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감동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젤다 ‘이후’의 액션 RPG역사(1)

이전 회에서, 초대 <젤다의 전설>이, 경험치 시스템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원조 액션 RPG (ARPG)’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지 설명했다.

이번 회에서는, 그 이후의 ARPG의 진화를 이야기하고, 마지막에 ARPG를 세상에 전파시킨 <이스>의 성공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말하고자 한다. <이스>가 다른 게임보다 앞서서 보여준 요소는 여러가지이다. 그것들이 널리 퍼져서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도리어 독창성이 떨어진다고 하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초래했다. 그것을 파헤치는 것이 이번 글의 한가지 목적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젤다>를 좀 더 다뤄보도록 하겠다. 이 <젤다>라고 하는 거대한 선배가 추구했던 방향성을 다른 게임들이 쉽사리 쫓아가지 못했기 때문에에 ARPG가 현재의 모습이 되었기 때문이다.

밀도와 넓이를 모두 갖춘 젤다의 ‘모형정원’

<젤다>시리즈가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지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그 근저에 있는 변하지 않는 본질이란?

— 그것은 ‘모형정원과 같은 성격’이다.

‘모형정원과 같은 성격’이란 적과의 첫 전투, 지형 조건에 의해 변화하는 전술, 처음 보는 풍경을 봤을 때의 감동, ‘꼭 가보고 싶었던 장소’에 마침내 도착했을 때에 달성감, 그림 한장으로 정리해보면 그렇게 넓지는 않은 맵에 느끼는 ‘장대했던 모험’의 추억… 그 모든 것들이 한정된 디지털 공간 안에 담겨져 있는, 엄청난 밀도를 말한다.

<젤다의 전설>

초대 <젤다>의 맵은 ‘바로 저기 보이는 곳’에 어떻게 해야 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끔 만드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서 레벨3의 던전은, 스타트 지점으로부터 왼쪽으로 3번째 구역에 있어서, 레벨1(위로 4번째 구역)보다도 실제 거리는 가깝다. 그러나 실제로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여정은 훨씬 멀게 느껴지게끔 되어 있다. 그러한 ‘바로 저기 보이는 곳’에 가고 싶다고 하는 마음으로 부터 ‘모험’이 성립하는 것이다.

지금도 RPG에서 ‘멀리 돌아가는 길’은 필수요소로 ‘바른 길은 가장 멀 것 같은 길’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그러나 <젤다>가 다른 RPG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두 가지이다. 먼저, 한번만 쓰고 버려지는 루트가 없고 어떤 길도 여러차례 지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또 한가지의 다른 점은 다양한 형태의 가득한 담겨진 ‘밀도’와 정말로 모험과 같은 기분을 맛볼 수 있는 ‘넓이’를 양립한 ‘모형정원과 같은 성격’이다.

<젤다의 전설1> 지상 맵

그 이전의 ARPG에서는 아무것도없는 황야를 무작정 걸어가게 한다든가, 아무런 단서도 없이 사막에서 아이템을 찾게하는 등, ‘넓이’란 ‘횡댕그렁한 체험’과 같았던 경우가 많았다.

모형정원은 원래, 조그만 상자 안에 아기자기한 모형들을 배치하여 ‘작은 세계’를 표현하는 취미의 일종으로, 에도 시대 후기부터 시작하여 메이지 시대까지도 유행했다. 오늘날의 철도와 전차 등의 디오라마에도 그 DNA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원래의 모형정원은 ‘바깥에서’ 바라보는 것이었지만, <젤다>는 ‘안에서’ 체험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초대 <젤다>는 고작해야 16x8=128개의 필드밖에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치밀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지상 맵은 평지, 숲, 강 등 베리에이션이 풍부했고, 변화가 다양해서 쉽게 질리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중요 필드는 이른 시점에 흘낏 보여줘서(나루터 건너편 해안가에 던전이 보이는 등)공략의욕을 불러일으킨다.
 젤다 개발에 참가했던 스태프 다수가 병행 개발했던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에서도 “어떻게 저기까지 점프를 하지…?” 싶은 장소는 어김없이 워프존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게다가 [젤다]는, HP와 장비는 유지되었지만, 게임을 다시 켤 때마다 매번 스타트 지점부터 다시 하게끔 되어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유저에게 불합리하다고만 느껴지지 않게끔 하는 궁리가 있다. 각 던전까지 여정에서 마주지는 적이 레벨에 따라 강해진다든가, 다양한 루트를 조합하여 진행하게 만들어 각각의 경험을 ‘새로운 체험’으로 만드는 등, 제한된 하드 소프트 환경을 치밀한 설계로 보충하고 있었다.

