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학습”이 아니라

“교육”이 필요하다

공교육이 무너졌다? 아직 아니다!

전화가 울려온다, 내 아이의 담임을 맡은 선생님. “ 아무개 어머님, 내일 학교에 오실 수 있을까요? 아이에 관해 상담드릴 일이 있습니다.” 가슴이 철렁한다. 내 아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던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당연한 감정일지 몰라도, 내 아이의 잘못은 내 잘못과 같이 느껴졌고, 내 아이가 느낄 분노와 수치심, 죄책감으로 인한 감정은 고스란히 부모에게 전달되어 나는 어느새 내 아이와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다. 이 감정이 주는 무게감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결국 그 감정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도착한 학교에서 만난 담임 선생님의 이야기는 의외로 쉽게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내 안의 “노예”는 아직도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잘못이 없어!” 나는 아무런 논리적 오류를 따지지 않고 그 감정이 옳다고 믿기 시작했다.

“공교육은 아직 우위에 있다는 점에서 무너지지 않은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고 반드시 활용하자.”

공교육은 여전히 나보다 한 단계 위에 있다. 과거에 비해 부모의 의견이 존중되는 시대이긴 하지만, 그들은 “교육” 대신 “학습”을 여기는 것 같다. 오랜 근무 경력을 가진 교사의 매너리즘, 혹은 이제 시작인 교사의 경험 부족으로 인한 여러 오류들은 인간의 성장과 생애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점차 학교는 권위를 잃어가는 속도만큼 책임감도 잃어가는 것 같다. 탓할 수는 없다. 변화하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이제 이 사회는 ‘입시에서의 불이익’ 외에는 부모와 교사, 학생 모두 각자의 길을 걷는 현상이 더욱 뚜렷하다는 것이다.

“공교육의 권위는 다름아닌 퀄리티에 있다”

적어도 같은 지역의 아이들이 같은 퀄리티의 교육을 받는 것이 “기회의 균등”이라는 관점에서 좀 더 부합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개인의 역량에서 차이가 생긴다면 시스템으로 보완하여 최소한 적정 시기에 적정 진도만큼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최소한 같은 진도를 나아가 고등에서 합류하게 되었을 때에 적어도 들어본 적은 있는, 선생님의 탓을 하지 않는 시스템 구축에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더 나아가 수능과 대학 입시에서 보다 질 높은 교육을 받도록 해주는 것이 공교육의 신뢰와 권위를 회복하는 지름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제발 공지사항은 카톡 반톡방이나 페이스북으로 하지 말자. 스마트폰 중독을 고치려고 스마트 기기를 기껏 치웠는데 다시 쓰게 만드는, 이런 아이러니하고 나태한 태도는 직무유기로까지 비춰질 지경이다. 오해사지 말고, 차라리 학부모들을 단톡방을 대상으로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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