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과 카잔차키스

May Jang
May Jang
Aug 26, 2017 · 2 min read

요즘 같으면, 책들에게 넘 고맙습니다. 공감받고 싶은데, 또 심연이고 싶을 때 저를 우쭈쭈해주거든요.ㅎㅎ 어떤 순간엔 그 어떤 실존인물(?!ㅋㅋ)들보다 책을 쓴 작가들과 소통이 더 잘될 때도 있습니다. “으응 그랬구나”, “아니 근데,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라고 달래줍니다.

근데 소통을 한다는 게, 누구의 말만 절대적으로 듣는 게 아니니까 욕심을 부려봅니다. 그 시도 중 하나는 한번에 책을 여러권 읽는 습관이고요. 좀 산만하긴 한데, 여러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안심이 돼요. 그러면 또 확장된 다른 세계를 보게 됩니다. 그들끼리의 관계인데요. 서로 머리 끝까지 충돌하고 갈등하다가, 결국 ‘모순’이라는 한 지점에서 화해합니다. 아 이게 답이라는 건 아니고 그냥 보면 재밌잖아요? :)

예를 들어 제인 오스틴의 ‘설득’과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동시에 같이 읽으면요-일단 정말 다르죸ㅋㅋ

카잔차키스는 그만의 세상의 틀을 정의하고 그 틀과 화자, 그 틀과 조르바, 조르바와 화자의 관계, 그리고 가장 주요하게는 화자의 내적 갈등, 사유를 보여줍니다.

완전한 자유(조르바 혹은 초인), 정신, 바보에 손을 내밀고 싶어하는 내면마치 ‘보통’, ‘평균’의 범주에 넣는 이고요. 화자는 그에 대해 복잡한 심경을 갖는 사람입니다. 주로 동경이겠지만 저는 이 지점이 싫습니다.

그럴 때 설득의 앤 엘리엇이 등장합니다. 엘리엇은 시스템과 개인의 관계를 끊임없이 정의하고 바꿔갑니다. 우당탕탕하면서 결혼과 행복이 양립할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묻죠(결혼은 시스템과 제도의 대표, 행복은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겠고요).

그런데 결국 모두는, 사실 조르바조차도 화자와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모순을 겪고 있습니다. 카잔차키스는 내면의 모순과 갈등을 글로나마 써내려간 것이고요(그러니 캐릭터나 스토리가 모순적일 수밖엨ㅋㅋ). 제인 오스틴은 관찰하는 것들을 집요하고 섬세하고 신중하게,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책상을 쾅 내리치면서 풀어냅니다(그러니 또 모순적일 수밖엨ㅋㅋ).

얼마 전 리드 해이스팅스가 넷플릭스의 경쟁자를 ‘잠’이라고 이야기했는데요. 이렇게 아무말할 거면, 세상에 없는 제인 오스틴이나, 뭐..김영하 씨 이런 분들도 디지털 콘텐츠 기업의 경쟁자로 하셔도..:) 그니까 시간이라는 한정적인 자원 안에서 쪼갤 수 있다면 책을 추가하고 싶네요.ㅎ

저의 모순은 아마 끝까지 계속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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