이런 맵의 조합 방식은 80년대 중반, ‘레벨 디자인’적 발상의 최첨단이기도 하며, 이 정도의 ‘밀도’와 ‘넓이’를 추구했던 예도 달리 찾아보기 어렵다. PC는 패미컴과 디스크 시스템보다 비교할 수도 없는 넓은 데이터 용량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필요를 느끼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정용에서는 반대로 디스크 시스템을 개발하는 닌텐도 이외의 서드파티가 ‘넓이’를 추구하기는 어려웠다. 그 개척자로서의 경험이 <젤다>시리즈를 지금까지도 지탱하고 있는 것일테다.

2017년 3월 3일, 닌텐도 스위치로 발매 예정인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어째서 ‘젤다’의 후계자가 없었던 것인가?

<젤다>가 ARPG를 게임 장르에서 주류 중 하나로 만드는 든든한 뒷배경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같은 방식인 ‘탑뷰(위에서 내려다 보는)형’ ARPG가 젤다만큼 인기를 끌었는가 하면,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긴 게임이 의외로 적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실제로, <젤다>의 첫작품이 나온 다음 해인 1987년에 탑뷰형(엄밀히는 <하이드라이드>의 후발주자도 포함되겠지만)게임, <카린의 검>과 액션성은 없지만 맵 전환 방식이 젤다와 흡사한<인드라의 빛>이 발매되었다. 거기에 88년에는 <댄디제우온의 부활>이라고 하는 게임도 발매되었던 것 같지만,이런 작품들은 타이틀 이름을 들어도, 그다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 후 롬 카트리지 용량은 디스크 시스템보다 커져, 데이터 공간의 제약은 적어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젤다>와 같이 ‘넓이’와 ‘밀도’를 동시에 추구한 ARPG는 주류가 되지 못했던 걸까.

그 까닭은, 언뜻 따라하기 쉬워보여도 ‘모형정원과 같은 성격’이 섵불리 따라하기 어려웠기 때문이 아닐까. 퍼즐과 같이 겹겹이 꼬인 모형정원은 간단히 흉내낼 수 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우리들에게 한가지 교훈을 준다. 게임 뿐만이 아니라 , 어떤 ‘놀이 형태’가 하나의 장르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흉내내기 쉬운 것’이 필수라는 것을.
 지금 라이트노벨 시장에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이세계 전생물도 어찌되었든 ‘형태’를 흉내내기는 쉽다. 애초에 ‘형태’를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어렵다면 ‘안전한 모방작’을 노리는 추종자도 없을 것이다. 특히 80년대 중반까지 ARPG의 진화 방향성을 살펴보면 선행 히트작에 있던 요소를 각색하거나, 두가지 이상을 섞은, 농작물의 품종개량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의 스마트폰 게임에서도 보이고 있는 ‘모방과 각색의 의한 진화’는 30년 이상 전에 이미 있었다.

이런 면모를 드러내는 알기 쉬운 예로서, 지금부터 당시의 나름 인기를 끌었던 두가지 ARPG를 살펴보겠다.
 둘 다 1985년 발매작으로, 이보다 앞선 인기작품이라고 해봐야 <도르아가의 탑>과 <하이드라이드>정도뿐. 그 덕택에‘모방과 각색’의 흔적을 뚜렷하게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좌 : <도르아가의 탑>, 우 : <하이드라이드>
<메르헨 베일>이 빠진 ‘난이도의 벽’

우선 첫번째로 다룰 작품은 시스템새콤의 <메르헨 베일>이다. 이 작품은 스테이지와 스테이지 사이에 멋드러진 비쥬얼 씬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해 개발자도 “액션 스테이지는 비쥬얼 씬의 연결고리로서 존재한다.”고 자랑스레 말했을 정도이다. 아름다운CG와 스토리를 중시한 노선은 회사의 다른 작품인 <노벨웨어>시리즈로 계승되었고, 이 작품은 <파이널판타지>시리즈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메르헨 베일>

게임 본편은 주인공을 4방향으로 이동시키며 총알을 쏘는 액션 슈팅 RPG이다. 첫인상은 <하이드라이드>처럼 보이지만, 플레이 해보면 전혀 다른 다른 게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은 방패를 들고 있기 때문에, 공격하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는 정면 공격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공격하고 있을 때는 왼쪽 측면에 공격을 받게 된다.
 그렇다, <두르아가의 탑>과 같은 방어시스템인 것이다. 설명서에 “여러분들 중 남X 사의 두X아가의 탑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도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그거랑 같습니다.” 라고 써져 있으니까, 아마 틀리지는 않겠지.

