 하는 이야기를 뭐 언젠가는 돌아와서 가업을 잇겠지 생각하며 듣는 둥 마는 둥 먹었다. 오키나와의 아오모리는 정말이지 훌륭했다. 관장님 일가는 나를 아주 잘 먹이고 차에 태워서 호텔까지 데려다 주셨다. 한참 회사에서 여러모로 고생을 하던 차에 이리 부둥부둥해주시니 감격스러워서 잠시 보은하고싶은 마음이 차올랐다.
2013년 3월 28일 오후 8시 아니면 9시 경
트위터에서였던가, 추천을 받았던 곳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한번 이전을 해서였는지 찾아가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공터 찾기에 최적화된 나의 내장 내비게이션은 또다시 신축건물부지 공사장을 찾아내었고 실컷 자다 깨어 뱃가죽이 등가죽까지 가서 붙은 굶주린 두 야수가 언제 나를 물어뜯을지 몰라 불안했다.
무후테夢風亭라는 이름의 오키나와 요리 전문 이자카야였다. 유명한 곳이라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관광 책자에 나왔던 이런 저런 유명한 음식은 거의 대부분 다 먹어 본 것 같다. 고야 챰푸르가 특히 맛있었다. 쌉싸름한 것이. 주인장 아저씨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사진을 찍혔다. 돌아와서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서울에서 온 여자애들 3인방’이라는 제목으로 포스트가 올라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혼자 술독에 들어가서 자고 나온 것처럼 벌겋고 나머지 두 야수는 멀쩡하다. 통 큰 피글렛이 저녁을 쏘겠다고 하여 푸우와 이요르는 배불리 먹었다.
2013년 3월 29일 오후 1시 경
나하 공항 국제선 청사에 왔다. 체크인을 하고 국내선 청사에서 밥먹고 놀기로 했다. 짐을 부쳐버렸으니 많은 것을 사지는 못할 것이라는 의미없을 포석을 깔고 들어가본다. 무언가로 배를 두둑히 채운 두 야수가 스티커 사진을 찍자고 한다. 일본에서 스티커 사진은 처음 찍어봤다. 그러고보니 일본에 그렇게 많이 왔어도 스티커 사진을 찍을 일이 없었다. 출장을 와서 찍을 것인가, 혼자 배낭여행을 와서 찍을 것인가. 아아- 스티커 사진의 마더 컨트리는 눈을 크게 만들어주는 기술도, 키라키라 하게 만들어주는 기술도, 배경 기술도 해협 건너 반도의 그것과는 다르구나.

2014년 5월 30일 오후 1시 경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오키나와를 떠난다. 앞으로 오는 오키나와는 지금까지와는 같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지인들이 생겼고, 땅의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들이 생겼다. 아름다운 태양과 에메랄드 바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나서부터는 더이상 즐거운 마음만으로 이곳에 올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