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과 무지 사이

너무 의미를 찾으면 유난 떠는 것 같고, 너무 경쾌하면 무지하고 이기적인 것 같고. 어떤 태도와 어떤 마음가짐이 맞는건지 고민이 될 때가 가끔 있다. 특히 요새 그렇다.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은 듯)

“결국은 균형과 조화가 중요하다”라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어디에 서있어야 밸런스를 찾는건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이번주 토요일 중앙일보에서 이에 대해 와닿는 글을 읽었다. 그 글도 ‘어디’를 말해주진 않았다. 그래도 참 맘에 드는 글이었다.

우리는 마음속에 작은 불씨를 키우며 산다. 어떤 사람에게서는 화려하게 타지만, 대부분 흐린 날 연무 속의 가로등처럼 은은하게 탄다. 개성과 어우러져 사람마다 다른 색으로 타기에 불씨에 붙이는 이름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열정이라 부르고, 어떤 사람은 헌신이라 부르고, 어떤 사람은 인간다움이라 부른다.
이름은 달라도 이들은 모두 의미를 향하여 깜박거린다. 하루하루의 생활을 꾸려나가기에 바쁜 일상에서 고개를 들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삶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묻는다.
의미를 성찰하는 모습은 다른 모습과 적절한 조화를 이룰 때 온전한 빛을 발한다. 즐기는 방법을 잊은 채, 툭하면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숨 막히는 가치론자의 삶은 윤기가 없어 아무도 부러워하지도 가까이 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순간을 즐기며, 여유롭게 대하는 모습이 어우러질 때 고리타분함을 넘어 더 깊은 진지함으로 익어간다.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유쾌한 모습은 성찰의 태도와 어우러지지 않으면 경박하다. 성찰과 어울릴 때, 경쾌함은 멋을 얻는다. 결국은 균형과 조화가 아닌가 싶다.
물질이 우리네 삶의 목록에서 윗자리를 차지하고 경쟁이 도를 넘어서는 시절에 의미와 가치를 이성적으로 성찰하는 일은 때로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평가절하하고 해체하여 짐을 덜고 싶은 마음이 생겨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의미가 점철된 예술, 종교, 윤리, 문학 없이 살 수 없게 만들어져 있다. 의미 없이 역사를 이해할 수 없고 역사가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인간의 가치를 과신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힘들여 쌓아온 우리만의 자산을 소홀히 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 균형과 조화를 다시 생각할 때다. … 귀한 것은 귀하게 여길 때 귀하게 쓰인다. 냉소가 도를 넘어 불씨를 꺼트리지 않도록 불씨들이 모여 훈풍을 만들 수 있도록 무엇을 해야 할지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겠다.
[삶의 향기] 의미 수난시대
김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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