그렇다고 해도, 플레이해보면 전혀 다른 물건이다. 그렇게 생각해볼 수 있는 까닭은, 그런 시스템은 좀처럼 쓰이지 않으니까(그럴 여유가 없다)이지만, 다르다고 생각하는 진짜 원인은 딴 곳에 있다. — 그것은 ‘액션이 무지하게 어렵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쏘는 총알은 화면의 끝에서 끝까지 닿기 때문에, 언뜻 보기엔 쉬워보인다. 그렇지만, 캐릭터의 이동속도가 느린데다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쏠 수 있는 범위는 상하좌우 4방향 뿐인데, 적은 8방향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최강의 적은 몬스터가 아니라 ‘낭떠러지’이다. 모든 스테이지가 낭떠러지로 둘러쌓여 있어,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발을 헛디뎌 추락사하기 일쑤. 1초에 6번 이상 키를 연타하면 간신히 살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늦으면 즉사. 그밖에도 배치되어 있는 회복 아이템이 극히 적고, 게임을 세이브하기 위해 필요한 ‘플로피디스크’는 한 개밖에 들고 갈 수 없어서 한번 쓰면 그걸로 쓸 수 있는 소비아이템은 제로. 그래서 세이브를 해도 체력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난이도는 더더욱 상승!

이런 류의 ‘플레이어 괴롭히기’가 사실 85년 당시에는 ‘플레이어를 위한 배려’였다. 여기에 전력을 쏟아부은 것이 호평이었는지, 속편인 2탄도 등장. 라기보다는, 1편의 멋드러진 비쥬얼이 꺾여버릴 것 같은 유저의 마음을 구원하는 한줄기 빛이었기 때문이었겠지만. CG에 그 정도로까지는 힘을 주지 않았던 패미콘 디스크시스템 판에 대해서는… 예의상 코멘트를 생략하도록 하겠다.

어째서 <트리톤>은 1편만이 명작일까

다른 한가지 작품은 자인소프트의 <트리톤>이다.

<트리톤>

화면 우측에 게임 타이틀과 HP, STR, 경험치 등을 한눈에 보여주는 화면 구성과, 체력의 자동회복은 <하이드라이드>와 판박이다. 주인공이 검을 휘두르고, 아이템을 날려서 공격하는 시스템은 <드라고버스터>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같은 종류의 적을 X마리 쓰러트리면 아이템 획득’등의 조건을 만족시키면 아이템이 출현하는 부분은 <두르아가의 탑>을 본 딴 것일테다. 이것만으로도 시스템을 모방한 게임이 셋이다. 짬뽕 게임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만 말하면 독창성이 전혀 없는 것 같지만, 각각 서로 다른 시스템을 잘 조합하여 위화감을 느껴지지 않게끔 한 만듦새는 훌륭하다고 할 만하다.
 <하이드라이드>의 한 눈에 들어오는 디자인, <드라고버스터>의 액션성, <두르아가의 탑>의 아이템 구하기 시스템을 적절하게 버무려놓았다. <두르아가>본작에서 처절한 난이도였던 수수께끼도, 이 게임에서는 일부를 제외하면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다.

트리톤은 시리즈화 되었지만, 가장 평가가 좋았던 것은 결국 첫번째 작품뿐이었다. 이는 적당한 볼륨과 알맞은 난이도 덕택에 누구라도 노력한다면 클리어가 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맵을 더욱 확장하여 이야기 본편과 그다지 이어지지 않는 숨겨진 요소를 다수 포함시킨 리메이크판 <슈퍼 트리톤>은 넓기만 하고 제대로 즐길거리는 없는, 시대에 뒤떨어진 농담 같은 작품이 되고 말았다. 1편은 ‘길고 어려워야 좋은 게임’이라는 풍조에 적절히 반기를 들어 성공을 거두었지만, 속편은 모두가 인정했던 장점들을 모두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초대 드래곤퀘스트가 <위자드리>와 <울티마>의 장점을 소년 만화의 문법으로 ‘편집’했던 것처럼, <메르헨 베일>과 <트리톤>도 선배작품들의 장점들을 적절히 차용하고 거기에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더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의 <어려움이 곧 정의>라는 정언에 빠져버렸기 때문에, 시대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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